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참 갑갑하다. 바로 엊그제까지 “대-한민국”을 외치고 태극기를 휘감고 달린 우리 사천만이 아닌가. 그런데 이를 다시 세대론으로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논객이 있다. 논객이 아니라 남북문제를 내세워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자신의 소영웅주의를 만족시키려는 어설픈 안보상업주의 잡지 <월간조선>의 얼굴격인 조갑제 편집장이다.

흔히 조갑제씨는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극우논객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의 논지는 그 개인의 사견을 담고 있으려니 해왔고 또 그래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 세력을 대변한다고 자임해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번엔 좀 지나쳤다. 해도 너무했다.

그가 월드컵 이후 생각하고 있는 일단을 피력한 글이 <월간조선> 7월호에 실려 있는데 그게 보통글이 아닌 것이다. ‘들어라 30대 빨갱이들아, 20대는 이미 반기를 들었고 50대가 이들을 지도하면 우리는 당장 북진통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논지의 글이다.

제목은 '나의 월드컵일기-50대가 20대에게 보내는 축전', 이른바 ‘편집장의 편지’라고 쓴 그의 개인칼럼과 대특집-월드컵집단체험 “나와 대한민국의 뜨거운 포옹”속에 함께 싣고 있는 그의 글'왜 20대의 천적은 김정일인가'라는 자못 선정적인 글 속에 있다.

그의 30대론은 도식적이고 적개심에 가득 차 있는데 그의 개인감정인지 모르나 자못 악의적이다. 제목 밑에 붙은 전문조차 그렇다. 어떻게 보면 독자를 끌려고 하는 선정주의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50대 430만 명과 20대 800만 명이 인류애에 기초하여 反김정일통일전선을 만든다면 좌파적 30대는 고립되고 나라가 편안해질 것이다.”

가뜩이나 동서지역갈등과 연고주의로 갈려 있는 판국에 이 무슨 엉뚱한 사회학적 분석인가. 그의 30대 혐오론은 어디서 출발한 것인가. 또 나도 속해 있는 50대는 모두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과연 ‘붉은 악마’의 주축인 20대는 그의 이 같은 세대갈등적 시각에 동의할까.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세대론은 더욱 주관적이다.

“지금 50대에 도달한 이 광복 후 1세대는 배고픔을 아는 마지막 세대이자 풍요로움을 맛본 첫 세대였다. 그들의 자녀들이 배고픔을 모르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민족의 원수 김일성과 진정한 악마 김정일에 관심도 없는 ‘붉은 악마’들인 것이다.”

박정희 숭배론자요, 反김일성주의자로서 그가 그 동안 피력해온 논지는 알겠으나 그게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돼야 한다는 위험한 독단주의가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럼 왜 가장 숫자가 많은 830만 명의 30대는 포용할 수 없는가. 조갑제씨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음 글에서 그의 의도가 드러난다.

“한국의 50대는 약 430만 명이다. 50대는 약700만 명인 40대와는 이념적 동맹이 가능하지만 386세대가 주축인 830만 명의 30대와는 불화가 지속될 것이다”라면서 30대 분리론을 내세우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보기에 30대는 좌익이념으로 무장한 지도할 수 없는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인 셈이다.

이렇게 된 데는 4,50대의 지도력부재를 그 원인으로 들고 있을 뿐이다. “좌우이념대결에서 우파적 기성세대가 20대를 이끄는 데 실패한 것도 스스로 용기 있는 지도력을 포기한 때문”이라면서 “(50대는)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옹호할 만한 이념적 논리를 정립하는 데 실패한 세대”라고 단언한다. 아주 위험한 극단론이요 치기 어린 단순논리다.

이런 글을 비평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자 수 20만을 자랑한다는 <월간조선>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두고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단순히 ‘조갑제식 애국심’의 발로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무언가 전략적 아이디어를 내보이고 싶은 음험한 속내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보려는 치졸한 발상이 엿보인다.

▲ 방인철 前 중앙일보 문화부장
“그리하여 50대가 20대를 설득하여 反김정일통일전선에 40대와 함께 묶어둔다면 30대의 좌파는 고립될 것”이라고 ‘30대 고립론을 통한 (우익의)대선승리’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아이디어는 잡지 뒷부분에 별도로 다룬 “행동하는 한국의 우익”에서 빛을 발한다. 아주 배수의 진을 친 계획적 대선 승리전략을 이번 기회에 통째로 드러낸 것이다. 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무서운 세대분리론과 음험한 대권욕망이 그의 글 속에서 엿보인다.

그렇다고 누가 그를 써줄 것인가. 더러운 민족분열주의가 월드컵으로 꽃피운 순수한 애국열정을 이용하려는 것을 누가 참고 있을 것인가. 이런 졸문을 대상으로 한 이 글도 언론평이라고 내어 부치기조차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이다.

*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5>는 7월 18일(목) 소설가 정도상씨의 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릴레이로 4회째를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방인철씨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남북문제 전문가 김창수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상지대 서동만 교수, 김택수 변호사, 한서대 이용성 교수, 소설가 정도상씨, 대학생 오승훈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며 일반독자 1인의 기고를 포함한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의 기고와 ‘최고-최악의 기사’에 대한 의견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 이용. - 편집자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