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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 장군은 이제 47년째 불안한 셋방에서 분단의 아픔을 보고 있다.
장군총. 장군은 이제 47년째 불안한 셋방에서 분단의 아픔을 보고 있다. ⓒ 조창완
아내가 출산하기 위해 먼저 한국에 간지 일주일. 한국에서 찾아온 선배 형을 만나기 위해 옌지(연길)를 향한다. 대학 입학후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선배 형들이 있었다. 다들 가난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갈망도 컸고, 깨어있었던 형들.

우리는 일년 방세가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되게 싸서 스스로 ‘게토’라고 불렀던 곳에서 살았다. 남들은 할렘이라고 불렀지만 반년만에 그곳은 공식적으로 게토라는 지칭을 얻었다. 창권형, 종인형, 영식형 등이 그곳에 같이 있었다.

차가운 초겨울 형들의 졸업철이 오고, 나는 고기를 송송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정성껏 끓였고, 모두가 맛나게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했다. 작별은 정말 작별일 수도 있었다. 그토록 친했지만 시간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장애가 되었고, 이제는 연락조차 어려운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창권형이 거의 강권에 가까운 내 중국행 권유에 옌볜대에서 방학동안 교수로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왔다. 형과 그 형 아래에서 지도를 받는 후배들을 만나러 간다.

선양(심양)의 서탑거리에서 반년전에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건너온 여자 동기 녀석과 오랜만에 만났다. 방문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밥을 얻어먹고 급히 백두산 여행의 경유지이자 고구려 유적지인 지안(집안)의 입구인 통화행 밤 기차를 탄다.

장군총에서 바라본 만포 군수공장의 모습. 위에 굴뚝 아래로 지하공장이 건설되어 있다.
장군총에서 바라본 만포 군수공장의 모습. 위에 굴뚝 아래로 지하공장이 건설되어 있다. ⓒ 조창완
백두산 여행 성수기이지만 그 길을 이용하는 이들이 적어선지 역 매표소에서 침대칸표를 살 수 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조금 지친 몸을 이끌고, 통화역의 출구를 빠져나온다. 저녁에 출발하는 바이허(백하)행 기차를 사두고, 역전을 배회하다가 한 탈북자 아주머니를 만나, 길에 익숙한 아주머니와 집안행에 동행한다.

통화에서 지안에 이르는 길은 이미 깊은 삼림이 우거져 있어서 신선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 거의 느낄 수 없는 우리땅과 유사한 내음이 그곳에는 있다. 백두산의 준령의 한줄기를 지나기에 그런 느낌이 강하지만 그곳이 과거 우리 선조들이 말 달리던 곳이라는 느낌은 또 다른 감정이다. 북한의 자강도와 마주한 지안은 그 자체가 묘한 흥분을 준다. 아주머니는 살다온 곳인 만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져기 하얀 연기 나는 곳이 군수공장이라요. 굴뚝 아래로 나무가 없는데, 아래는 모두가 공장이라서 그랴요. 그리고 산들도 모두 까뒤집어서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그녀에게 듣는 북한에 관한 말중에 가장 인상적인 말은 “북조선이 버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인민이 좋아서라요. 사회주의하겠다는 인민들의 정신이 좋아서 그렇지요. 듣자니 지난번에 원로들이 집단으로 항의해 배급제를 월급제로 바꾸었다고 하더만요.” 그녀는 지금 북한은 변화중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천지로 오르는 길. 바위 사이로 난 길과 주변의 야생화가 인상적이다.
천지로 오르는 길. 바위 사이로 난 길과 주변의 야생화가 인상적이다. ⓒ 조창완
그녀가 북한에서 넘어온지는 5년 남짓. 지난해는 다른 지역에 갔다가 발각되어 북한에 끌려 갔다. 살 붙이고 살아가던 조선족 동포가 마음씀씀이도 좋아 옷도 잘 입히고, 돈도 주어서 보냈는데, 탈북자 수용소인 927아파트의 초입에서 돈도 빼앗기고, 옷도 허드레것으로 바꿔 입었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다가 한방에 수용되어 있는 이들이 가진 천들을 모아 밧줄을 만들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고, 그 밤으로 한적한 압록강을 넘어 다시 중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에게 중국은 북한에서의 삶처럼 굶어죽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고통으로 인해 떠나야만 하는 곳이다. 한번은 한국에 데려다 주겠다는 이들에 끌려 따리엔에 갔지만 3개월 동안 엉뚱한 생활만 하다가 동포 남자가 와서 다시 사는 곳으로 올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으슥한 곳에서 언니를 만나기도 한다. 3백리길을 신발도 제대로 없이 와 부르튼 언니의 발을 풀어주고, 선물도 사왔는데, 셋째 조카는 이미 굶어 죽었다고 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더 이상 수령이나 장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창피해서 언어습관을 바꾸기도 했지만 기아에 허덕이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고향에서 도피하게 한 정권이 밉기 때문이다. 하지만 11년이나 군대생활을 하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는 자신이 개방을 앞두고 있는 북한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말한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장백폭포. 여행자들이 자신의 희망을 담아 돌탑을 쌓아두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장백폭포. 여행자들이 자신의 희망을 담아 돌탑을 쌓아두었다 ⓒ 조창완
그래서 지안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첫 감정은 우선 조상들에 대한 면구함이다. 중국인에 맡겨져 오랑캐의 유물 취급을 받는 문화재도 그렇지만 압록강을 마주하고 있는 초라한 자강도의 모습은 분단의 현주소를 조상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역사의 풍화에 찌들린 광개토대왕릉비나 장군총 등 고구려의 유적의 보존상태는 형편없다. 그 유적의 초입에서 한국에서 여행단을 이끌고 온 한 강사는 고구려 문화의 유산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 웅혼한 기상은 그들이나 우리의 후손을 통해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그 첫단계가 둘로 나누어져 있는 이 땅을 합쳐야 하는데, 정작 그들이 갖고 있는 통일관이 무엇일지 걱정이 된다.

백두산의 정감과 옌지에서의 분노

북한에서 직영하는 묘향산 식당에서 김치 등으로 식사를 하고, 통화로 다시 나온다. 여름철에만 바이허(백하)까지 운행하는 오후 기차로 바꿔 탄다.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백두산의 입구 마을인 바이허에 도착한다. 내 여행책자에서도 소개한 표아주머니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 일찍 중국인 여행단에 끼어서 백두산 여행을 시작한다.

초입부터 펼쳐지는 곳은 나무들의 풍경이 아름답다. 누가 우리 소나무가 굽었다고만 했던가. 저렇게 꼿꼿하게 추위를 이기면서 하늘을 향하는 자연도 있는 것을.

백두산의 아름다운 산림. 백두산 나무들의 올곧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백두산의 아름다운 산림. 백두산 나무들의 올곧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 조창완
천지로 향한 길을 아름다운 능선과 야생화가 인상적이지만 정상 부근에 갈수록 구름은 더욱 짙어져 간다. 한달에 닷새 정도만 맑은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천지는 혼자 찾아온 나에게 이번에는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모포도 없이 추위에 떨고 있던 나를 자신의 모포로 감싸주던 한 중국인 아저씨의 온정이 그나마의 실망을 달래준다.

다시 강풍이 몰아치는 굽이 길을 따라 차는 산 아래로 내려온다. 천지와 장백폭포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의 중턱에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인간계와 천계의 경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가 바람과 비와 구름을 주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에는 그분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시 갈래길에서 장백폭포를 보러 간다. 장백폭포는 웅장한 모습을 선사한다.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인지라 손을 한번 담궈 하늘의 시린 마음을 잠시 느낀다. 장백에서 바라온 사방의 모습은 백두산이 거대한 돌덩이임을 말해준다. 그 돌을 보면서 문득 남이 장군의 시가 떠오른다.

그는 이 산의 돌을 칼을 가는데 써서 없애고, 두만강물을 말 먹이는데 써서 없앤다고 했는데, 난 뭔가 하는. 아울러 그가 우리 민족의 영산을 칼 가는데 모두 쓰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중국에는 3천미터가 넘는 산이 적지 않고, 나도 많이 가보았지만 백두산 강렬한 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직 들러보지 못한 히말라야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백두산의 인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송정에서 본 해란강.
일송정에서 본 해란강. ⓒ 조창완
내처 들린 소천지에서는 신기보다는 인간의 탐욕이 더 느껴진다. 소천지의 한켠에 이상스러운 신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산의 중턱에 있는 지하산림을 마저 둘러보고, 바이허에 내려온다. 버스에 탄 나에게 과일을 한 봉지를 들려주는 표아주머니의 온정을 뒤로 하고, 안투(안도)를 거쳐서 옌지(연길)에 들어온다.

어스름에 도착한 옌지에는 촉촉히 비가 내린다. 나 보고 가라는 비인지(가는비) 있으라고 하는 비(이슬비)인지는 모르지만, 산의 중턱에 있는 옌볜대로 간다. 그곳에서 선배를 통해 통탄할만한 현실을 듣는다. 선배의 말로 들은 말도 안되는 말의 대강은 이렇다.

그곳의 교수들과 교류과정에서 중국 극우사학자들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북한은 물론 한국조차도 중국의 지배에 넣으려는 역사조작이 아니고 무엇일까. 물론 중국 극우파 망나니들의 장난이겠지만 이런 상상이 나올 수 있는 현실이 더욱 분통터진다.

다음날 두만강을 사이로 두고 북한과 접하는 투먼(도문)과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롱징(용정) 근처를 본다. 해란강은 여전히 푸른 들판을 타고 두만강을 향해 흐른다. 지금도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선구자들은 어디선가 말 달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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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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