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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16부작 국민 경선이 지난주 토요일에 마침내 끝났습니다. 3월 9일 제주에서 시작되었을 때에는 7명의 후보들이 나와서 저마다 자신을 홍보하며 표를 달라고 선거인단에게 호소했는데, 그동안 경선이 진행되면서 5명이 사퇴하여 결국 노무현 후보와 정동영 후보만이 마지막 서울 경선까지 왔습니다.

난 처음부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에게 관심을 거의 갖지 않고 오직 경쟁자인 이인제 후보의 득표만을 보면서 노무현 후보와 비교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제주부터 시작된 경선은 정말로 흥미진진하였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인제 후보가 전남 경선이 끝난 뒤인 지난 17일 후보직을 사퇴하는 바람에 경선의 열기가 삽시간에 식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최대 경쟁자가 사퇴한 경선은 누가 보더라도 더 이상 진행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표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났기 때문에 계속 진행한다는 것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뒤에 열린 부산 경선에서 투표율이 40%로 격감되었고 경기 경선은 선거의 의미를 재점검해야 하는 수치인 20%에 머물렀습니다.

난 정동영 후보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합동 토론회를 여러 번 봤지만 워낙 당선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잘 관찰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경선을 관철시킨 장본인으로서 표가 적더라도 끝까지 경선을 완주하겠다는 다짐을 수차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난 그 말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후보들도 모두가 한결같이 절대로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고 국민 앞에서 공언했지만 전부 어겼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후보와 선두를 다투던 이인제 후보가 승산이 없음을 판단하고 사퇴했을 정도라면 정동영 후보는 말할 것도 없이 그만두고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습니다. 노무현 후보도 내심 이것을 바랐습니다. 승부가 이미 결정된, 국민들의 관심을 이제는 더 이상 끌지 못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간다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반 국민들의 예상을 깨고 스스로가 국민 앞에서 수없이 천명한 약속-끝까지 경선을 완주한다는-을 꿋꿋하게 지켜냈습니다.

그 때부터 정동영 후보를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언행도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사퇴한 이후 남은 경선은 부산과 경기와 서울 세 곳이었습니다. 나를 실망시킨 발언이 부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서 나왔습니다. 정동영 후보에게 부산의 표를 모두 주라는 연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에게 표가 예상 밖으로 많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경선을 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가진 자가 여유를 부렸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인단에게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경기 경선에서 이변을 낳았습니다. 비록 20%라는 낮은 투표율이지만 처음으로 1등을 하였습니다. 이 결과를 보고 난 경선이 희화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과를 보고 노무현 후보도 의아하게 여겼지만 솔직하게 수긍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1등은 1등입니다. 어쩌면 1등에 안주한 노무현 후보가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뛰지 않은 데 대한 선거인단의 채찍질이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는 눈에 대하여 선거인단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드디어 서울 경선입니다. 경기에서 뜻밖의 상처를 입은 노무현 후보가 이번에는 있는 힘을 다해 선거 운동을 하였습니다. 물론 정동영 후보도 마지막까지 서울 전역을 돌면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결과는 노무현 후보가 60% 정도, 정동영 후보가 40% 정도 표를 얻었습니다. 투표율은 다행히(?) 경기보다는 높은 30%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정동영 후보는 그가 처음에 국민 앞에서 공언한대로 16곳을 도는 기나긴 국민 참여 경선 결승점까지 왔습니다. 큰 일을 해낸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정동영 후보는 부산 경선에서 개표 결과가 있은 다음에 1등을 한 노무현 후보보다 앞서서 경선 소감을 연설했습니다. 경기에서는 당연히 1등이므로 소감을 흥분된 어조로 말했습니다. 서울 경선에서는 2등을 했지만 노무현 후보보다 앞서서 경선 소감을 수많은 선거인단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그 연설이 잠실 체육관에 참석해서 직접 들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옆에서 본 노무현 후보는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고 이렇게 마지막 서울 경선까지 왔기에 노무현 후보는 영광스럽게 이렇게 많은 선거인단 앞에서 당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후보처럼 사퇴했더라면 이런 감격과 영광을 노무현 후보는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은 나의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았습니다. 맞습니다. 그의 이 발언은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다 맞습니다. 그가 사퇴하지 않고 완주했기에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 대선 후보 당선이 더욱 빛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후보로 당선되어 기뻐하는 노무현 후보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정동영 후보가 사퇴했더라면, 그래서 추대 형식으로 확정되는 절차를 밟았더라면 그런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일을 바로 정동영 후보가 해낸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토론회에서, 혹은 경선 연설에서 여러 차례 민주당 경선의 의미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번 경선을 통해 민주당은 두 가지를 다 얻어내야 명실상부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경쟁력 있는 강력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선의 제도 그 자체를 확실하게 정립해야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개인적으로 최악의 상태에서 이 두 가지를 위해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해냈습니다.

비록 투표율이 너무 저조하여 색이 많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전체 선거인단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기와 서울 선거인단의 견해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정동영 후보의 발언도 보통 이상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노력하고 힘을 기울이어 그는 노무현 후보와 함께 서울 경선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전체적으로 노무현 후보는 70% 정도, 정동영 후보는 30% 정도로 표 차이가 많이 났지만 그는 그 많은 표 차이 이상의 큰 일을 해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소중한 민주당의 자산입니다. 그 일을 정동영 후보가 이번 경선을 통해 보기 좋게 해낸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 개인적으로는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표가 나오지 않고 하위권에서 계속 머물러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인제 후보마저 그만두었을 때 같이 사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사퇴 압력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우리들이 그가 되어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갈등과 아픔을 처절한 몸짓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꼭 경선을 통해 갖고 싶었던 두 가지를 모두 얻어냈습니다. 상대 당 후보를 압도하는 강한 후보를 뽑았고, 국민들에게 정치도 재미있다는 국민 참여 경선 제도를 보기 좋게 탄생시켰고 마무리했습니다.

정동영 후보의 연설 내용처럼 이번 경선은 승자가 노무현 후보 한 명이 아닙니다. 정동영 후보 그 자신도 마찬가지로 승자입니다. 그는 서울 경선에서 그동안 경쟁자로서 선의의 싸움을 했던 7명의 후보들이 다 나와서 최종적으로 선출되는 후보를 위해 축하해주며 하나가 되자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이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것을 지켜본 수많은 국민들은 그의 이 말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 감히 이 땅에도 정치인들이 신의가 있고 존경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정동영 후보가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 땅의 정치 풍토를 올바르게 만들어 나가는 밀알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마지막까지 경선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습니다. 승자를 향해 박수를 보내주며 그 승자의 대선 승리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그의 말이 우리들을 감동시킵니다. 이번에 보여준 그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시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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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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