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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기자의 <최원호 기자의 "체벌은 '구속'의 불씨인가"에 대한 반론>을 읽고, 이 글에 대한 반론을 써야 할 것인지 망설였다. 그러나 이 기자의 반론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몇 마디 덧붙여 보겠다.

필자는 체벌에 대하여 이미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또 다른 폭력 체벌"). 이 기자의 반론에 대한 또 한번의 반론을 제기하기보다는, 여섯 가지로 구분한 반론자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반론 순서에 따라 필자의 견해를 보충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아무리 칼럼이지만, 사건의 경위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그 사건에 연루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의미일 것이다.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토대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칼럼의 특성상 당시의 구체적 행동이나 상황을 일일이 나열하거나 등장인물에 대한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언급하기는 곤란하다. 필자는 언론에 공개 보도된 내용 이상의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글을 썼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둘째, "교사의 학생체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며, '서너 대 가량'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체벌은 별것 아니라는 감정이 들어가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교사가 체벌을 가한 당시의 정황에 대한 교사와 학생의 행동을 나열한 것이지, '체벌은 별것이 아니다'는 식의 표현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회초리로 체벌을 가한 것은 교사의 권한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학생의 뺨을 때린 행위는 교사의 일시적 감정이 개입된 체벌이었다는 사실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학생의 입장에 서보려는 의지가 없다"고 하였다. 반론자가 이와 같이 생각하게 된 것은 정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의 심리나 처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를 언급하면 할수록 오히려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업태도가 불량하고, 과격한 행동, 그대로 집에 가 버리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반론자는 모범학생을 '비행청소년'으로 비하시키기라도 한 것으로 우려하는 모양이지만, 현재 이 학생은 '보호관찰대상'으로 생활하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또한 학부형이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그 당시는 쉬는 시간이어서 학생들이 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복도에서부터 교장실에서까지 욕설을 하고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이 기자가 추측하는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학부모와 교사 관계는 협력관계여야 하지, 전적으로 맡기는 위탁관계가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학부모와 교사 간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유지될수록 교육효과는 높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학부모가 협력할 수 있는 특별한 현장학습 등의 교육활동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위탁관계는 교육제도상 법률적 입장에서 학교에서 행해지는 교육활동을 전적으로 교사에게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학생의 교육활동에 관해 상담하고 건의하고 항의할 수 있는 권리가 학부모에게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는 사실이다.

다섯째, 학부모의 폭력행위 때문에 마치 학교가 "폭력 학습장"이라도 되는 듯이 적고 있으며, 이는 학생들의 상식을 믿지 못한 데서 비롯된 생각일 뿐이라고 하였다. 반론자는 여기에 덧붙여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 사이의 폭력과 교사에 의한 폭력이 아닐 것인가 하고 말한다.

반론자의 이와 같은 생각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여 학부모의 폭력행위가 다른 폭력행위와 구별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이나 교사에 의한 폭력과는 달리 학생들이 학부모의 폭력행위를 보고서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단지 학교 내에서의 학부모의 폭력행위가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우려를 표한 것일 뿐이며, 이러한 우려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여섯째, "학교가 모든 일을 담당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가정으로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필자 또한 이에 공감한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청소년들의 폭력이나 비행의 유일한 원인이 가정교육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학교와 가정에서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사건은 학생이 문제의 원인 제공을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출현과 동시에 폭력사건으로 확대된 경우이기 때문에 가정에서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한 것일 따름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학교 내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쪽에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 각각을 대상으로 하여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번의 글은 이들 가운데 특히 학부모를 주요 대상으로 설정하고 쓴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교사가 해야 할 몫에 대한 지적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글의 논조 자체를 흐려놓는 것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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