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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한 줄 건너편의 신 선생이 포트에 가득 물을 붓는다. 그리고 교무실에 하나 둘 선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남들보다 좀 일찍 오는 편인 신 선생은 늘 오자마자 커피 포트에 물을 가득 끓이는 것이 당번처럼 되어 버렸다.

"커피 물 아직 안 끓었어요?"
이 선생이 핸드백을 책상에 툭 내려놓으며 묻는다.
"응, 좀 있어야 돼."
신 선생이 대답하자 옆에 있던 문 선생이 급하다는 투로 입을 연다.

"빨리 끓어야 되는데."
"그러게 말이야."
심 선생이 맞장구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런 아침 풍경을 감상하듯 바라본다.

여선생들의 출근은 참 바쁘다. 헐레벌떡 교무실에 들어서서, 핸드백을 내려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자마자 커피 잔부터 챙긴다.

새벽같이 일어나 밥 짓고, 아이들 챙기고, 남편 시중에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출근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아침 잠이 채 깨지 않아 내리는 지하철역을 지나치기 일쑤인 여선생들에게 모닝 커피야말로 정신적 각성제가 아닐 수 없다.

"자, 물 끓었습니다아."
신 선생이 한 마디 하자 모두들 포트 주위로 몰려든다. 이미 각자의 잔 속에는 적당량의 커피와 설탕, 프림이 섞여 있다.

신 선생이 제일 먼저 커피 잔에 물을 가득 부어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마치 숭늉 마시듯 후루룩 커피를 들이마신다. 신 선생의 커피는 커피 한 스푼에 설탕 한 스푼, 프림은 두 스푼, 물은 한 잔 가득이다. 신 선생은 그런 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쯤 마신다.

"이거라도 안 마시면 정신이 안나요. 너무 마시면 몸에 해롭대서 훌훌하게 타 마시는 걸요."
위장병을 앓은 경력이 있는 신 선생은 변명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문 선생과 이 선생, 심 선생도 커피 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문 선생은 커피 두 스푼에 설탕 두 스푼, 프림은 세 스푼이다. 자칭 시골다방 스타일이다. 심 선생은 커피만 한 스푼 반, 아메리칸 스타일이란다.

자리에 앉던 문 선생이 잊었다는 듯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내게 입을 연다.
"맹 선생님도 한 잔 타드릴까요?"
나는 빙그레 웃는다.
"벌써 마셨답니다."
내 대답에 심 선생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아니, 물도 안 끓었는데 어디서 마셔요?"
"허허, 나야 집에서 마셨지요. 집사람이 아침 챙겨 주고, 아침 먹고 나자 커피까지 한 잔 대령해 마시고 왔지요."

내 말에 이 선생이 잊었다는 듯 자기 핸드백에서 식빵 몇 조각을 꺼내며 한 마디 한다.
"누군 팔자 좋네. 완전히 임금 대접이시군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저 이 빵 조각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자, 한 조각씩 드세요. 왕후의 커피에 걸인의 빵 조각을."
그러며 주위의 선생들에게 식빵을 한 조각씩 건넨다.

"맹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사모님이 아침마다 잘 챙겨주시니."
문 선생이 잘 챙겨주지 못하는 자신의 남편을 떠올렸는지, 내게 한마디 건넨다.
"그럼요, 우리 집사람이야 전업주부인데, 자기 일에 충실해야지요."
내가 농담 삼아 그렇게 맞받자 다른 선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소리 속에 대한민국 중학교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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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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