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시공부 열심히 하면 용돈 준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7년차 고시생 K씨. 책값, 학원비를 사비로 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학 시절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고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등록금 전액 무료, 기숙사 무료 제공, 도서 구입비 20만 원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가며 공부했다.

바로 고시를 위한 대학의 특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생이라도 고시생이라면 재학생과 같은 급의 대우를 해주었기에 고시반에 남을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89학번이 02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 왠지 낯뜨거워 고시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대가 있다면 고시반도 있다

K씨가 다녔던 한양대의 경우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고시반이 만들어진지 이미 30여 년이 지났으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행정고시반, 기술고시반, 공인회계사반이 따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5층짜리 고시반 건물에 재학생 250명과 졸업생 250명, 전체 5백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고시정보신문에서 고시반 탐방 기획을 연재하고 있는 장정화 기자는 "매년 고시 합격자를 1, 2명 이상 배출하는 대학들 중 서울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에는 학교가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고시반이 있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울대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 고시반을 설립하라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며 고시반이 이미 대학 사이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임을 밝혔다.

연세대, 성균관대, 경희대 등의 사립대를 비롯해 전남대, 충북대, 부산대 등 지방 국립대도 마찬가지로 고시반을 운영하고 있다. 고시반까지는 아니라도 1차시험에 합격한 학생이나 고시에 합격한 학생에게 고시 장학금을 지원하는 대학은 서울대 외의 전국 대부분 대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대의 능력은 고시 합격생 수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K씨는 "대학도 어차피 기업과 마찬가지이니 학생들을 모아들이기 위한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도 한양대 법대의 전폭적인 지원이 맘에 들어 입학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중앙대 고시반 지도교수인 김종보 교수는 "사실상 각 대학의 대표격인 법대의 능력은 고시 합격자 수로 평가되고 있기에 사법시험에 대한 지원을 대학차원에서 소홀히 하기 어렵다"며 "대학의 이름을 알리는 일이기에 다른 과 학생들이 상대적 불평등이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대학의 운영 방향에 따라 본부 건물을 높게 짓는 것이랑 마찬가지의 일이라고 보아달라"고 고시생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의 고시반은 대체로 7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80년대 들어서는 거의 모든 대학으로 확산됐다. 지원 방법도 대학 내 고시학원을 만든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법대 교수들 뿐만 아니라 외부의 유명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개최하는가 하면, 수시로 모의고사를 보고 학생들의 성적 추이를 분석하기도 하며, 각종 고시 관련 자료를 모아 제공해 준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법조인 선배들과 고시 준비생의 자매결연을 맺어주며 시험에 대한 노하우와 생활비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한다.

"눈가리고 아웅"

사법고시 응시자는 90년대 초 1만 명 수준이었으나 올해 3만 23명이 응시, 10년 사이 세 배로 늘어났다. 서울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서울대를 졸업해 취업하지 못한 학생들 중 3명 당 1명 꼴로 고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고시학원 원장은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요즘은 고시를 준비하는 시기가 앞당겨져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추세라고 말한 바 있다. IMF 경제 위기, 합격자수 확대 조처 등의 이유로 고시생들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대 법대 조국 조교수는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기초학문이 붕괴되었다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시반을 지원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위"라며 "학교에서도 고시보라고 하는 데 왜 고시를 안보겠냐"며 일침을 놓았다.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고, 이름 알리기에만 급급한 오늘날의 대학은 스스로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의 고시생 지원이라는 문제에 대해 "그렇게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한 고시반 학생의 말에서 윤리적인 차원 이상의 고민을 읽어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