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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의 행진대열 완주군 용진면에서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완주군 농민회 회원들이 점심식사와 차량을 지원 해 주었고 양쪽 면의 농협조합장과 면장이 격려 방문하였다.
8월 7일의 행진대열완주군 용진면에서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완주군 농민회 회원들이 점심식사와 차량을 지원 해 주었고 양쪽 면의 농협조합장과 면장이 격려 방문하였다. ⓒ 전희식
아직도 종아리하고 허벅지가 묵직하다. 아무래도 며칠은 더 통증이 갈 것 같은 기분이다. 농사일로 단련된 내 몸도 이 꼴이 난 걸 보면 아스팔트를 걷는 일은 또 다른 노동임에 틀림없다. 발에 잡힌 물집을 터뜨렸더니 쓰리다. 오늘은 숙박지였던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를 나서서 경북 영동을 거쳐 김천을 향해 걷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걷고 있을까? 내가 참여했던 4일간도 그랬던 것처럼.

새날이와 그의 친구들인 인천서 온 지인이와 대전서 온 달이는 처음부터 장난질도 하고 대열에서 벗어나 뒤처지기도 했지만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자기들이 계획했던 3일을 재미있게 잘 걸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아서 흠뻑 젖었지만 차라리 땡볕보다는 나았다.

걸을 때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제 이서에서부터 무주까지 걸었는데 자동차를 타고는 숱하게 다녔던 길인데도 걸으면서 보니 자동차 안에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렇기 때문에 열 살바기 딸 김평화와 7월 1일부터 걷고 있는 김재형씨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은 세상을 바꾸거나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는 변화보다 걷는 당사자의 변화가 더 넓고 깊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대한민국 강토가 학교이고 만나는 모든 이들이 선생님이었다.

평화양의 아빠 김재형씨 10살인 딸과 함께 걷고 있다. 잠시잠시 집으로 가서 농사일을 해 놓고 다시 오곤 한다.
평화양의 아빠 김재형씨10살인 딸과 함께 걷고 있다. 잠시잠시 집으로 가서 농사일을 해 놓고 다시 오곤 한다. ⓒ 전희식
넓은 김제평야를 지날 때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왔다. 자기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초록의 벼들이 들녘에 부는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철모르는 애들 같아 보여 마음이 쓰렸다. 차창으로만 넘겨다 볼 때의 농촌의 아름다움이나 평화스러움과는 다른 감정이다.

걸으면서 새삼 발견한 것이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사람 숨통을 틀어막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스팔트의 푹푹 찌는 열기도 그랬었지만 신호대기중인 자동차 행렬과 나란히 걸을 때는 질식 할 것만 같았다. 농민들은 농사지으면서 덤으로 모든 국민 마시라고 산소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농민들의 생생한 육성도 내가 걸음으로써 들을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체념과 불안, 그리고 분노 그 자체였다.

망해야 다시 살 것인가?

어느 농민은 저녁 환담시간에 극언을 하였다.
그는 농업이 완전히 망해버려야 한다고 했다. 농업이 망해버렸을 때 어떤 재앙이 닥치는지, 나라가 어떻게 절단나는지, 휴대폰은 없어도 살지만 안 먹고는 못산다는 그 단순한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농업이 깡그리 망해봐야 한다고 했다. 어느 현직 교사는 같은 자리에서 알퐁스 도데의 단편 ‘마지막 수업’을 예로 들면서 국어가 나라의 정신이듯이 쌀은 민족생존의 뿌리라고 말했다.

새날이와 그 친구들 자기들끼리 과자를 먹으며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왼쪽부터 한내, 지인, 이슬, 새날이다. 지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뻥이요'라는 과자 봉지다.
새날이와 그 친구들자기들끼리 과자를 먹으며 재잘거리며 걸어간다. 왼쪽부터 한내, 지인, 이슬, 새날이다. 지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뻥이요'라는 과자 봉지다. ⓒ 전희식
무주에서다.
푸른꿈고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7년 전 귀농했다는 어느 목회자는 농사를 지어보니 도시 살 때 자기가 얼마나 염치없이 살았는지 부끄러웠노라고 했다. 뼈 빠지게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농민들의 피땀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농촌약탈형 도시중심의 분배구조를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어떤 사람은 아무리 일해도 살림이 폭삭 내려앉아만 가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어 간다면 그 부자는 공공연한 도둑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목회자분의 말처럼 20㎏ 한 부대에 4만 몇천원하는 상품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으로 쌀이 인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끼 쌀값이 201원 꼴이라니 두 끼 쌀로도 과자 한 봉지 아이스크림 한 개 못 사는 형편이다. 분명 거꾸로 된 세상이다. 밭농사만 하는 나도 오늘 종일 고추 밭에서 4번째 풀메기를 하면서 과연 이 땀방울, 이 정성에 대해 제대로 값을 쳐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숨이 나왔었다.

한울생협 회원소개 순서 8월 6일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을 생협회원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였다. 오른쪽이 필자.
한울생협 회원소개 순서8월 6일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을 생협회원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였다. 오른쪽이 필자. ⓒ 전희식
완주군 소양면의 어느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할 때였다.
조용하던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들자 몇몇 아주머니들이 문밖으로 나와서 구경을 하였다. 내가 걷기운동에서 나온 유인물을 나눠주었더니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혈육이라도 만난 듯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수매가가 12만원으로 떨어진다는데 어떻게 살아요? 하면서 하소연을 하자 옆 사람은 이장한테 들었다면서 10만원까지 내려간다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일화들은 걷기운동 사이트에 들어가면 생생하게 들어차 있다.

주는 것 보다 얻은 게 훨씬 많았던 날들

진안코스에서 배이슬이가 나타났을 때다. 실상사 작은학교 동급생들인 달이와 새날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은정이가 자기 엄마랑 1주일을 먼저 걸었으니 13명인 반 아이들 중에 4명이 걸은 셈이다. 방학 전에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방학숙제가 전혀 없는 대신에 이런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 준 그곳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다. 새날이 단식을 했는줄 알았더니 이슬이와 달이도 알고 보니 방학중에 5일에서 열흘간 단식을 하였다고 한다. 걷기를 하면서 난데없이 새날이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 것처럼 4일간 걸으면서 이 같은 일이 더러 있었다.

전주농업인회관에서 야마기시 동기들을 만난 것이 그랬다. 저녁시간에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특강 강사로 강화도에서 오신 김정택 목사님과 순창지역에서 농민운동 하는 이태영씨를 만난 것이다. 10년 만에 이렇게 만날 줄이야. 그런데 그날 저녁 뉴스에는 또 야마기시 동창이신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인 이해학 목사님이 병역비리 관련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나와 우리는 무슨 우연인가 하고 좋아했다.

내가 사는 고장의 농협조합장과 면장님이 내 요청대로 대형 현수막도 길가에 걸어주시고 음료수까지 준비하여 행진대열이 잠시 쉬어가도록 하였다.

내가 쓴 무거운 감투

걷기를 하면서도 나는 줄곧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걷기운동이 남은 두 달여 동안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후원’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내가 이 걷기운동에서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남 진주코스에 하루 합류하였다가 얼떨결에 쓰게 된 감투. 이 감투의 이름은 ‘사이버 후원단장’이다. 그래서 걷기운동의 사이트도 만들어 냈다. (인터넷 주소 : refarm.or.kr). 사이버 모금운동도 내 몫이다.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와서 치료해야 하는 사람. 먹는 것과 마시는 것들. 지원차량과 각종 회의나 강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감투가 내겐 참 무겁다. 그들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걸으면서 구호도 노래도 안한다. 나는 길거리 행진을 숱하게 해 봤지만 이 사람들은 달랐다. 어디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는 법이 있으랴 싶은지 항상 서두는 법이 없다. 나 외에 다른 한사람 바꿔 놓는다는 건 평생의 과제라고 믿는 사람들. 자기 내면의 성찰에 게으르지 않는 사람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들. 선 체조와 새벽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서림스님. 차를 달여 마시고는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
내가 걷기 대열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리워진 얼굴들이다.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바로가기 refar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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