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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축구가 그렇게도 열망했던 16강 진입에 이어 8강까지 정복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강인한 체력과 스피드가 그 원동력이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선수들과 모든 국민들 사이에 최소한 16강 진입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상호 신뢰가 있었다. 특히 온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보여준 응집력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나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호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다. 이를 경제에 적용해 보자. 한 나라의 생산능력은 노동, 자본, 기술 등의 생산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다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된다면 그 경제는 생산요소에 의해 정해진 능력 이상으로 높은 생산력을 갖게 된다.

흔히 경제학에서 다루는 게임 이론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갑'과 '을'이라는 두 사람이 있고 게임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갑에게 백원이 주어진다. 갑은 을에게 이 돈의 전부나 일부를 주어야 하고, 이 금액만큼 외부에서 을에게 다시 주어진다. 을은 결국 갑에게서 받은 돈의 두 배만큼 얻게 되고 이를 다시 갑과 나누어 가진다.

이 게임에서 갑과 을 사이에 완전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갑은 을에게 백원 전부를 주고 을은 외부에서 받은 백원까지 합쳐 이백원을 갖게 된다. 을은 다시 절반인 백원을 갑에게 주고 이 두 사람은 결국 상호 신뢰 때문에 백원씩 나눠 가지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갑과 을이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면 갑은 을에게 백원 전부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이들이 갖는 돈은 아무리해도 이백원을 넘지 못한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 혹은 경제는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올해 미국의 거시경제 지표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5.6% 증가할 만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기업들은 생산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22% 하락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6월 18일까지 21%나 떨어져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기업수익도 지난 5분기 동안 큰 폭의 감소에서 올해 2/4분기부터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주가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회계에 대한 불신이 미국 주식시장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엔론(Enron)이 부실 회계 문제로 시장의 신뢰를 잃고 파산했고, 이어서 월드컴(WorldCom), 글로벌크로싱(Global Crossing) 같은 기업들도 어려운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증권시장 분위기는 '과거의 실적도 못 믿겠는데 어떻게 미래의 기업 수익 증가를 받아들이고 투자를 하겠냐'는 것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고 자금 조달 비용도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기업들의 투자는 위축되고 미래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한 주가 하락에 따른 가계 부(wealth)의 감소는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이는 기업의 매출을 줄이고 경기 둔화를 초래한다.

앞으로 미국 투자자들까지도 자신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자금이 유출되어 미국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2분기 세계금융안정성(Global Financial Stability)에 관한 보고서에서 이런 경고를 내보냈다.

우리도 상호 신뢰의 부족 때문에 여러 군데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상호간의 신뢰가 부족한 정치권에서 그 예를 가장 잘 볼 수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 사이에서도 상호 불신으로 높은 거래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불안한 노사관계 때문에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투명성 결여로 주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상호 신뢰에 근거를 둔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전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삶은 사회적 삶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그 무대가 되는 사회의 관행과 도덕, 관습 따위를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월드컵으로 형성된 사회적 자본이 경제 각 분야에 퍼져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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