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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할 정도로 화창한 4월의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면서 넋을 잃는 국민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무궁화를 보고 별다른 감상이 생기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국화(國花)는 필요한가.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는 그 나라 사람들이 사랑하고 중하게 여기는 꽃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볼래야 보기조차 힘들고 우리나라 상당수 국민들이 도처에 만발해 있는 일본 국화, 벚꽃에 취하니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인가.

무궁화는 반만년 겨례의 꽃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innaeus'이다. 'Hibiscus'는 이집트의 신, Hibis처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무궁화 학명으로 'Althea rosea'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Althea'는 그리스 말로 '치료하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무궁화의 뿌리, 껍질, 꽃이 위경련, 복통, 설사 등에 좋은 약으로 사용한데 연유한 것이다. 'rosea'는 장미라는 뜻이므로 'Althea rosea'는 약용 장미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무궁화의 학명은 H.Syriacus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무궁화사랑회'에 따르면 무궁화의 기원은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궁화사랑회는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槿樹)로, '환단고기'에는 '환화' '천지화'로 각각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조선시대의 '규원사화'에 '훈화'로 표현됐던 무궁화가 단군시대에 이미 자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는 동포의 애환을 같이 하면서 겨레의 얼을 상징하는 꽃으로 피어났고, 암울한 시대에 고통받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따라서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인 동시에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겨레의 꽃'이다.

벚꽃축제 알고 만끽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벚꽃 축제때 벚꽃을 보면서 정신을 잃는 탐방객들은 올해도 벚꽃이 언제 만발하나 손꼽아 기다라고 있다. 확 피었다가 이내 지는 벚꽃의 짧은 화려함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벚꽃축제의 대명사인 경남 진해시 '군항제'는 40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4월 1일 열리는 군항제는 1952년 4월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해온 것이 유래가 돼 1963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진해시 관계자는 "군항제는 충무공의 숭고한 구국의 얼을 추모하고 문화예술행사 등을 아름다운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봄의 축제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충무공을 일본 국화와 접목시킨 것이다.

그러나 충무공의 구국정신을 벚꽃축제의 테마로 정한 것은 '사꾸라같은 축제'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진해 군항제가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벚꽃으로 미화시켜 탐방객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일본어 '사꾸라'를 벚꽃으로 잘못알고 쉽게 변질하는 정치인 등을 지칭할 때 이 말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벚꽃은 일본어로 '사쿠라'이다. 사꾸라는 말고기를 뜻한다. 일본에서 말고기를 쇠고기로 속여 파는 데서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한후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 미화용으로 벚나무를 심었다. 특히 진해시 공설운동장 인근 일만 평의 농지에는 '벚꽃장'이라는 벚나무 단지를 만들어 관광휴식처로 사용해 왔다.

해방후 진해 시민들은 벚나무가 일본 국화라면서 이를 마구 베어냈다. 그러나 시가지의 벚나무가 모두 없어질 무렵인 1962년 식물학자 박만규 씨 등이 진해에 가장 많았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사실을 밝혀 5·16 이후 '벚꽃 진해 되살리운동'이 활발히 전개, 오늘날 군항제를 열게 됐다고 진주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왜 하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벚꽃 진해살리기 운동이 시작됐을까. 5·16의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이 졸업한 일본 육사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흠모가 이 운동을 태동시킨 것이 아닐까. 일각에서는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간적으로 져버리는 벚꽃을 대동아전쟁 이전의 군국주의와 결부시켜 호전적인 이미지로 떠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해 '군항제'란 축제 이름부터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범한후 건설한 군항(軍港)에서 나온 만큼 일본 군국주의의 부산물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한 진해 군항을 벚꽃축제의 미항(美港)으로 만들기 위해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앞세우는 것은 일본 군사에 의해 전사한 충무공을 우리 손으로 또 한 번 죽이는 꼴이 되리라.

눈부신 벚꽃이 지면 맘부신 무궁화가 핀다

물론 필자는 국수주의자는 아니다. 벚꽃축제 대신 무궁화축제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한일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는 시대에 벚꽃이면 어떻고 무궁화면 어떠하리.

벚꽃은 화려하게 만개, 순간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후 바로 꽃이 떨어지는 낙화의 미와 이에 대한 미련까지 보여주는 일본의 국화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무려 석 달 열흘 동안 우리나라 온누리가 무궁화 향내로 가득했다는 옛 기록을 보더라도 무궁화(無窮花:다함이 없고 무궁하다는 의미)는 소박하고 은근한 한민족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무궁화는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자줏고름 입에 문 우리네 한국 여인의 수줍음과 은은한 '무궁미'가 물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급하디 급한 신세대 등에게 '원스톱'(One-stop)이 '넌스톱'(Non-stop)으로 치닫는 초스피드 시대에 격정적으로 피었다가 고속으로 지는 벚꽃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국화와 애국가 가사를 바꿔야 한다?

진해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벚꽃축제는 행정기관 주도하에 연례행사로 이어가고 있다. 반면 무궁화를 주제로 벚꽃축제처럼 화려하게 축제를 여는 지방자치단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지난 73년 설립된 대한무궁화중앙회(회장 명승희) 등에서 일본 국화보다 훨씬 천대받고 있는 무궁화가 처량한 나머지 무궁화심기 운동 등을 전개해오고 있을 뿐이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행정자치부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지난해 4월 무궁화 조기 개화사업을 추진하다가 '함께하는 시민행동'(공동대표 이필상·정상용)으로부터 4월의 '밑빠진 독 상'에 에 선정됐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우리나라 무궁화 개화시기는 7월 중순 이후이나 행자부가 6월말까지인 월드컵 기간 중 앞당겨 꽃을 피우기 위해 중국산 무궁화를 수입, 1200원짜리 무궁화 한그루를 17만 원씩이나 돈을 쏟아부어 16억 원을 낭비하는 것외에 총사업비 550억 원도 무궁화 사후유지 관리비로 낭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 가운데 백년대계가 아니라 조령모개식으로 추진된 대표적 사례다. 식목일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식목일은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하면서 공휴일로 정해졌다. 이 때부터 우선적으로 국화인 무궁화를 심었더라면 행자부의 주먹구구식 월드컵 무궁화 심기사업은 추진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올해 월드컵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올 외국인들에게 애국가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 가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궁화 삼천리'가 '사쿠라 삼천리'로 변해버린 현실을 직시하자.

애국가에 나오는 '동해물과 백두산, 가을하늘 등은 그대로인데 '무궁화 삼천리'는 아니다. 국화인 무궁화가 어디서든 보기 힘든데다 우리 겨레의 얼을 담고 있는 무궁화마저 벌써 지고, 다시 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가와 무궁화는 둘다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애국가 가사와 국화를 바꿔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옛부터 내려오는 애국가와 무궁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들이 벚꽃에 도취되는 '벚꽃 축제' 개최에만 열을 올리고 무궁화는 남의 나라꽃만큼도 취급하지 않거나 '전시행정'으로 일관한다면 머지않아 애국가 가사와 국화를 정말 바꿔야할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경제, 문화 등이 급물살을 타고 개방화되는 글로벌시대에 우리나라와 민족을 상징하고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깃들여 있는 애국가와 무궁화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정신, 문화가 벚꽃 등을 통한 외국문화에 잠식당해 갈 경우 우리나라는 또다시 애국가와 무궁화를 잃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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