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정자(63) 씨를 처음 만나러 간 것은 작년 11월 8일. 식물인간 상태라고 들었기에 병원에 가는 와중에도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가족분들께 첫마디로 뭐라고 해야 하나, 피해자 분들을 만날 때면 항상 하는 고민이긴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의 피해자를 만나긴 처음이라 더 긴장되고, 부담스러운 건 당연했다.

그런데, 막상 입원실에 들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전 씨를 보고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씨가 비록 초점이 흐리긴 해도 마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순간 전 씨가 식물인간 상태가 아닌가 싶어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눈을 뜨고 있어도 실제 보지는 못해요. 뇌의 기능이 정지해 있으니까요."

옆에서 전 씨의 둘째아들 김성용(39) 씨가 설명해준다. 그 동안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는 과연 식물인간 상태가 어떤 건지 아주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여도 눈과 입은 조금씩 움직일 수 있고, 가끔 손도 약간 움직이긴 하는데,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보자면 무의식중에 반사신경에 의한 것이라며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도 가족들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 씨가 깨어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식물인간 상태에 보험처리도 안돼

전 씨가 사고를 당한 건 작년 7월 1일. 그날 밤 9시 10분경 경기도 오산시 오산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받고 길을 건너려다 미군 키르비 로니디 하사(평택 캠프 험프리스 근무. 당시 27세)가 신호를 위반하고 운전하던 차량에 치인 것이다.

사고 직후 곧바로 병원에 후송됐지만 상태가 너무 심각해 다들 살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머리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얼굴도 찰과상으로 온통 피범벅이라 처음에는 아들 김 씨조차 어머니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고로 전 씨는 초진 12주의 진단을 받고, 사고 후 9개월이 넘는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미군 차량이 무보험 차량이라 보험처리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은 병원대로 보험사의 지불보증이 없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나왔다. 다급해진 가족들이 미군측에 치료비 지불 보증을 문서로 작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미배상사무소에서 병원측에 공문을 하나 보내왔지만 '치료비는 배상금이 지급됨과 동시에 틀림없이 지급될 것이다'는 원칙적인 말뿐이었다. 어느 병원도 미군측 공문만을 믿고 치료를 해주려는 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하면 비공무중 사고의 경우 미배상사무소에서 손해배상을 해주긴 하지만, 사실상 위로금 성격에 지나지 않아 충분한 배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지급 결정까지 시일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침 전 씨를 모시고 살던 막내아들이 가입한 무보험차 상해보험에 따라 보험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로써 사고 약 두 달 뒤부터는 자동차 보험이 적용되어 적어도 치료비 걱정은 덜게 됐다. 그 두 달간이 가족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해미군, 끝까지 범죄사실 부인

"내가 미군측에서 처음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나왔더라면 이러지 않았죠. 나도 처음엔 형사합의를 해주려고 했어요. 이미 난 사고는 되돌릴 수도 없는 거고, 교통사고라는 게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거잖아요. 아주 한순간이거든요. 나도 운전하니까 잘 알죠. 젊은 나이에 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런데, 가해미군이 전혀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예요."

김 씨는 가해미군의 형사처벌을 바라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사고 직후 가해미군은 피해자 입원 병실을 찾아와 울면서 사과하고, 치료비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은행에서 2만달러 한도 내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대출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매달 봉급에서 조금씩 떼어주면 안되겠냐고 하였다. 그러나 가해미군은 재판 과정에서 형사합의가 안된 것이 "피해 가족이 너무 많은 액수의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가족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더구나 가해미군은 자신의 신호위반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증인신문때는 피해자측 증인으로 나온 목격자가 시간이 흐르고 해서인지 사고 정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자 당신이 현장에 있었던 것 맞냐며 호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죄를 깊이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사합의란 도저히 성사될 수 없는 것이었다.

1심에서 징역 8월 선고

아마도 이러한 피해 가족의 강한 형사처벌 의사 때문이었는지,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형사 1단독 김명수 판사는 지난 4월 11일 열린 1심 마지막 공판에서 가해미군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미군 교통사고에 대한 판결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국인 수준의 판결을 내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미군 교통사고에 대해 내국인에 비해 훨씬 관대한 처벌을 해왔던 관행에 비추어 볼 때에는 상당히 놀랄 만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해미군은 실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법정 구속되진 않았다. 현행 SOFA에서 미군은 모든 재판절차가 종결되고, 확정 판결이 난 후에야 구속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본협정 제22조 5항 (다))

내국인 같으면 당연히 구속 기소됐을 사건에 대해 불구속으로 재판을 진행한 것 자체가 지나친 특혜인데다, 실형 선고에도 법정 구속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불평등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재판 결과에 대해 김 씨는 실형이 나온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되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했다. 지난 주에, 소원 하나를 간절히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단양에 있는 '구인사'라는 절에 다녀왔는데, 김 씨의 소원은 '미군놈 처벌해 달라'는 것. 그 소원이 조금은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 미군측에서 보나마나 항소를 제기할 것이 뻔하고, 그런 경우 대부분 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SOFA에 따르면 상소시 1심보다 높은 형을 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합의의사록 제22조 9항에 관하여 (라))

또, 재판부에서 피고인이 주한미군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안보에 기여한 점을 들어 감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항소심에서도 과연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을지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처음 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무렵에 김 씨가 뜬금없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정말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냐고. 처음에 나는 질문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엉겁결에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김 씨는 "전 처음 경찰서에서 미군을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머님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인데. 그래서 살인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그가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엔 미군문제에 대해 별 관심조차 없었다던 그다.

물론, 사람사는 곳에 범죄가 전혀 없을 순 없다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일반 범죄의 경우 국내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미군 범죄는 SOFA의 적용을 받다보니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범죄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안다면 앞으로 항소심이 진행되더라도 반드시 실형을 선고해 만연한 미군 교통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내국인의 처벌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모든 범죄에 대해 기소와 동시에 구속할 수 있도록 SOFA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