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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 실현지의 마을
야마기시 실현지의 마을 ⓒ 전희식
이제 막 4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이 여행 기간 동안 나는 반경 50미터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연찬(깊이 연구하는 것)과 묵상, 그리고 자는 것과 먹는 일이 여행지에서 내 일과의 전부였다. 참석자 11명이 모두 4일을 이렇게 지냈다.

이 여행에 붙일 알맞은 이름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바탕의식을 탐사하고 왔다고 이름 지을까? 존재와 인식의 철학적 사유에 몰두했었다고 할까?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름이 있건 없건 여행이란 모름지기 똑 이래야 하리라 본다. 나는 일상생활을 확실하게 벗어났었다. 일상의 감정과 행동, 일상의 생각이나 관계들하고 확연하게 절연했었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고도연찬회]에 갔었던 것이다.

'왜 걸렸는가?'가 첫번째 테마였다.

돌 뿌리에 발이 채이듯 왜 마음이 걸리는가이다. 마음이 왜 상하는가 이다. 왜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가이다. 50대 중반의 화가 한 분이 내 놓은 실례를 놓고 우리는 집중연찬을 했다.

쌓인 신문을 끈으로 묶고 있는데 아흔이 다 되시는 시어머니가 끈을 반으로 쪼개서 묶지 왜 그렇게 흥청망청 낭비하느냐고 해서 짜증이 났었다는 것이다. 손자나 손녀마저 예뻐해준 적이 없는 할머니라고 한다. 자기 한 몸만 알고 잔소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한다. 이전에도 시어머니 말대로 끈을 반으로 쪼개서 신문지를 묶다가 끈이 끊기는 바람에 두벌일이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자기는 절대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짜증이 나야하느냐고 우리는 연찬 해 들어갔다.

우리는 원점에 서서 재차 시작했다. 연찬회 용어로 '영위(零位)'에 섰다.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서 철저히 구명해 들어가라는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尾代藏) 선생의 연찬요지에 따라 영위에 서서 여타 참석자들의 사례들에도 똑같이 '그렇다면 화가 나야만 하는가'라고 물어 들어갔다.

30대 중반의 한 여성 사업가는 새벽 1시에 귀가했다가 남편이 "사업하는 사람들은 다 이래?"라고 해서 화가 몹시 치밀었다고 한다. 주위 친구들이 너무도 쉽게 이혼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하면서 자기도 이번 연찬회에서 뿌리를 뽑고 싶노라고 했다.

올해 환갑인 초로의 신사 한 분의 사례는 참 극적이었다. 출근길에 깜빡 잊었던 서류를 아내에게 아파트 아래로 갖다 달라고 전화를 했다가 기다릴 수가 없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까지 올라가서 문이 열릴 때 서류를 든 채 서 있는 아내를 마주쳤다고 한다. 화를 버럭 질렀는데 3일째 냉전상태인 채로 고도연찬회에 왔다고 한다.

야마기시 실현지의 양계장
야마기시 실현지의 양계장 ⓒ 전희식
화가 왜 났느냐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꼬박 3일째 집중연찬 해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오열을 터뜨렸다. 화가 났던 당시의 주변환경조건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자 너무나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자기의 몰골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오열하였다.

결국 화는 자기 스스로가 낸 것이라고 실토하는 사람들은 회한의 눈물들을 흘렸다. 화가 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데 이르러서야 밝게 웃으며 눈물을 훔칠 수 있었다.

'몸 연찬'과 '일체관'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더 다루고 우리는 야마기시즘 고도연찬회장을 떠나왔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 일상과 멀리 떨어져서 일상의 내 모습을 스크린에 스치는 영상을 보듯이 남이 되어서 바라보는 그런 여행을 다녀 왔다. 지금의 나와는 아무런 이해관계로도 엮이지 않은 또 다른 그때의 나의 모습은 참 경이롭기도 하였고 수치스럽기도 하였다. 그렇다. 참 자아를 만나고온 여행이었다고 말하면 어떨까 싶다.

이런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경기도 화성에 있는 이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내 영적 성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7일간의 특강에 참여했던 나는 너무나도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 이때부터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각양각색인 사람들이었다. 삶에 임하는 치열함이 누구 못지않게 드높으면서도 삶을 대하는 태도는 채소처럼 유연한 사람들이었다.

휴식은 단순히 노동의 재생산만이 아니라고 본다. 참된 휴식은 일상을 잊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이면을 만나는 것이리라. 그럼으로써 비로소 휴식은 전혀 다른 창조로 거듭날 것이다. 확실하게 일상을 정지시키는 것. 생각도 행위도 말도 다 일상의 것은 멈추어보는 것. 멈춰진 그 자리에 연꽃처럼 피어오르는 자각의 새싹을 마중하는 것. 이런 여름휴가를 권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해 뚫는다'는 뜻을 지닌 연찬(硏鑽)은 하나의 의문에 대해 여러 명이 둘러앉아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정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중지를 모아가는 모임이다.

연찬회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던 지식인이자 농부인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가 자연계의 태양, 공기, 물, 흙, 인간, 동물, 식물이 서로 도우며 함께 번영 해 가는 순환농법 등 진실세계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해 1956년 1월 교토에서 처음 개최했다. 당시 참가자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연찬회가 이어지면서 일본에선 1800회 가량 열렸다.

이 깨달음을 삶에서 적용하기 위한 야마기시즘 공동체 마을이 일본, 스위스, 브라질, 태국, 독일, 호주, 미국 등 50여곳에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1966년부터 연찬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84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3리 산141의1에 야마기시(산안)마을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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