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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포승줄에 묶인 채 쇠파이프로 맞아 기절해 있다.
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포승줄에 묶인 채 쇠파이프로 맞아 기절해 있다. ⓒ 불교환경연대
"농성장을 빼앗겼어요. 스님들이 농성장에서 쫓겨났어요."

25일 새벽 3시 20분.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회룡사 주지 성견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승려들의 농성장이 건설 회사측에 의해 침탈당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승려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침탈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면, 새벽 2시 50분경 농성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철조망을 끊고 신원미상의 청년 100여명이 농성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를 처음 본 것은 새벽 기도를 하기 위해 일어나 도량 주위를 살피던 수경스님. 수경스님이 고함을 지르며 주위에서 자고 있던 신도들을 깨우려하자 청년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경스님을 집단적으로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했다.

농성장을 침탈한 청년들은 각 방으로 흩어져 자고 있던 승려 20여명을 농성장 밖으로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승려들이 무저항으로 대응해 큰 인적피해는 없었지만, 망루에 자고 있던 설치미술가 최병수씨는 포승줄로 묶인 채로 청년들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 청년들에 의해 부상을 당한 수경스님과 최병수씨는 청년들이 연행된 후 서울 강북 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법현스님은 "지난 11일 승려로 가장하고 농성장 주위를 맴돌았던 용역깡패들이 이번에는 전경으로 가장하고 농성장을 침탈했다"면서 "용역깡패들은 스포츠머리에 남색 티셔츠와 군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있었다"고 전했다.

법당안에 자고 있던 승려들은 용역깡패들에 의해 쫓겨났고, 법당은 망가져버렸다.
법당안에 자고 있던 승려들은 용역깡패들에 의해 쫓겨났고, 법당은 망가져버렸다. ⓒ 불교환경연대
청년들의 농성장 습격 사건에 놀란 승려들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신고 후 약 1시간이 지나 경찰병력이 도착해 청년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 40분경에 1차로 90여명이 연행됐고, 2차로 30여명을 추가로 연행했다. 청년들은 현재 남양주 경찰서, 포천경찰서, 고양경찰서, 일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한 7시 30분 경 농성장 분위기는 침울했다. 각 방은 청년들의 발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문 앞에 설치해 놓은 모기장은 다 뜯겨져 있었다. 망루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다리는 끊겨 있었고, 승려들의 옷에는 청년들에게 멱살을 잡힌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농성장 침탈 사건에 동원된 청년들폭력배들은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엘리트' 용역회사. 이 회사가 서울, 부산, 광주에서 폭력배 약 100여명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폭력배 외에도 김병호(일공), 추장민(보성)을 주축으로 한 약 30여명의 승려복장의 폭력배들도 동원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병호씨와 추장민씨는 한때 조계종 승려였으나 폭력 등의 행위로 인해 종단의 중징계를 받아 승적이 상실된 자로, 조계종 공동대책위는 이들이 LG건설 측의 사주를 받아 '가짜승려'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계종 공동대책위(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조계종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 성타)는 이번 사건과 관련, 25일 오전 10시 총무원 1층 불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용역깡패들이 흘리고 간 장비들.
용역깡패들이 흘리고 간 장비들. ⓒ 불교환경연대
조계종 공동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25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 상황을 설명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사용해서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공사를 진행하고자 하는" 정부와 건설사를 규탄했다.

또한 조계종 공동대책위는 성명서를 통해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수도권 내에서 심야에 흉기를 소지한 폭력배들이 성직자들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한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폭력배들이 성직자를 흉기로 무차별 폭력하는 충격적인 이번 사태에 대해 일찍이 없었던 법난(法難)으로 간주해 불교계가 할 수 있는 모든 강력한 대처를 시공회사 측에 할 것이며, 이러한 사태가 되도록 방조한 정부당국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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