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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의 아이들은 -모두다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창의력이 부족한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착한 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암묵적으로 주입받고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어른의 의견에 반대해서도 안되고, 도전해서도 안된다. 가령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고 외워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된다. 다른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거나 서로 치고 박는-물론 말로- 토론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선생님의 질문에는 단 하나의 답밖에 없다. 다른 대답은 틀린 대답이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는가?

어쩌면 국가는 창의적인 인간을 원치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 나라도 미국처럼 5%의 천재들에 의해 나머지 바보들이 지배를 당하는 그런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중고교 교육이 의무교육이면 뭐하나.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교사, 교과서를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데. 미국의 어떤 공립 중학교 학생들은 아직 읽을 줄도, 문장을 쓸 줄도 모른다. 학교를 6-7년 다녔으나, 헛다닌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공교육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신문 방송에서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저 몇몇 사립 교육 기관을 보여주면서 '우리도 이렇게 하자'고 외친다. 결국 '우리도 이렇게 하자'는 '나만 미국에 가서 좋은 거 배워야지'라는 욕망을 부추긴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고학력, 부유층 엄마들이 미국 교과서를 사서 자식들을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교과서라고 다 좋을 것도 없고, 미국 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영어를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교육학자들이 교육 방식을 뜯어고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가령 영어 교과서를 큰 소리 내서 읽기는 주어진 지문의 내용과 핵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것, 선생님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고 선생님이 '옳다 그르다'라고 평가하는 방식의 교수법은 학생의 이해력을 심화, 확장시킬 수 없다는 것, 문법만 죽어라고 배우고, 단어만 외운 학생들은 오히려 책을 읽고 내용을 소화해내는 능력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토론을 거친 학생들보다 학업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등등. 글쓰기에 있어서도, 선생님 혼자 틀린 단어, 문법 고쳐주기 보다는 학생들끼리 글의 내용이나 구조에 대해서 서로 읽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글 솜씨가 더 좋다는 것도 발견되었다. 특히 영어 교과서 중 문학 작품은 신문 보도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 누가 뭘 했나' 등의 정보 이상의 것을 배울 수 있는 텍스트이다. 선생님의 개방적인 태도와 질문으로 학생들의 말문을 열면 토론 속에서 학생들은 텍스트의 의미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임을, 그리고 각각의 해석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요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즉,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주어진 문학 작품을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연관시키고 남의 경험을 들으면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 관련 종사자들도, 특히 영어교육에 돈을 퍼붓는 엄마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저 혀수술이나 조기 유학, 미국 교과서로 공부하기 등등만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근절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창의력은 고사하고, '왜 공부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이유조차 사고할 수 없는 로봇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든다.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한국의 엄마들이 무슨 짓을 못하랴. 그러나 사고할 수 없는 아이가 영어 발음이 '한국적'인 아이 보다 더 멍청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진정으로 영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아이를 키우려면 부모가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는 얘기를 같이 나누어야 한다. 학습은 '상호작용'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서로 배우는 과정이다. 가령, 신데렐라를 읽어주면서 각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주어는 어디에 있고 동사는 어디에 있는지 보다는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왜 그리 심술이 많은지, 아이들도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등등을 질문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 작품이나 우화들을 읽게 되면 학생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읽고 싶어한다. 밤낮 문법이나 단어만 익히라고 해 보라. 누가 그 짓만 하고 싶은지. 그리고 여러 책을 읽으면 한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익히기도 쉬워진다. 발음? 한국 사람이 그럼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발음해야한다는 법이 있나? 그저 영화나 만화 같은 것을 보며 발음을 조금이라도 따라하게 되면 다행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남과 달라도 되고, 독창적이거나 도전적이어도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도 배운다. 그렇게 자란 인간만이 참된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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