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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에 들어가면서 남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실상사 작은학교로 유학간 새날이가 6월 마지막 주를 맞아 집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재잘재잘 즐겁던 동생 새들이가 저녁을 아직 못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먹대더니 서러움이 되살아나는지 펑펑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울음 범벅으로 전하는 사연은 이랬다.
누나가 라면을 다 먹고 자기는 한 젓가락만 주었다는 것이다. 끝내 더 주지 않아서 너무 배가 고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면서 다시 온 얼굴이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이었다. 뭔가 심각한 대립이 있지 않고서야 저리도 서럽게 울까 싶을 정도였다.

너무도 충격적인 것은 새날이의 해명이었다.

새들이가 일러바치는 동안 멋쩍은 듯 한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빠는 것까지는 좋았다. 내가 충격으로 깎던 참외를 놓친 것은 새날이 해명 때문이었다.

새들이 눈물 섞인 항변을 싹둑 자르면서, 새들이에게 자기가 준 라면은 아주 긴 것이었다고 반박을 하는 것이었다. 라면 '한 젓가락'은 결국 라면 '한 가닥'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 아빠를 보고 새들이는 울음을 그쳤고 새날이는 너무도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아이스크림만 쪽쪽 빠는 것이었다.

"새들이 말이 다 맞니?" 한참 후에 나는 새날이에게 물었다.
"네...." 새날이의 답변은 아주 덤덤했다.

정말 난감했다. 한참만에 내가 새날이 너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새날이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없다고. 나직하게 다시 물었다.

"저녁때 무슨 일이 일어 난 것이냐?"
"라면을 끓여서 나 혼자 다 먹은 일이요."
"왜 그랬느냐?"
"라면이 하나밖에 없어서 나 혼자 다 먹었어요"
"왜 그렇게 했니?"
"너무 배가 고파서요."
"음…."
"......"
서로 말이 끊어진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랬느냐?"
"나 혼자 먹고 싶어서요."
"새날아"
"네."
"아빠가 다시 물을게. 왜 그랬느냐?"
"새들이 주기 싫어서요"

이 대답이 나는 반가웠다. 아무리 배가 고픈들 동생 새들이와 꼬인 일이 없고서야 이런 일이 생겼으랴 싶었던 것이다. 새날이가 이제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숲을 지나 저수지를 거쳐 돌아오게 했다.

남매에게 양말을 신고 웃옷도 입으라고 일렀다. 시계는 밤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 동안 동네 개들이 얼마나 짖어대는지 좁은 산골마을이 떠나갈 듯 했다. 동네를 벗어나 저수지까지 가는 동안 남매는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내 뒤를 졸졸 따라 왔다.

저수지 아래서 멈춘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오동나무 있는 데까지 둘이 달려갔다 오라고 했다. 둘 사이에 서로 의지하고 돕는 기운이 생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무거운 표정이 풀리고 제법 상기된 채 돌아 온 이들을 이번에는 저수지를 돌아서 오라고 했다. 멈칫대던 아이들은 잠시 후 희끄무레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마을회관 앞에서 우리 셋은 쪼그리고 앉았다.

새날이에게 차분히 말을 건넸다.
"라면을 안 주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새들이 말고 또 있니, 새날아?"
"...기정이(옆집 새들이 친구) 하구요. 그리고는 새들이 친구들 다요."
"왜?"
"새들이가 나한테 누나 취급을 안하니까 걔들도 나보고 함부로 하는 것 같아서요."
"그럼 걔들 말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네가 비록 배가 고팠었지만 라면을 주었겠니?"
"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눠 먹었을 거예요"
"라면을 나눠주게 되는 사람과 안 주게 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니?"
"제가 싫어하는 사람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부녀간에 대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생겨났다. 새들이는 너무 졸린지 마루 기둥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그래. 네가 네 자신의 속마음을 잘 발견 해 내서 아빠가 참 반갑다.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도록 하자."
"네."
"자, 지금부터 아빠가 이야기를 좀 할게. 잘 들어봐라"
"네."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나한테 잘 해주면 좋구요. 잘 못해주면 싫구요. 그러는 거 아녜요?"
"잘 해 준다는 것은 늘 한결같더냐?"
"그게 무슨 말인데요. 아빠?"
"가령 어떤 사람이 너한테 잘해줄 때 그렇게 해주면 항상 좋은 것인지 묻는거야."
"아뇨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제 기분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거다."
"......"
"아빠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겠니?"
"네. 기분이라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결국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씀 아녜요?"
"그래. 네가 제대로 이해했구나. 아빠 말에 동의가 되는지 묻고 싶다."
"네. 제 생각도 그런 것 같아요"
"새들이랑 잘 지내라."
"네. 잘 지낼게요 아빠."

이렇게 한 시간 정도에 걸쳐 새날이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더니 살 것 같았다. 그동안 모기들이 내 종아리 살을 사정없이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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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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