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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예수가 신화라니..." 무슨 흰소리를 하려드느냐고 일축하지 마라.

이 책은 별다른 학문적 작업도 없이 세인의 흥미나 끌어 보려는 심사에서 펴낸 것은 아닌 듯 싶으니 말이다. 저자들은, 세계 신비주의와 고대 문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더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예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가 사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같은 이교도들의 신화를 유대인 식으로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 그리스도교는 역사상 실존하지도 않았던 예수를 놓고 숭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자못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신비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영지주의자(Gnostics)들과 경쟁을 벌여왔다. 신약성서 내에서도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한 엄중한 경계와 비판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교회사에서 영지주의와의 긴 싸움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호교론자(護敎論者)들의 비판적 문서에 나오는 거 말고 영지주의자들의 실체에 대해 보다 분명히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45년 이집트 나그 함마디 도서관에서 발굴된 50권의 책들이, 교회의 이단으로 몰려 괴멸되다시피한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특히, 주후 75∼14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마 복음서>는 가장 빠른 마가복음(주후 70년경) 외에 다른 복음서들보다 앞선 것이라 한때 <제 5 복음서>라 불릴 만큼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도마 복음서>에는 예수의 행적은 나와 있지 않고 그가 말한 114개의 말씀자료만 들어 있다. 이는 신약성서에서 최초로 쓰여진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서(주후 50년)에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의혹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초기 그리스도교인을 문자주의자와 영지주의자로 크게 나누어 분류하고, 그 동안 이단시되던 영지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예수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영지주의자들은 문자주의자들과 달리 예수의 역사성이나 정경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영적 고양(高揚)에 도움이 된다면 이교도 철학과 신화, 점성술 등 어떤 것이든지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 하나의 예로 저자들은 영지주의 문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라는 책이 비그리스도교 문헌인 <선한 영지주의 입문자>를 그대로 베끼다시피했음을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러한 보고에 "충격"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많은 열정을 가지고서 신화적인 예수에 대해 파헤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시도된 것으로 기나긴 <역사적 예수 연구사>의 한 지류일 뿐이다.

예컨대 일찍이 스트라우스(1808-1874)는 복음서의 기록 대부분을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신앙에 의한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았다. 이를테면 그는 요한복음이 예수를 신격화한 책이라며 그 역사성 자체를 의심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근래에는 벨스(G.A Wells)가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교의 창작이라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울마저도 사실은 영지주의자였나? 한데, 저자들이 애써 폄하하는 그리스도교 초기 문서들이나 비그리스도교 문서에 나타나는 예수에 대한 기록은 예수의 역사성 자체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중립적 동조자나 심지어 랍비 자료와 같이 적대자들이 쓴 것조차 모두 예수의 역사성을 전제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침묵한 것이 아니라, 서신이라는 제한 속에서도 단편적이나마 특정한 계기가 주어질 때마다 예수의 말을 언급한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회의주의와 이에 대한 반론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타이센·메르츠 공저 <역사적 예수 / 다산글방> 4장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그리스도교가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시하여 말살하려 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역사적 과오이다.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실은 영지주의자들이 옳았던 것이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교는 문자주의가 낳은 돌연변이에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은 엉뚱하다.

이교신화나 철학으로부터 그리스도교가 영향을 주고받은 사실 자체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문화의 실체"인 종교의 속성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서로 주고받은 영향의 정도는 공평하고 정직하게 따져 봐야할 것 같다.

번역은 난삽하지 않게 잘 되었으나, 대중적인 책으로 만들려는 욕심에 각주를 아예 빼버리는 바람에 책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며, 영지주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종교였다는 주장도 지나친 억측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지주의 문서를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당치 않는 이야기를 용감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새로운 것이나 발견했다는 듯이 호들갑 떨지 말고, 좀더 차분하고 겸손한 자세로 지금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성과물들을 세심하게 참조하면서 연구하기를 저자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미지북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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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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