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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들이 장기농성을 위해 망루를 설치했다. ⓒ 임경환 기자

스님들이 절을 떠나 4달여 동안 북한산 자락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스님들은 장기 농성을 위해 농성천막 옆에 제2선원을 차렸다. 이들은 또 시위를 계속하려고 10여m 높이의 망루를 설치해 그곳에서 숙식할 예정이다. 이에 한 조각가도 나서서 현장에 솟대를 세우는 등 스님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스님들이 이렇듯 '투사'로 나선 것은 북한산의 환경파괴를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 스님들은 지금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건설회사와 대치중이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구파발역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원각사 입구에 도착했다. 원각사 입구에 내리자마자 중단된 외곽도로 공사가 첫눈에 들어왔다. 이미 그 주변의 논밭은 온데간데 없고 도로공사를 위해 흙으로 메워져 있었다.

"처녀 때 시집 와서 50년 동안 살았던 집인데 얼마나 정이 들었겠어. 집을 버리고 갈려니 한숨만 나오고 기가 맥혀서 밤낮 우는 거야.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하면서. 이 늙은이가 혼자서 어디서 집을 구하겠어."

도로 공사가 중단된 한 주택 앞에서 웅크려 있는 최갑례 할머니(69세)의 말이다. 최 할머니는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맡은 LG건설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농성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사패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LG건설 직원들이 등산객들의 신분증을 조회하고 있었다. 기자도 LG건설 직원들에게 명함을 보여주고 사패산 입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농성장에 올라가서 안 일이지만 법현스님에 의하면 "그 직원들 때문에 다른 스님들이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다"면서 "등산객들이 등산로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 최갑례 할머니 집 앞의 포크레인. ⓒ 임경환 기자

당초 등산로였던 사패산 입구까지의 길은 이미 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8M 정도 너비의 길은 도로공사를 위해 흙으로 다져져 있었고, 벌써부터 차량이 통행하고 있었다. 나머지 차선의 도로를 만들기 위해 도로 옆쪽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현장은 철문과 철조망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공사는 서울외곽순환(일산∼퇴계원) 고속도로 건설공사로 약 5년 동안 2조3천억원을 들여 총 36.4km 왕복 8차선 고속도로를 세우는 대형공사다. 문제는 이 고속도로가 수도권의 '녹색 허파'인 북한산을 관통하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것. 이에 발끈한 스님들이 관통도로를 저지하기 위해 사태산 입구에 천막을 쳐놓고 지난해 11월 20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무려 140여일째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주지들도 9일 성명을 내 "정부는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노선을 즉각 철회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라"면서 "공사를 강행하면 정부와 LG를 훼불행위자로 규정하고 사찰소유 토지 내 국립공원 지정 해제 및 배상요구를 적극 검토할 것이며 산문폐쇄, LG불매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강력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구 파헤쳐져 붉은 황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등산로와 그 옆으로 즐비하게 누워 있는 나무들. 버스에서 내려 이미 등산로의 형태를 잃어버린 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갔을까.

사패산 계곡을 사이에 두고 고속도로 건설 현장과 마주한 스님들의 농성장이 눈에 들어왔다.

▲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부분이 심하게 훼손돼 있다. ⓒ 임경환 기자

이곳에서 만난 불교환경 연대 적광스님은 "여기가 뚫리면 공사를 막을 길이 없다"면서 "지금도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철판으로 사방을 막아서 공사장 근처에도 갈 수 없는 형편이기에 이 곳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천막 농성장 뒷편의 산 대부분은 지난해 11월 19일에 벌목되어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고, 간간이 지난 3월 31에 진행된 '북한산 살리기 나무심기' 행사 때 심어진 나무들만이 보였다. 그나마 스님들이 벌목을 온몸으로 막아 1/3 정도의 숲은 유지되고 있었다. 잘려진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아직까지 송진을 흘리고 있는 나무들도 보였다. 곳곳에서 포크레인에 의해 산이 파인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최병수 씨가 세운 솟대. ⓒ 임경환 기자
천막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20여 명의 스님들은 관통도로를 막기 위한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관통도로 건설 소식을 듣고 원각사, 회룡사 등 북한산에 위치한 사찰에서 농성장으로 달려온 스님들이다.

적광 스님은 "LG건설 측이 공사방해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하게 됨으로써 언제 이곳이 철거될지 모를 일"이라면서 "내일(12) 집달관이 이 곳에 와서 철거를 명령할 예정이어서 이를 대비하고 있는데 설사 내일 철거반이 오지 않더라도 소송효력 만기일인 17일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LG건설 직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철조망으로 사방을 둘렀고, 입구도 나무로 막아 놓았다. 또 농성장 중앙에는 망루가 세워지고 있었다. 망루를 만들고 있는 현장 미술가 최병수 씨는 "스님들이 직원들과 싸움을 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직원들이 천막을 철거하려고 하면 이 망루에서 계속 시위를 하기 위해 망루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농성장 한켠에 제2선원을 만들어놓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도 눈에 띄었다. 스님들을 위로하기 위해 농성장을 방문하는 불자들도 있었다.

새만금반대투쟁에서 솟대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했던 최병수 씨는 이곳 북한산 자락에서도 '나무가 사람에게 산이 사람에게 자연이 사람에게'라는 주제로 산 곳곳에 조각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최 씨는 "수경 스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곳에 문병차 왔는데 산이 이렇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보고 화딱지가 나서 부안에서 짐싸들고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최병수 씨가 세운 솟대. ⓒ 임경환 기자
최 씨는 북한산에 도착해서 곳곳에 솟대를 세우고 잘려진 나무들을 모아 나무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솟대 위에는 '잎새'라는 새 조형물이 걸려 있었고, '뫼산'자 모양을 가진 가지도 걸어놓았다. 나무 밑둥은 온통 붉은 피를 연상시키듯 빨간색으로 칠해 놓았다.

"솟대는 땅의 이야기를 하늘로 올려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솟대 위에 있는 잎새는 이 숲이 다시 초록색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구요. 잎새가 앉아 있는 구름은 생명의 전령을 나타냅니다. 무의적으로 주워든 나뭇가지를 솟대에 걸어놓았더니 뫼산자 모양을 하고 있더군요. 이것도 산이 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나무 밑둥에 빨간 색을 칠한 것은 나무가 피흘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시설물 설명을 끝내고 다시 망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농성장에서 아침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발파작업이 있은 후부터 딱다구리가 나무쪼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군요. 뫼산자 모양의 솟대를 세운 날 딱다구리가 돌아왔는데, 기계 쇠톱소리에 다시 놀라 날아간 딱다구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물의 생명을 보호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현스님이 농성장을 떠나려는 기자에게 한 말이다.

▲국립공원 앞 안내표지판.ⓒ 임경환 기자
돌아가는 길에 사패산 매표소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표지판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이곳은 우리모두 함께 보존해야 할 국립공원입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청정월(50) 보살이 한 얘기가 생각이 났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돌 하나만 건드려도 절도죄로 잡혀가면서 국립공원을 관리해야 할 국가가 산에 구멍을 뚫어 길을 내겠다는 발상으로 산을 파괴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한편 도봉·수락·불암산 관통도로를 반대하는 노원도봉시민연대는 4월 14일 오후 1시부터 상계동 미도파 앞에서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저지를 위한 노원도봉시민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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