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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광장의 농성천막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애국심을 이번 사건에서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의정부역 광장의 농성천막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애국심을 이번 사건에서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 이소희
7월 7일로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여중생 범대위)가 의정부역 동부광장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미군기지 폐쇄를 위한' 천막농성을 벌인 지 꼭 일주일째를 맞았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지하철과 의정부 시내를 돌아다니며 선전, 모금활동을 벌이고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밤 11시. 매우 지치고 힘들법도 한데 정작 농성단원들은 하루하루 생활이 '감동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농성장에 조금만 있다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오노가 불지르고, 여중생 사건이 기름붓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농성장 주변에 설치된 선전판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속닥이더니 결국 나란히 서명대에 섰다. 서명을 마치고 나오는 둘을 유심히 보다가 말을 걸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치욕스럽죠. 사람 취급도 안하는 거 아니예요.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랬다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조은애, 경민공고 2)

서명을 하는 학생들
서명을 하는 학생들 ⓒ 이소희
두 학생들은 특히 지난 동계올림픽때 미국 오노 선수가 금메달을 강탈한 사건 이후로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가 이번 일까지 겪게 되니 미국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진 듯했다.

"이번 사건은 너무 심해요. 내 아들 딸이라고 생각해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마침 광장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우리 사인해줘야 되는 거 아냐?"고 하자 "거봐요. 다 똑같잖아요"하고 동의를 구한다. (조)

"그럼 그 전에는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요?"
"미국은 부럽고, 좋은 나라라고만 생각했죠. 9.11 테러땐 도와주고 싶었구요." (최경숙, 경민여상 2)

"지금은요?"
"행동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요. 사고를 내고도 시치미 떼고. 우리나라를 우습게 여기고..."(조)

"이번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우선 미군측이 책임을 인정하고, 방송을 통해 미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야죠. 돈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조)
"우리나라에서 미군이 떠났으면 좋겠어요. 미군기지가 의정부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미군이 나가면 의정부도 많이 발전할 거 아니에요?" (최)

주한미군도 달라져야 한다

무조건 부럽고 좋은 나라였던 미국. 그러나 불과 일년도 안돼 이제는 미군이 우리나라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는 학생들. 이런 급격한 인식의 변화를 단순히 감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의정부 지역 곳곳에서는 이런 달라진 분위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일주일만에 온라인을 제외하고 서명 1만명, 모금이 1200만원에 달한 것만 보아도 반미정서가 시민들 내에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군들은 이런 달라진 한국의 분위기를 모르는 모양이다.

이번 사건도 예전처럼 발뺌하고 대충 넘어가려다 결국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서야 주한미군사령관의 사과 보도자료를 내고, 차량 탑승자 2명을 미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국민여론이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미측이 형사재판권을 포기하고 한국 법정에 차량 탑승자만이 아닌 지휘 책임자까지 불러내 진상을 규명하고, 처벌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성단 황태종(한국 외국어대학교 4학년) 단장 인터뷰

▲ 황태종 씨
- 농성단에 결합하게 된 계기는?
"이 맘 때면 여름 농활을 간다. 계절별 농활까지 대충 17차례 정도 농활을 다녀 온 것 같다. 이번에도 여름 농활을 갈 계획이었으나 이번 사건에 대해 농성을 진행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농성단에 결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전동록 아버님 장례식 날 참가했었는데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에 대해 참 슬펐다. 이번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려서 우리가 목표한 것을 꼭 이루는 투쟁을 잘 만들고 싶다."

- 시민들의 반응은?
"거의 매일 감동의 연속이다. 지금 7일째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첫날 지하철을 약 4-5시간 타면서 선전과 모금활동을 했는데 그날 모금액이 180만원 가량 되었다. 시민들 입에서 '미국놈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하철을 타면 경로석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말씀드리기가 제일 무서웠는데, 한번은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께서 유인물을 받아보시고 선뜻 1만원을 모금하신 것을 보고 참 감동을 받았다.

추모 리본에 '주한미군 물러가라'는 문구가 있는데 예전에 이런 얘기가 나오면 시민들이 그래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군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번 실천활동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신기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분들이 분노하시고 우리들의 주장에 공감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 향후 계획은?
"일단 7월 7일까지 농성단 활동을 할 것이다. 7일은 한총련 학생들이 여름농활을 마치는 날이다. 그날 의정부 2사단 앞에서 4차 규탄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의정부역 주변과 시내를 돌면서 열심히 활동하여 그날 투쟁에 많은 의정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농성장에서 서명과 모금을 받는데 어떤 미군이 여중생 사건을 다루는 거냐고 물어보고는 모금을 했다. 서명한 미군도 있다. 'I'm sorry'라고 하면서 모든 미군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해명도 했다."

-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책임자 처벌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구호로만 그칠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해서 관련 미군들을 처벌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농성은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 계속되며, 7월 8일부터는 황씨에 이어 청년단체 1인이 새롭게 단장을 맡을 예정이다. / 고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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