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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마용. 진시황제의 사후를 지키기 위한 병사들이다
빙마용. 진시황제의 사후를 지키기 위한 병사들이다 ⓒ 조창완

진시황제를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당연히 분서갱유, 만리장성, 아방궁과 같은 폭군의 면모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럼 중국인들은 어떠할까? 비슷할까? 당연히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유교가 국가의 중심이념이 되어온 지 2000년이 흘렀고, 유교 문화에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한 시황제야말로 '천하의 악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 가령 대학 시험에 진시황제에 관해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폭군의 면모로만 진시황을 묘사하면 그 사람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바로 진시황제가 중국 사회에 미친 다양한 면모 때문이다.

시황제는 분명히 잔인한 폭군이지만 그 폭력성 너머로 정치적 역정을 이기고, 중국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하는 한편 다양한 제도를 정비한 '명군'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시황제를 통해 약 2200년 전 중국 역사로의 여행을 떠나본다.

돈으로 아들을 황제 만든 여불위의 상술

진시황이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친황다오(진황도)
진시황이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친황다오(진황도) ⓒ 조창완
진시황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텍스트'로는 사마천의 <사기> 중 시황본기나 <여불위 열전> 등이 있다. 거기에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중국의 소장 사학자 천징(陳靜)의 <진시황 평전>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기>는 이야기 중심으로 논해 비교적 흥미로운 부분이다. 물론 <사기>로 인해 진시황제의 폭군 위상은 더욱 빛나게 됐다. 하지만 역사기술에 있어서 기술자의 주관이야 이미 유명한 만큼 걸러내야 하지만 진시황은 그의 진면목을 봐주기에 유교중심의 사회는 워낙에 길었다. 반면에 천징의 글은 과거에 생각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더 큰 시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시황제를 접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시황제가 아닌 거상 여불위(呂不韋)를 주인공으로 하는 글들이나 시황제를 죽이려했던 암살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인 형가(荊軻)를 주인공으로 하는 텍스트들이다. 시황제를 쉽게 이해하면서도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다양한 분석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징시앙밍(曾祥明)이 쓴 <거상 여불위>는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정을 한나라 황제로 만들었다가, 그 자식에 의해 제거 당하는 여불위의 비정한 삶을 잘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시황제와 그를 죽이려는 형가의 대결. 영화 <형가자진황> 가운데서
시황제와 그를 죽이려는 형가의 대결. 영화 <형가자진황> 가운데서
반면에 자객 형가를 중심으로 한 글은 <사기>의 ‘자객열전’도 있지만 최근 영화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5세대 감독의 거장 첸 카이거가 일본 자본을 들여와 만든 후 흥행에 참패한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이나 최근에 장이모가 만들고 있는 <영웅> 등이 이 자객 형가의 모습을 중심으로 진시황을 투영한 것이다. 과연 시황제는 어떤 삶을 살았길레 2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 있을까.

진시황의 이름은 정(政)이다. 그의 아버지는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지만 그의 출생도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다. 바로 그의 생부가 당시의 거상 여불위일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사기> 역시 정이 여불위의 자식이라고 쓸 만큼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이야기의 생성과정은 이렇다. 당대의 거상 여불위는 볼모로 조(趙)나라에 온 자초를 보고, 그에게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다. 그 투자에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 하희(夏姬)를 자초의 여자로 준 것도 포함한다. 바로 그 아이가 훗날 자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며 중원을 통일한 시황제 정이다.

여불위의 투자는 한치의 오차도 없어 태자 정은 13세에 왕위에 오르고, 과거 그와 정을 나누던 태후와 합작으로 여불위는 권력을 쌓는 한편 다양한 국가 정비사업을 벌이고, 잘못된 글자 하나를 천금에 산다고 교만을 부렸던 <여씨춘추(呂氏春秋)>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버지만한 자식도 나올 수 있는 법. 시황제는 서서히 권력에 눈을 떠가고 앞에서 가장 거슬리는 생부 여불위마저 자살하게 하는 한편 이사(李斯) 등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편다.

그후 국가 정복 사업을 벌이는 그는 BC 230년부터 BC 221년까지 한(韓), 조(趙), 연(燕), 위(魏), 초(楚), 제(齊)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룬 후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고 부른다. 물론 이 통일 위업은 선대(?) 장양왕을 비롯한 많은 이가 국가의 체제를 잘 정비한 결과였다는 것이 <진시황 평전>의 저자 천징 등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소설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데 바로 그가 중국 자객사의 비조(鼻祖)인 형가다. 어릴적 시황제 정과 친하게 지내던 연나라의 태자 단(丹)은 훗날 시황제가 왕위에 오른 후 섭섭하게 하는 데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을 알아 그를 암살하려하는데 백방에서 찾아낸 이가 형가다.

형가는 진나라를 배반한 후 연나라로 도망간 진어기의 머리와 지도를 들고 시황제에 앞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실수로 형가는 실패하고, 연나라는 앞서서 멸망하는 비극을 겪는다.

진시황제가 통일 후 한 가장 큰 역할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한 일이었다. 그는 법령의 정비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군현제 실시, 문자·도량형·화폐의 통일, 전국적인 도로망의 건설, 구 6국의 성곽 요새의 파괴 등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한 것 가운데 하나가 사상의 통일을 위한 분서갱유(焚書坑儒)다. 또 만리장성의 축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사후의 안녕을 위해 아방궁을 건설한다. 또 한편으로는 영원불멸을 위해 불사약을 구하러 신하를 보내기도 한다.

시황제는 현대 중국인을 이해하는 바탕

빙마용 2호갱에서 발굴된 청동 마차.
빙마용 2호갱에서 발굴된 청동 마차. ⓒ 빙마용박물관
하지만 그의 왕조는 그가 시작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BC 210년 그는 아들 호해를 데리고 순행하던중 산둥성 평원진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자 많은 자식들간의 농단은 계속되었고, BC 206년 함양에 진격한 유방(훗날 한고조)에게 그의 왕조는 멸망했고, 그가 영원히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아방궁은 항우에게 짓밟혔다.

이후 시황제는 중국 역사에서 잔악한 군주의 표상 중 하나였다. 그에 의해 짓밟혔지만 되살아난 유가가 정치적, 사상적 헤게모니를 장악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했다는 그의 치적과 그가 이뤄낸 국가건설의 면모를 인정받았다.

그가 새로운 면모를 들어낸 것은 그가 죽은 지 약 2100여년이 지난 1974년이다. 한 농부가 우물을 파던 중 우연히 발견한 병마용은 그가 더 이상 전설상의 왕이 아닌 실제의 왕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거기에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는 공자를 비판하는 대신 시황제에 대한 예찬이 줄을 이었고, 그는 2000년만에 중국사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

마오나 문혁의 주역에게 시황제는 좋은 전범(典範)이었다. 국가의 안정과 복리를 주창하며 소수민족을 통합하면서 중국을 만든 마오는 대약진 등이 실패하면서 굶어죽는 이들이 속출하고, 분열의 조짐까지 보이자 시황제를 부활시켜 통일중국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려 했다.

물론 문혁은 끝이 났다. 하지만 당시에 비판받았던 공자나 린비아오(임표)나 마오 등 모두가 살아있는 이 시대에 시황제의 위상도 건재했다. 그래서 현재 중국 학교에서 채택되는 역사교과서의 진시황제 부분은 부정적인 면보다는 그의 긍정적인 면이 많다.

중국이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한족이 세운 국가와 다른 소수민족이 세운 국가가 교차하는 역사를 이제는 끝맺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일 것이다.

때로는 갑작스럽게 드러난 거대한 유물로, 때로는 정치 이념 속에서의 부활로,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재해석으로 진시황제는 중국인의 복잡한 심사를 드러낸다. 또 진시황제의 부활은 중국이 세력을 넓히는데 중요한 철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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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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