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 정부가 6.25전쟁과 월남 전쟁 참전자 명예수당을 외국 시민권을 받은 한인들은 빼고 지급하기로 한 조치는 참으로 의리 없고, 국익이 뭣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국가 정책을 짜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금년 10월부터 지급되는 이 수당의 근거는 금년 초 개정된 '참전유공자에 관한 법률'이다. 이 개정 과정에 참여한 행정부 책임자와 국회의원 가운데 6.25의 참상을 직접 겪은 인사가 몇이나 있었을까 묻게도 된다.

6.25전쟁 (어떤 사람들은 국제법상의 전쟁 선포도 없이 했으니 전쟁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하나, 여기서는 광의로 해석하여 씀)이 어떤 전쟁인가? 전쟁이 난 해, 중3이었던 나는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보다 두 살 위인 급우들이 징집되어 어깨에 띠를 메고 교문을 나설 때 우리는 그들을 박수로 전송했었다.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았다. 휴전까지 3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전선에서 죽어 갔다. 남한적 국군 사망자만 36만, 포로로 북한에 억류되어 못 돌아온 인원도 거의 5만 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쟁에 나가 죽지 않기 위하여 돈을 주고 손가락을 작두로 자르거나 눈 하나를 못쓰게 만든 친구들을 기억한다. 얼마나 처절한 전쟁이면 그랬을까 상상하고도 남지 않은가.

전쟁은 `필요한 악'이라던가.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휘관이 되고 어깨에 별을 달고, 나중에 출세한 사람도 일부 있다. 그러나 죽어 못 돌아오거나, 살아 돌아온 재향군인 대부분은 처참했던 전투의 아픈 상처를 안은 채 서민으로서, 일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월남전 참전 인사들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상이군인과 전몰 유가족에 대한 보상을 제외하고, 한국에는 여기 호주에 있는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지급되는 재향군인 노인 연금 제도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늦게나마 약간의 보상을 하게 됐다면, 이 돈은 참전에 대한 뒤늦은 약소한 대접이며 인사라고 할 수 있는데, 외국 국적을 받은 사람은 안된다니 무슨 소리인가. 외국 시민권을 받으면 참전 사실과 전쟁의 기억마저 달아난다는 말인가.

외국 시민권자가 된 `참전 용사'가 거주국에서 연금을 타니 고국이 따로 연금을 못준다면 말이 된다. 밝혀진 대로 이 돈은 이름하여 `참전용사 명예수당'이다. 생활 연금이 아니다.

월 6만5천원 (호주화 약 100달러)이라면 액수로 봐 한국에서는 어린애 과자 값, 호주에서는 `밀크 머니'에 해당된다. 호주의 노인 연금은 연 5천불 정도까지의 과외 수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6.25 전쟁과 월남 전쟁 참전자로서 70세를 넘기고 외국 시민권자가 되어 사는 한인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 지역 뿐인데,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 6.25 참전자들은 앞으로 10여 년 내에 대부분 세상을 뜨게 된다. 한 건의 공금횡령이나 무슨 `게이트'로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몇 십억원을 생각한다면 여기에 드는 예산이 뭐 그리 큰가.

이번 새 법률에 따른 시민권자 예외 조항은 직접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조국의 재외 동포 정책과 관련,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은 재외 한인들의 민족 정체성 유지와 함께 거주국 사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는 이른바 `현지화'를 표방하고 있다. 이 목표는 이들이 거주국에서 참정권을 갖고 힘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커야 가능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의 한인사회는 고국 정부에 2중국적제도의 수용을 오래 건의해 왔다. 현 정부는 이 건의를 그대로는 아니나, 그 원칙을 받아들여 재외동포법을 제정함으로써 동포인 외국 시민권자에게는 자국민과 거의 같은 국내 거주와 활동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2중국적제도를 수용 못하는 이유로서는 병역 행정에 관련된 문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 사정, 국민 정서 등을 들었다.

시민권자는 더 이상 한인이 아니고 외국인어서라고 말한 적은 없다. 실제 고국 정부는 시민권을 받은 해외 한인들도 헌법기관이며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평화통일자문협의회 회원으로 가입시켰고, 그 외에도 동포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고국과의 유대 강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시민권자 수당 지급 제외를 결정한 이 법률은 해외 한인들이, 자기들의 이익, 불이익을 결정하는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 수립 과정에서 얼마나 소외되고 발언권이 없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욱 호주 한인들의 경우는, 고국 정부가 무슨 정책을 쓰든 늘 잠자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한다.

최근 이 발표가 있은 후 뒤늦게야 섭섭한 감정을 토로하는 당사자 교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시민권 포기 절차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똑 같이 외국에 사는 재외동포이지만 영주권자에게는 혜택을 준다니,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간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호주에서는 그런 사례가 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호주 법무부 당국도 이게 웬 일인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조금은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미국, 캐나다 등 여러 지역과 본국의 재향군인 관계 단체들이 연대를 하여 정부에 건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