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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드문드문 미소짓게 만드는, 유머 넘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상실의 시대'만 봐도 그렇다. 주인공의 룸메이트인 '돌격대'가 금문교 사진을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한다느니, 사회개혁과 김밥에 매실장아찌 말고 다른 것을 넣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미도리의 항변 등이 우리를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었다.

특히 그런 '유머'의 미덕은 그의 단편소설들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 '빵가게 재습격'이란 단편은 거의 한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한 유머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 '빵가게 재습격'은 '빵가게 습격'이란 단편의 속편격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빵가게 습격'에서 주인공과 친구는 일하기 싫어하는 백수로, 너무도 배가 고팠지만 일을 하긴 싫었기 때문에 식칼을 들고 빵집을 털러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빵가게 주인은 그들에게 엉뚱한 '제안'을 한다. 바그너의 음악을 끝까지 앉아서 들어준다면 빵을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좋다고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빵을 강탈하는 것이 그들의 원래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얌전히 음악을 듣고는 그 대가로 빵을 가져와 배불리 먹는다.

속편인 이 '빵가게 재습격'은 전편보다 훨씬 더한 재미를 안겨준다. 과거의 백수였던 '나'는 이제 결혼해서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그러다 신혼초의 어느 날, 둘은 늦은 밤중에 격렬한 배고픔을 느낀다. 어떻게 해볼 도리조차 없는 극심한 공복감이다.

그러나 집 안에는 허기를 채울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다 '나'는 아내에게 과거의 '빵가게 습격' 이야기를 해주고, 아내는 이 배고픔이 과거의 실수. 즉 빵을 '강탈'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일'의 대가로 지불받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총을 들고 자동차에 탄 채로 도쿄 시내의 문을 연 빵가게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새벽에 빵가게가 열려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그 저주를 풀기 위해 빵을 강탈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여기서 아내는 기가 막힌 임기응변을 발휘하고 배고픔의 저주를 푸는데…. 그 뒷부분은 스포일러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일을 하기 싫어서' 빵가게를 습격한다. 그리고 '목적'과는 달리 '강탈' 대신 '음악을 듣는' 일종의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빵'을 받는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결혼 후까지 배고픔의 '저주'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들은 단순히 웃어넘기고 말기엔 의미심장하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가 사회화되기를 거부하고, 일반적 의미에서의 '직업의식'이란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면 군말 않고 하는 것뿐이다. 오죽하면 '댄스댄스댄스'의 주인공인 자유기고가는 자신의 직업을 가리켜 '눈을 치우는 작업'과 같다고까지 이야기했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노동', 그것도 목적을 지닌 '일'이란 것은 고난이며, 그 자체로 저주인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빵을 '강탈'한 게 아니라 음악을 듣는다는 특수한 '노동'의 대가로 지불받았기 때문에 저주에 시달렸다는 얘기다(우습게도,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 중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일'을 하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태엽 감는 새'의 오카다 도루는 찾아오는 여자들과의 의식의 섹스를 직업으로 삼고, '댄스댄스댄스'의 '나'는 소녀 유키를 돌봐주는 일로 소일한다).

그리고 그 저주를 풀 방법은 다시 빵가게를 습격해서 정말로 빵을 '강탈'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이는 현대적 산업사회와 직업체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직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현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종류의 직업과 일들. 그것들은 고대 원시사회에서라면 '있지도 않았을 것들'이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낭비에 불과했을 것이다(과연 고대인들이 벤처기업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온갖 불필요한 것들이 생겨나면서(텔레비전, 라디오, 주식, 게임기… 모두 다 근본적으로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만드는 이가 생겨나고, 그것들을 고치는 이가 생겨나고, 그것을 판매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쓸데없는 '새로운 것'들이 쓸데없는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있지도 않았을 법한 온갖 직업과 일거리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당신이 오늘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그 '일'은 대체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그 '일'은 당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그리고 그 '일'을 함으로서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되어 나가고 있는가?"

블랙 코미디 속의 진지한 인생에 대한 성찰.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닌 파워다.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문학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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