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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 오마이뉴스의 ID는 invictus라는 단어이다. 난 이 단어를 매우 좋아하고 이런 제목을 지닌 William Ernest Henly가 만든 영시를 애송한다. 굴종하지 않음, 불굴의 의지 정도로 해석되는 이 라틴어가 지극하게 어울리는 뮤지션이 하나 있기에 지금 소개하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밴 모리슨이다.

영국의 리듬 앤 블루스/ 비트/ 모드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굵게 장식한 밴드인 Them에서 음악을 시작한 1집인 Blowin' Your Mind에서만 보아도 백인인데 그것도 영국출신의 음악인이 멋지게 Blues를 연주했던 재주있는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음반과 세 번째 음반인 Astral Weeks와 Moondance에서 보여주었던 블루스 필링이 가미된 명상음악은 실로 지대한 충격이었다. 비록 그 어떤 챠트에도 흔적이 없지만 '죽음'을 읊조리는 완벽한 즉흥연주를 만들어낸 이가 Them출신의 그것도 'Brown eyed girl'이라는 범블검 사운드<1>를 표방한 히트곡을 가진 가수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음반을 낼 때까지의 잠깐의 시간동안 지극한 산화를 거쳐버린 어두워지고 명상적이며 불투명하게 변해버린 그의 음악세계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의 색채를 접붙이기 시작한다. 그가 발표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나타나는 음반(물론 후에 Irish Heartbeat라는 Chieftains<2>와의 협동음반을 발표하지만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음반이다.)이자 그가 발표한 아홉 번째 음반이 'Veedon Fleece'를 소개하려 한다.

밴 모리슨이 1970년대에 발표한 일련의 음반들에서 성취한 음악적 성과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물론 챠트에서의 성적이야 초라하였지만 누가 듣더라도 의식있는 음악인. 대중음악의 뿌리에 제대로 접근한 음악인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었다. 그런 그가 이 음반에서는 특유의 블루스 필링으로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어법에 충실한 목가(牧歌)를 들려준다.

피아노와 슬라이드 기타<3>를 주된 악기로 진행하는 차분한 포크 블루스를 표방하는 첫 곡 'Fair Play'의 느낌은 그야말로 목가적이다. 느긋하고 서정적인 감상이 뭉클하게 스며드는 곡이다. 그의 초기음반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현악 편곡자인 Jaff Labes의 기량을 느낄 수 있는 'Linden Arden Stole the Highlights'의 고즈넉한 서정역시 이 음반의 가장 주된 명제인 블루스를 가미한 목가라는 것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가히 이 음반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트랙은 4번째로 흘러나오는 'Street of Arklow'라 할 수 있다. 끈끈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도입부에 흐르며 그 기저에는 마치 대기가 일렁이는 듯한 영묘한 소리의 켈틱 휘슬이 흐른다. 그러다 절정부에 이르면 현이 가세하며 한층 장엄한 분위기를 몰아주며 결정적으로 절규하는 듯한 불투명한 밴 모리슨의 목소리가 용솟음친다.

장엄한 분위기 뒤에는 자신을 부르는 곳에서의 요구에 응하려는 수천년을 이어온 보헤미안의 우수가 숨겨져 있는 듯한 곡이다. Street of Arklow의 분위기가 다소 갈무리되어 흐르는 'You Don't Pull No Punches, But You Don't Push The River'는 장대하지만 막힘이 없는 수려한 진행이 아름다운 곡이다.

일곱 번째 트랙인 'Cul De Sac'역시 느림의 미학을 담고 있는 곡이다. 피아노를 주된 테제로 삼아 흐르는 곡의 중간에 삽입된 블루지한 기타는 담백함 그 자체. 거기에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을 벗삼아 흐르는 고백적인 밴 모리슨의 목소리가 구슬픈 'Come Here My Love'의 매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켈틱 휘슬과 어쿠스틱 기타로만 구성된 안락한 'Country Fair'. 격렬한 자아의 발견 뒤에 휴식이 보장된다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그의 불투명한 목소리는 이 음반 안에서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렬하게 토해낸다. 이 모든 것이 감정의 핵을 꿰뚫는 그만의 날카로운 시각이 담겨 있다.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Irish로서의 정체성의 탐구라는 창작 동기는 서로 부딪히며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이것을 바라보는 청자는 순간 Irish가 아니라 '영국의 이방인이 바라본 아일랜드'를 느끼게 되며, 새로운 시선을 얻게되는 순간 미묘한 예술적 승화를 체험하게 된다.

특유의 씁쓸한 음성으로 주류에서 표류하지 않으며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고한 주장을 내뱉었던 진짜배기 아티스트에게 'Invictus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이'라는 단촐한 헌사를 바치며 글을 마치려 한다.

덧붙이는 글 | <1> 범블검 사운드(Bumbble-Gum Sound) : 부드러운 리듬 앤 블루스에서 파생된 음악의 한 형태. 달콤한 멜로디, 찰랑거리는 율동감, 키치한 표현의 가사로 대표되는 쟝르이다. 당시에는 많이 무시당하는 마이너 컬쳐였지만 지금은 그 중요성을 당당히 인정받는 쟝르이다.

<2> Chieftains : 아일랜드의 대 그룹중 하나. 40장이 넘는 디스코 그라피를 가졌으며 가장 민속적인 아일랜드의 음악들중에서도 저그 댄스 뮤직을 들려주는 밴드이다.  

<3> 슬라이드 기타(Slide-Guitar) : 기타를 연주할 때 운지하는 손가락에 병이나 나이프를 대어서 소리를 끌며 내는 주법. 블루스 기타의 주법중에 가장 중요한 주법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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