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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5시 50분, UN인권위원회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유린을 비난하는 강력한 결의안이 반대 2, 기권 7, 찬성 44로 무리없이 통과되었다.

파키스탄에 의해 제안되고, 스웨덴에 의해 결의안의 첫 부분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즉각 휴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이 삽입되는 형태로 수정된 이번 결의안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인권고등판무관이 2일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즉각 인권고등판무관을 현지에 파견하여 인권상황을 조사하여 이번 회기 내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역대 어느 결의안보다 강력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결의안의 통과는 지난 2일 오후, 인권고등판무관인 메리 로빈슨이 긴급 보고의 형식으로 팔레스타인의 인권 상황을 거론하고, 팔레스타인 대표가 인권위원회에서 특별 토론을 제안함으로써 다소 극적으로 준비되고 이루어졌다.

인권고등판무관은 그녀의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재침공함하여 빚어진 인권의 위기 상황을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보고하면서, 1)군사작전과 자살테러에 의해 양쪽 시민들의 희생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 2)군사작전 지역에서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극도로 제한되고 위험하다는 점, 3)구호 활동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고 거부되는 일까지 있다는 점, 4) 의료 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체포되고 의료 지원이 거부되고 있다는 점 5) 군사작전으로 물과 전기 등 기본 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주민들의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 6) 미디어의 접근이 봉쇄되어 있다는 점 7) 인권 활동가에 대한 탄압이 심각하다는 점 등을 극도로 위험하다(extremely dangerous)는 단어를 거듭 반복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그녀는 이 지역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고 돌아와 회기 내에 인권위원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대표의 긴급 발의 형태로 특별 토론이 제안되었고, 몇 번의 진통끝에 5일 오후 특별 토론 및 4번 의제와 관련된 결의안으로 그녀의 제안이 포함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이다.

특별 토론 동안의 내용은 사실상 압도적인 것이었다. 회원국 중에서는 오직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는 과테말라와 카나다만이 유독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의제만 4번 안건, 8번 안건 등에서 반복적으로, 따로 다루어지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였을 뿐이다.

이번에 참관국가 신세로 전락한 미국은 이 문제는 평화와 안보의 문제이므로 안보리에서 다루어졌고,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미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콜린 파워 국무장관 파견 등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인권위원회가 이번 문제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인권고등판무관의 보고에 깊은 동의를 표시하면서 이스라엘의 인권유린을 비난하였다. 그 이후 과테말라와 카나다가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몇 번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해프닝으로 끝나고, 다른 국가들의 적극적, 소극적(기권은 영국, 독일, 러시아 등)으로 결의안에 지지를 보냄으로써 투표에 의해 통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 통과는 다른 각도에서 유엔인권위원회의 앞날에 깊은 어두움을 드리웠다. 이번 특별 토론에서 NGO 역시 발언권을 총 20분 가지고 발언할 예정이었는데, 파키스탄이 시간의 촉박함을 이유로 NGO들의 발언 이전에 투표에 들어갈 것을 긴급제안 형태로 발의하였다.

이에 대해 카나다가 24시간 이내에 결의안 초안이 배포되지 않으면 투표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을 들어 반발하였지만, 사실상 그 어느 회원국도 NGO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것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결국 투표에 의해 NGO 등의 참여에 호의적이었던 유럽국가들과 몇몇 나라들(한국과 일본 포함)이 기권하여 묵인하여 NGO들의 참여는 원천봉쇄되었다.

사실 파키스탄을 필두로 한 아시아국가들의 대부분이 늘 인권위원회에 NGO가 참여하는 것을 문제삼아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번 사건을 그저 해프닝으로 돌릴 수 없다.

이번 회기 내내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발언 시간이 30% 일괄 삭감된 것, 회의가 계속 지지부진하고 의제들의 제 시간에 열리지 못하고 며칠씩 연기됨으로써 NGO와 특별보고관들이 회의에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올해에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내년부터는 인권위원회의 합리화 외 효율성 제고라는 이름으로 NGO들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 것이다.

유엔이 실질적으로 인권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인권위원회가 유엔 구조 내에서 유일하게 NGO들의 활발한 참여가 보장된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Global Politics'에 시민 사회의 참여는 어떻게 보장되어야하는가라는 중요한 문제가 이스라엘에 대한 결의안 통과의 이면에서 새롭게 문제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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