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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70년 월남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가 맨 먼저 느낀 것은 월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연민'이었지요. 프랑스와의 오랜 독립해방 전쟁에 이어 이데올로기에 의한 남·북 분단 상황 속에서 외국의 군대까지 불러들여(?)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 같지도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진흙탕 속의 나라였습니다.

문학청년의 감수성 탓이기도 했겠지만, 나는 월남 땅에서 우리의 민족 분단의 아픔을 더욱 절절히 체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똑같이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처지에서 남한의 군대가 월남(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을 돕기 위해 월남 땅에 들어와 있는 현실에서 나는 야릇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남한과 월남을 동시에 틀어쥐고 있는 미국의 거대한 '양손'을 느낄 때마다 목덜미의 야릇한 통증을 느끼는 기분이었고….

투이호아시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백마사단 도깨비연대에서 생활하면서 오래 전부터 부대 안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듯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그중에는 투이호아 지역의 주민들이 지금도 한국군 '청룡부대'에 대해서 큰 공포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얼룩 무늬에 빨간 명찰을 단 군복만 나타났다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는 얘기….

그런 연유로 청룡부대는 투이호아 지역을 떠나 북쪽 다낭 지역으로 주둔지를 옮겼고, 그래서 백마부대는 손쉽게 주둔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얘기….

완전히 페허가 된 마을도 보았지요. 한국군의 '작전'에 의해 페허가 된 마을이라더군요. 그때 죽은 수많은 시신들이 그대로 버려져서 바닷물의 밀물 썰물에 따라 오랫동안 다뇽강의 강안을 오르내리고 갈대밭에 걸려 썩어갔다는 이야기….

아무도 살지 않는, 허물어진 채로 텅빈 집들, 검게 그을린 거대한 숯덩이 같기도 한 야자수와 파인애플 나무들이 보여 주던 그 음산하고도 흉흉한 모습을 나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명료하게 내 망막에 얼비치듯 떠오르는 그 모습을….

그때부터였는지, 몇 년이 지난 뒤부터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월남의 그 페허 마을 모습을 떠올릴 때는 야릇한 공포감과 함께 우리의 조선 시대를 떠올리곤 했지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 명나라에 원병을 청했던 시절의 상황. 우리를 도와준답시고 조선 땅에 들어온 명나라 군사들의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횡포와 패악. 물론 그 정도의 상황은 절대로 아니었을 테지만, 나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월남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더욱 커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지요.

내가 월남에 있는 동안 백마부대는 '대민지원사업'에 무척 힘을 쏟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 연대와 대대에 '민정과'라는 것을 두고 대민 홍보 뿐만 아니라 생활 지원에도 열의를 쏟았는데, 거기에는 한국인 특유의 '인정' 같은 것도 많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에도 한 가닥 위안을 얻는 듯싶습니다.

내 글을 접한 파월 용사들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용병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반론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반론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공감과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관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용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일종의 에피소드로,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전투 수당과 관련하는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한 탓에 모든 이의 관점이 그쪽으로 대폭 쏠려 버린 듯싶습니다. 그리고 월남전 참전과 관련하는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에 대한 논급이 그것을 증폭시켜 놓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전투 수당과 관련하는 차원의 용병론은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의 '사설'이 될 수밖에 없지요. 내 졸작 장편 <회색정글>에서 주인공이 전투 수당을 벌기 위해 지원을 하여 월남에 온 사실을 아무에게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식의, 그런 일종의 '자존심'을 성립시키는 쪽으로나 겨우 구실을 할 수 있는 차원일 것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군 병장 한 사람이 받는 봉급은 400불 조금 넘은 걸로 알고 있다. 이중 50여 불 정도를 개인 월급으로 주고 나머지 350여 불은 국가가 가져갔다. 번 돈 87.5%를 국가에 헌납하는 용병도 있는가?"라는 논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사실 봉급 400불은 미군과 똑같은 수준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병사들에게 지급한 봉급과 똑같은 금액을 한국군에게도 주었으니 이 점에서도 용병의 논점은 성립이 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거의 무모하리만큼 '용병론'을 제기한 것일까? 물론 이것에는 기본적으로 확신이나 확증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가능성'을 제기한 것일 뿐이고, 또 그것은 그만큼 가변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나는 '용병론'의 제기 가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이나 심정 쪽으로 연결시키고 있고, 그것이 내 논점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졸작 장편 <회색 정글>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4부의 제목은 '용병설'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확인 형태가 아닌 하나의 '설(說)'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그 '설'을 그려냄에 있어 한국군의 일부 장병(특수 기관원과 장교)들의 치졸한 금전 추구 행위와 탐욕 외로 철저히 월남 국민들의 시각에다가 내 논점을 매달고 있지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간단히 소개하죠.

투이호아 호텔에서 처음으로 한 매력적인 아가씨와 '관계'를 하게 되었지요. 그때까지 몸의 순결을 지니고 있던 숫총각으로서는 참으로 대단한 '모험'의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목욕을 마친 아가씨가 침대에 누워 타월로 그곳만을 가린 채 한국 말로 "빨리 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국 말에 질겁을 하고 오만 정이 떨어진 한국인 숫총각은 그만 첫 경험을 포기하고 방을 나가버렸지요. 그런데 호텔 로비의 프론트에서 지배인이 그를 부르더니 선불로 받았던 화대를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불로 받은 피아스타 대신 달러를 내주는 것이었지요. 왜 피아스타를 돌려주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아가씨가 달러로 내주라고 했다면서…. 말하자면 그 아가씨가 관계를 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린 한국인 병사에게 일종의 '보복'을 한 것이지요.

투이호아 시의 한 거리에 주차해 놓은 헌병대 지프에 월남인 청년의 오토바이가 달려와서 부딪쳤지요. 사람도 약간 다쳤고 오토바이도 좀 파손된 상태. 그런데 월남인 청년이 한국군 병사에게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너무도 엉뚱했지요.
"너희 한국군이 우리 나라에 오지 않았으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 너희가 우리 나라 땅에 들어와서 여기에다 차를 세워놓았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니 당연히 배상을 해야 한다. 미국정부에서 받은 돈으로 해결을 하면 될 것 아니냐."

실랑이를 하다가 별 수 없이 주인공은 투이호아 호텔에서 되돌려 받은 '화대'를 그 월남인 청년에게 주고 말았지요.

한국군에 대한 그 월남인 아가씨와 청년의 시각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월남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전반적인 시각일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 수도 있으리라는 거죠.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시각은 혼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지난봄에 <죄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장편소설을 출간했습니다. <회색정글>과 부분적으로 연결되는, 오늘의 한국이 주무대인 월남전 관련 소설이지요. 내 소설을 스스로 거론한다는 게 참 겸연쩍고 오해의 소지도 있어 염려가 됩니다만(책을 출간하고 보니 이야기의 '균형'에 문제점이 느껴져서 후일 개작을 하려고, 어디에서도 일체 책 얘기를 하지 않았음. 물론 출판사의 광고도 없었고…), 제목이 시사하듯 '참회와 용서, 화해'를 주제로 삼고 있는 이야기지요.

월남에서 저지른 실수(총기 사고에 의한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가슴 가득 끌어안고 살게 된 주인공이 뒤늦게나마 '속죄'를 구현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주제의 핵심인 속죄의식, 또는 사죄 정신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지고 지선의 덕목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 소설을 잠시 거론한 지금 또다시 투이호아 성당의 고아원 풍경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군요. 천주교 신자인 덕에 어느 주일에 가볼 수 있었던 투이호아 성당과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의 모습. 그 고아원에 수용되어 있는 수십 명 아이들이 모두 한국인과 월남 여성 사이의 혼혈아들이라고 했지. 아버지 없이 태어난 그 아이들은 30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30년 전의 월남전 참전 역사를 되돌아볼 때 베트남 국민들의 슬픔과 상처를 살피고 감싸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속죄의식도 지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신념입니다. 그리고 월남전 참전과 관련해서는, 참전 용사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닐 경우에는 반드시 베트남 국민들의 시각과 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진정한 '참전 용사'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참전 용사로서의 내 긍지와 자부심이 진정으로 옳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의 슬픔과 상처를 외면하는 차원에서의 독단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참전 용사가 아닌 '참전자'로 머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년 전 <한겨레 21>의 30년 전의 월남전 관련 보도로 말미암아 <파월전우회>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물리력을 행사했던 것은 지금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파월 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데, 파월전우회의 시위 사실과 그 이유를 베트남 국민들이 들었다면(후에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참으로 긍금합니다.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도 내 가슴에 가득하고….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파월전우회(오늘의 <월남참전군인회>)가 그런 일에 나서기보다는 베트남 국민들이 안고 있는 전쟁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 주는 쪽으로 역량을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이런 바람과 관련해서 보면 내 고장인 충남 태안의 월남참전군인회는 일을 참 잘하는 것 같습니다. 군지회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각 읍·면 분회 별로 벌써 여러 차례 베트남을 방문해서 30년 전의 주둔 지역을 돌아보고, 여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여러 가지 형태로 도움주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고맙고 상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라이따이한 등의 문제는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문제라고도 말합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의 의의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논법입니다. 그렇더라도, 라이따이한 등의 문제를 계속 부차적인 문제로 방치해 둘 수는 없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이 안고 있는(우리와 거의 비슷한) 슬픔과 상처를 살피고 감싸주는 일은 모든 파월 용사들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합니다. 정부에서 다각도로 연구를 하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국 정부 스스로 파월 용사들의 명예를 살려 주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파월 용사들의 명예와 관련해서는 고엽제 피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심성 속에는 자국의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국의 청년들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 보내 놓고 나서, 그 전쟁터에서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이 지금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무책임할 수가 없습니다.

고엽제 피해 보상 소송과 관련하여 한국 법원에서 먼저 파월 용사들 쪽에 패소 판결을 내린 사실은 한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파월 용사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긴 글을 마치면서 핵심 주제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자 합니다. 똑같은 처지였으되 이제는 베트남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베트남 국민들의 슬픔과 상처를 살피고 감싸고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전 용사로서의 진정한 긍지와 자부심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성과 휴머니즘만이 진정으로, 최종적으로 우리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음을 뜨겁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덧불이는 말:

내 글로 인해 월남전 참전 용사들 중에서도 특히 태안지역 거주 회원 여러분의 심려가 컸던 듯싶습니다. 글이 길고 방만하다 보니 그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께 누를 끼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으며, 지역에서의 봉사 활동 등 선의를 위한 여러분의 조직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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