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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 가는 미용봉사였지만 행사를 할 때마다 늘 긴장되고 '주민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지만, 마치고 나면 미흡한 부분이 많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2년 4월 15일(월)
전날부터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빗속을 헤치며 단 1분도 쉬지 않고 차를 달려 소록도 중앙리에 있는 주민후생복지관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빠른 오전 10시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지난 번 머리하러 오셨던 한 주민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그 분 손을 잡고 복지관 홀에 들어가니 많은 주민들이 차분하게 앉아 계셨다. '오늘은 비가 와서 주민들이 모이기가 힘드실 텐데...' 걱정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할머니 할아버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인사를 건네자, 대부분 낯익은 분들이었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갑게 악수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비품을 꺼내고 퍼머와 커트팀으로 나누어 작업을 시작했을 때, 새마을 부락회관에 20여 분이 기다리고 계신다는 연락이 와서 커트팀이 그곳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이곳에 커트만 하러 오신 많은 분들이 오랜 시간 기다리셔야 했는데 지금도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새마을 부락에서 작업을 마치고 온 강숙희 회원은 그곳에서 40여 명의 주민들을 커트해 드렸는데 대부분 시력을 잃으시고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만 부락회관까지 오실 수 있는 심히 나약한 분들이었다고 상기된 모습으로 얘기를 했다.

다시 몇 분의 머리를 손질했을 때 이번에는 동생리에 사는 한 주민이 찾아와 "가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제 옆집 사는 분인데 오늘 꼭 이발을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호소하다시피 말씀하셔서 두 명의 봉사자와 함께 차를 달려 찾아갔다.

그 집은 바깥출입이 어려운 노부부가 살고 계셨다.
할머니의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함께 간 주민이 이 할아버지는 79세로 소록도 온지 오래되었고 소록도의 슬픈역사를 다 기억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했다.

육신이 상할대로 상해, 방 안에서의 거동도 힘드셨던 그 어르신은 "뉘시오? 어디서 왔소?"하셔서 소사모(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daum.net/ilovesosamo)에서 미용봉사 왔는데 봉사자들이 전원 광주중앙교회 성도들이라고 말씀드리자 "나는 고향이 고흥 K면인데 이곳에 온지 62년이 되었지만 고향에 한번도 간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가 기도하겠습니다"하셔서 우리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 각자 서 있는 자세로 함께 기도를 했다. "소외되고 외로운 우리를 찾아와서 미용봉사를 해준 봉사자들의 섬기는 교회와 가정에 복을 내려 주십사"라고 청년의 음성으로 기도를 해 주시고 내집에 찾아온 것에 대해 그리도 기뻐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집 밖을 내다 보았다.
방문만 열면 아름드리 나무숲이 보이고 바로 눈앞에 넓은 바다가 보였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없는 이분은 60여 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나뭇잎들이 스치는 바람소리, 아침마다 밀려드는 파도소리, 때로는 폭풍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셨을텐데 이 소리를 들으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전부를 신에게 의지하며 사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일곱살 고향을 떠나올 때 얼마나 억울함과 슬픔이 크셨기에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한 번도 찾으시지 않으셨을까. 그 집을 나오면서 우리는 이런 분들을 위해 미용봉사가 필요하다며 다음 봉사 때는 커트팀을 보강해 지정된 장소에 못 오신 분들을 위해 방문해서 머리를 손질해 드릴수 있는 계획을 세워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중앙교회 제1여전도회에서 찰밥 1말을 새벽에 쪄서 주먹밥으로 만들어 보내 주셔서 점심 때가 되자 김과 단무지를 곁들여 오신분들에게 나누어 드렸는데, 대부분 드시지 않아 따뜻할 때 드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귀한 것 받았으니 집에가서 가족들과 먹을란다"고 하셨지만 속내는 손이 없어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으셨던 것 같았다. 찰밥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하셨기에 집에 가셔서 편안하게 드실 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래도 음식 나누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기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봉사는 지난 번과는 사뭇 달랐다.
주민 120명의 머리를 퍼머와 커트를 해드렸는데 머리하는 동안 주민들이 너무나 편하게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하시고, 지난 번 머리하고 다들 예쁜 머리 했다고 해서 오늘만 기다렸다는 분들도 계셨고, 밭에 고구마, 호박 등을 심어 수확철에 오면 봉사자들에게 많이많이 주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누군가에게 줄 대상이 있어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하는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그분들에게 행복한 위안이 되기를 빌었다.

한 봉사자는 직접 퍼머를 해드린 주민이 머리가 끝나 집으로 가실 때 다음봉사 때 만나자고 길게 손을 흔들며 배웅까지 하는것을 보면서, 우리의 작은 관심이 주민들과 이제는 친부모형제처럼 정을 주고 받는 사랑으로 이어져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은 일찍 서둘러 출발을 했는데 막 비개인 후라 짙게 깔린 밤안개로 인해 도로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다소 긴장이 되었지만 이 모든 일들이 소록도에 사신 분들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피곤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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