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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안의 매화나무가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 매화나무를 차츰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살충제를 뿌리라는 것을 그대로 뒀더니 진딧물이 차츰 세력을 확장시켜 급기야 매화나무 한 그루는 반쯤 말라 죽어버리고 또 한 그루가 위태롭습니다.

진딧물이 붙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개미들이 부지런히 오고 갑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담배 우린 물을 뿌려봅니다. 담뱃진에 진딧물이야 죽겠지만 문제는 진딧물보다 개미입니다. 개미들이 있는 한 진딧물은 또 생길테니 말이지요.

사람은 저 먹자고 매실나무를 기르고, 개미는 저 살자고 진딧물을 기르는 것을 마냥 개미들만 탓할 수도 없고, 난감하기만 합니다.

개미가 인류만큼이나 뛰어난 농부며, 목축가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저 작은 검은 개미들이 매화나무나 무궁화 나무에 진딧물을 기르듯이 검은 큰 개미는 도로나 테니스 코트 등에 작은 모래산을 만들고 진딧물을 기릅니다.

개미가 진딧물의 옆 배를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진딧물은 꼬리에서 개미가 아주 좋아하는 달콤한 즙을 내놓기 때문이지요. 그 대가로 개미는 진딧물을 무당벌레나 물잠자리 같은 천적들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나뭇잎 위에 진딧물을 기르는 개미들은 심지어 양치기가 양을 몰 듯이 진딧물을 이 잎 저 잎으로 몰고 다니며 사육하기까지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미들은 진딧물뿐만 아니라 뿔매미, 매미충, 깍지벌레들을 나무줄기나 이파리에 방목하는데 레몬 개미들 같은 경우는 아애 개미집 안에 외양간을 마련해 두고 깍지 벌레를 기르기도 한다는군요.

수확 개미는 많은 씨앗을 저장했다가 발아하는 씨앗이 생기면 집 밖에다 버립니다. 거기에 뿌리내린 씨앗에서 식물이 자라나면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메리카 전역에 사는 버섯개미나 가위개미는 버섯을 재배해서 먹고삽니다. 이 개미는 나뭇잎을 둥글게 잘라 집으로 운반한 뒤 잘게 씹어서 뱉은 다음 그 위에다 버섯을 양식해 식량으로 쓴다지요. 버섯 농장의 꼬마 일개미 농부들은 농장 청소와 김매기, 수확하기 등의 농사일을 사람 농부만큼이나 정확히 해냅니다.

담뱃진 세례를 받은 매화나무 위의 진딧물들이 하얗게 말라죽어 갑니다. 개미들은 죽어 가는 가축들을 달리 손써 볼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천재지변의 대재앙 앞에 망연자실해 있지 않습니다. 또 어딘가로 부지런히 달려 갑니다. 실의를 툴툴 털고 다시 진딧물들을 몰고 오려는 것일 테지요.

저렇듯 개미마저도 온갖 시련을 견디며 경작하고, 목축하는 수고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먹을 것을 거둬들이는데, 사람인 나는 어떠합니까.
탐욕에 눈 먼 불로소득자들을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적자산으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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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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