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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것들 중의 하나가 기쁨과 웃음이다. 기쁨과 웃음은 그것 자체로서도 좋고, 체내에서 생성되는 엔돌핀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더욱 좋다.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이 없다면 그건 삶의 동력을 잃었다는 얘기이기도 할 터인데,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기쁨과 웃음의 여지는 있는 법이다.

내게도 기쁨과 웃음은 늘 있다. 그리고 내 일상 속에는 소소한 기쁨들이 많다. 남들이 널리 알아주고 축하를 해주는 큰 기쁨이야 많을 수도 없고, 내 뜻만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일상 속의 소소한 기쁨들은 내 노력만으로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그리고 대개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가족들과 공유하는 소소한 기쁨들에 대해 나는 관심이 많다. 그런 기쁨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내 딴에는 꽤나 노력하는 편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집안의 맏이로서 그것은 내 확실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하느님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생겨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기쁘게 한다.

최근에는 좀 특이한 기쁨이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일상 속에서 생겨난 소소한 기쁨이지만, 내 의도나 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특별하고도 크다면 큰 기쁨일 것 같다.

대전에서 사는 막내 동생 가족이 마침내 '성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이후 10년이 넘게 신앙 생활을 하지 않던 동생 부부가 드디어 지난해부터 신앙 생활을 회복하더니 최근에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과 네 살인 두 아들에게 '사도 요한'과 '안드레아'라는 영세명을 안겨 준 것이다. 같은 날 첫영성체도 한 큰아이는 곧 미사 복사도 하리라고 한다.

원래 제수씨는 하느님을 거의 모르는 채로 동생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내가 신부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려 영세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 동안 그들 부부가 신앙 생활을 외면하고 사는 문제로 가족간에는 약간의 갈등도 없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침내 스스로 신앙생활을 회복한 동생 부부가 나는 여간 고맙지 않다. 그들의 그것은 곧바로 어머니께 가장 큰 '효도'가 될 터였다.

그런데 열심히 성당에 다니며 사도 요한이라는 영세명을 갖게 된 것을 참으로 기뻐한다는 내 조카녀석이 자신의 영세와 첫영성체를 스스로 기념할 만한 특별한 일을 하나 했다.

나는 지난해 가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대전에 간다. 팔순이 다 되신 노모께서 대전성모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까닭이다. 대개는 주치의께 어머니의 상태를 말하고 한 달 분의 약을 타오는 일이지만 가끔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기도 한다. 최근에도 초음파 검사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러고 태안의 집으로 돌아와서 3일 후에 다시 대전에 가려니 몸이 너무 피로했다. 그래서 대전에서 금산의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동생에게 또 한번 부탁을 했다.

의사로부터 어머니의 몸에 아무 이상의 없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 처방을 받은 동생은 한 달 분의 약을 지어 우편으로 부쳤노라고 했다. 그러며 동생은 놀라운 말을 했다. 어머니의 이번 약값은 승목(사도 요한)이 댔다는 얘기였다. 할머니의 상황을 알고 있는 녀석이 저금통을 털더니 10만원이 넘는 이번 약값을 제가 대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코치를 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순전히 제 의견으로 그런 일을 했다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 녀석은 내게 어서 여름방학이 되어서 태안의 사촌들을 만나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세 집 사촌 아이들의 그런 다정한 모습에서도 내가 그런 대로 맏이 구실을 괜찮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어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같은 연립주택의 바로 뒷동에 살고 있는 가운데 제수씨는 신앙 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동생과는 달리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지만 장차 직장을 잡을 꿈을 안고 컴퓨터도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성당의 여러 단체에도 참여를 하며 직책을 맡아서 봉사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제수씨에게 나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신앙 생활도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는 거의 무관심한 동생을 생각하면 제수씨가 조금은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제수씨에게 얼마 전에 수십 만원의 용돈이 생길 기회가 있었다. 6·13 지방선거 덕분이었다. 군수에 출마한 한 후보의 사무실로부터 선거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모자를 쓰고 어깨띠를 두르고 길가에 서서 행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일인데, 하루 일당이 5만원이라고 했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70만원은 생기는 일이었다. 제수씨는 작은아이가 종일반 유아원에 다니겠다, 크게 구애받을 일이 없으므로 응낙을 했다.

나는 제수씨의 선거운동 참여 의사에 반대하지 않았다. 전업주부인 제수씨에게 수십 만원의 용돈이 생기는 일이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꺼이 제수씨를 내 차로 선거사무소에 태워다 주기도 했다.

선거사무소에 인물 사진과 소정의 서류를 제출하고 온 제수씨는 내일부터 그 일을 할 거라며 내심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제수씨는 성당에 있었다. 아무리 주일이지만 선거운동을 하기로 한 사람이 왜 대낮에 성당에 있을까? 나는 의아스러워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레지오 단원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세나뚜스로부터 그런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정 선거운동을 할 사람은 레지오에서 탈퇴를 해야 한다는 엄한 지침이라는 것이었다. 제수씨는 수십 만원의 용돈 때문에 레지오에서 탈퇴를 하고서까지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노라고 말했다.

나는 제수씨가 수십만원의 용돈을 벌지 못하게 된 것이 조금은 서운했지만 제수씨의 그런 태도가 참으로 미덥게 느껴졌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기쁘기 한량 없었다. 제수씨가 내게 기쁨과 웃음을 준 것이 분명했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도 기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제수씨에게 감사와 위로를 주고 싶다. 이 글의 원고료를 받으면 그 돈으로 또 한번 가족 외식 자리를 가질 생각이다. 제수씨에게 감사와 위로를 선사하기 위해서, 제수씨 얘기도 들어 있는 이 글의 고료로 가족 외식 자리를 갖게 되었음을 기쁘게 공개하면서….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 천주교회 정기 간행물들 중의 하나인 <레지오 마리에> 금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최근에 올린 '즐거운 마음 한구석에는 죄스러움이'라는 글에 제목이 소개된 글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마음 한구석에는 죄스러움이'를 읽으신 여러 독자님들이 이 글을 읽고 싶다는 뜻을 여러 경로로 전해 오셨습니다. 천주교 관련 지면에다 쓴 종교 색채가 짙은 글이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여러 독자님들의 뜻을 무시할 수 없어 웹상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특정 종교를 '선전'하려는 뜻이 결코 아니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해량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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