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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 가는 염소들을 보면서 저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이익을 취하려고 기르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단지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서 치료해 주다 보니 우연히 키우게 됐고, 거기다 새끼까지 낳아 버렸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누군가는 참으로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비난 할 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큰 고민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단순한 문제가 나에게 이르러서는 왜 이다지도 복잡해지는 건지.

세연지 연못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몰두해 있는데 아기염소 두 녀석이 펄쩍 바위로 뛰어 오릅니다.
녀석들은 내 옷자락을 물어 당기고, 단추를 씹어보고, 내 무릎에 머리를 부딪치며 장난을 걸어옵니다.
나는 무심한 척 하다가 녀석들의 장난을 받아 줍니다.
한 녀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슬쩍 밀어냅니다.

녀석은 뒤로 주춤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돌진해 옵니다.
나는 이제 모르는 척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 책읽기에 열중합니다.
그러자 녀석은 읽고 있던 책 위로 올라와 털썩 주저 앉습니다.
얀마, 저리 비켜. 녀석은 꼼짝도 않습니다.
사실 나도 녀석의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싫지 않습니다.

세연정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어, 저거 개 아냐, 주인한테 착 붙어서 가만히 있네"
"아냐, 이 사람아, 염소야, 흑염소."
"그렇군, 사람하고 염소가 같이 책을 보네."
"참, 개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들도 사람의 마음을 안다니까.
그래서 그러지 않던가, 진심으로 대하면 호랑이하고도 친해질 수 있다고"
나는 뒤 꼭지가 간지러워도 긁지 못하고 그저 책에만 눈을 꽂고 있습니다.

이 귀엽고, 어린 염소들.
나는 이처럼 염소들과 화목합니다.
들판은 평화롭고 연못의 수면은 잠잠합니다.
나와 염소들은 결코 다투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과 땅위의 개미나 무당벌레, 물 속의 잉어, 가물치,
피라미들과도 다투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로 많은 동물들과 화친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평화주의자입니까.

염소에게 그렇듯이, 나무와 풀들과, 물이끼와 바위와 바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새벽길 안개와 어깨동무하고, 산에 올라 산등성이를 애무하고, 숲의 정령들과 한 몸이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주의자입니까.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화합하지도 못하는 내가 단지 염소들과 화평하고 물고기와 이야기 한다해서 아름다운 인간입니까.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내가 온갖 동물과 식물과 무생물과 대화 한다해서 영적인 인간입니까.

건너편 세연정 정자 난간에서 누군가 나와 염소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나는 틀림없이 자연과 일체 된 조화로운 인간으로 비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겠습니까.

아, 이 또한 나쁜 버릇이며 고질병입니다.
지금 이 순간 어린 염소들과 교감하고, 따뜻한 봄 햇살과, 봄바람 속에 몸을 맡겨 책을 읽으며 행복하면 될 것을, 괜히 분석하려 들어 스스로 기분을 망치고 맙니다.

잔 줄 알았던 바람이 다시 거세 집니다.
폭풍주의보가 해제 됐으나 바람은 아주 물러간 것이 아닙니다.
바람은 바람 자신의 일에만 관심 둘 뿐 인간까지 배려하지는 않습니다.
염소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바람에게도, 염소에게도 결코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곧 염소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연은 무자비합니다.
염소도 그러할 것입니다.
나 또한 무자비해 지면 간단한 것을, 자비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계속 키울까.
자연사 할 때까지 키운다는 것은 참으로 난망한 일입니다.
묶어 키울 수밖에 없으니 그러자면 나 역시 염소의 밧줄에 묶여 운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팔아버려야 할 것인가.
저 어린 것들을 개나 염소를 사러 다니는 개장수나 흑염소 중탕집에다가.

어차피 온전히 살다가 자연사하지 못하고 고기로 팔릴 운명이라면, 형편이 어려운 동네 노인들에게 키워 팔아 가용 돈이나 하시라고 나눠 줘 버릴까.

아니, 그럴 것이 아니라, 깊은 산중으로 데려가서 그냥 풀어 줘 버릴까.
그렇다면 어차피 오래 가지는 못할 겁니다.
곧 누군가에게 잡혀 먹히게 될 테지요.
그래도 그냥 풀어 줄까.
죽을 때 죽더라도 잠시나마 자유롭게 살다 가라고.

우주의 유일한 지배자는 시간일 따름인 것을, 나는 어쩌다 이 염소들의 운명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요.
이렇듯 누군가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것은 복이 아니라 고통이며 저주인 것을.
나는 대체 어떤 주문을 찾아 외워야만 이 저주에서 풀려 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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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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