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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다 정문 앞에서 피킷 시위를 벌이다 똥물 세례를 받는 이사들 ⓒ 박종필


<2신:18일 오후 3시40분> '에바다 농아원' 찾아간 인권운동가에게 '똥물 세례'

18일 오전 '에바다 폭력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평택의 에바다 농아원을 찾아간 박래군 이사(인권운동사랑방 실장)와 박경석 이사(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는 농아들에게 '똥물 세례'를 받았다. 이들과 함께 동행취재에 나섰던 <오마이뉴스> 기자는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와 기사자료를 빼앗겼다.

18일 오전 11시 10분경 박래군 이사와 박경석 이사는 에바다 농아원 정문에서 이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농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다가 11시 40분 경 똥물 세례를 받았다. 특히 박경석 이사는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피하지 못하고 온몸에 똥물을 뒤집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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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이사와 박경석 이사는 똥물 세례를 받은 뒤에도 "농아인들이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에바다 농아원 정문으로 갔다. 기자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함께 농아원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정문에서 농아들의 저지를 받았고,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카드와 기사자료까지 빼앗겼다.

정문에서 기자를 가로막은 농아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농아인을 이용하는 인터넷신문"이라면서 인터뷰를 거부했다.

박래군 이사와 박경석 이사는 에바다 농아원 정문에 올라가 농아원생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12시 50분 경에 경찰관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오줌 세례'를 받았다.

현재 박래군 이사는 해아래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고 있고 박경석 이사는 서울로 이동했다. 내일은 김칠준 이사(수원다산종합법률사무소)와 김용한 이사가 11시에 에바다 농아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 똥물 세례를 받은 박경석 이사 ⓒ 박종필


<1신:3월18일 오전> "오늘 에바다 정문 앞으로 가겠습니다"
<에바다 폭력사태> 종식을 위한 인권운동가의 호소 2


지난 16일 올렸던 저의 호소에 대해 많은 분들이 뜨거운 성원을 해주셨습니다. 답답한 상황에서 가정적으로 써내려갔던 그 호소가 여러분들의 동의를 얻어냈음을 저는 이곳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에바다의 폭력사태를 하루 빨리 해결하라는 채찍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대로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에바다 농아원 정문으로 가겠습니다. 에바다 복지회 이사들은 오늘 18일 오전 10시부터 에바다 농아원과 학교 정문 앞에서 폭력사태 종식을 호소합니다. 일단 오늘은 저와 함께 박경석 이사(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가 그곳에 섭니다.

저희는 간절히 호소할 것입니다. 이제 폭력을 중단하라고, 농아원생들에게 폭력을 사주하지 말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요. 정문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잘 모릅니다. 또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에바다에서 폭력사태는 종식되지 않는다는 절절한 심정으로 저희는 가겠습니다.

16일 0시를 조금 넘긴 그때 벌어졌던 폭력사태는 이전의 폭행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밤 중에 잠에 막 들었을 그 시간에 집 밖에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그 발자국들이 문을 그대로 부수고 들어와서는 부상 졸업생들이 자던 방과 교사들이 자는 방으로 각각 나뉘어 몰려왔던 상황.

침입하자마자 전화부터 부수어 외부의 연락을 막고, 타깃으로 정해놓은 졸업생들에게 폭행을 가했고, 여교사도 폭행을 당했던 그 상황. 경찰이 신고를 받고(1명이) 오자마자, 폭행을 가하던 사람들이 어둠 속에 미리 대기해놓은 차량(싼타모)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던 그 상황을 그려보십시오.

이런 침입이 있기 전에 농아원에서는 오후 8시에 소집 명령이 떨어져 외부에서 통학하던 아이들까지 불려갔고, 오후 11시까지 이번 폭행의 집중 타깃이 되었던 두 명의 졸업생에게 근처 농협으로 나오라는 문자 메시지가 수도 없이 날아왔습니다. 그에 응하지 않자 그들은 곧바로 '해아래집'으로 쳐들어왔던 것입니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이 폭력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조폭들의 만행과 무엇이 다릅니다? 단지 MBC PD수첩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주거공간에까지 집단으로 쳐들어와 폭행을 가하고 차량으로 유유히 사라진,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행위는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법으로도 가중처벌 받을 수밖에 없는 엄중한 범죄행위였습니다.

에바다 복지회의 이사회는 에바다 사태 초기부터 이의 해결을 위해 싸워오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두 해보았습니다. 법적인 고소와 고발, 몇 번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는 집회, 농성, 단식, 삭발, 토론회 등등 지금껏 에바다를 둘러싸고 해보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에바다에서 최 씨 일가들이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이사회가 불안정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늘 의사결정에서 밀리거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결정이 잘못되거나 아예 이사회가 소집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더욱이 농아원 현장은 지금껏 단 한번도 최 씨 일가들의 손아귀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 동안 최 씨 일가 남매들 사이에서 운영권 다툼을 둘러싸고 격심한 내분이 있었고, 이제는 그들 사이에서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습니다.

지난해 8월 에바다 이사회에서 이사 선임이 되었을 때 지금껏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싸움을 해왔던 우리의 1차적인 목표는 이루어졌습니다. 시설 이사회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최고의사결정구조'라는 법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사회를 장악하면 에바다의 복잡한 문제는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우리는 갖고 있었습니다.

회의록에 서명을 거부하는 다른 편 이사들의 방해 공작을 이겨내면서 한 달 넘게 걸려 겨우 등기소에 등기를 마쳤을 때 이제 이사회는 확실히 합법적으로 우리가 7이고, 다른 쪽이 4인 명백한 우세가 확보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전혀 하자없는 이사회가 탄생한 것이고, 지금껏 관선으로 진행되었던 이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이사회가 출범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에바다 농아원에서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바다 농아원을 맡고 있던 당시의 농아원장 직무대행(그는 학교 행정실장을 겸임하고 있었으며, 예전에는 유령직원으로 등재되어 있었고, 비리 사실이 적발된 적도 있었던 사람입니다)은 이사회의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10월 중순 교장실이 다시 파손되고, 오물이 그곳에 끼얹어졌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이사회의 허가를 얻어 김지원 교장은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교육청은 무조건 휴교령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나섰습니다.

며칠 지나 이사들이 학교 정문에 이르러 안에 들어가서 대화하자고 했으나, 농아원생들은 이사들의 출입을 거부하며 무조건 대표이사를 비롯한 우리 쪽 이사들이 물러갈 것, 교장이 물러날 것을 주장했습니다. 정문 앞에서 쓸쓸히 되돌아선 그날 밤, 학교 유리창은 누군가에 의해 모두 부숴졌습니다.

학교장이 이런 기물파손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늘 그렇듯이 이를 철저히 수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농아원생들이 야밤에 한 짓이 아니고, 다른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것까지 밝혀졌지만, 그것으로 경찰의 수사는 끝이었습니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은 무봉산 수련원에서의 2박3일 수련회를 열기로 했고, 농아원생들도 처음 있는 수련회에 갈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날 농아원장 직무대행은 전날 농아원생들이 수련회에 갈 수 없다고 하여 이를 막았고, 수련회에 온 통학생 중 일부를 수련회 현장에까지 와서 데려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농아원생들을 수업시간까지 빼면서 대표 이사의 치과 병원 으로, 집으로, 그리고 시청 앞 등등의 집회로 내몰았습니다. 때로는 힘없는 초등학교 1학년생까지 학교 수업을 빼먹으며 이 집회에 동원되었습니다. 그 집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김칠준 이사(수원다산종합법률사무소)의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부터는 아예 정문을 쇠사슬로 감아놓고, 안쪽으로 바리케이트를 쌓아놓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외부세력(설립자 쪽에서 동원한 농아인 교회 교인들로 보이는)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사태의 책임자이자, 배후조종자이자, 이런 폭력사태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 자는 일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폭력사건만을 열거하여도 2월 8일의 송탄 출장소 난입 난동과 폭행, 2월 28일의 권오일 교사들에 대한 폭행, 그리고는 이제
한밤중 주거공간에까지 침입해 폭행한 3월 16일의 0시 사건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이 폭력은 그 수위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제 호소문을 보시고, 여러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아이들은 농아인이라지만, 구속 수사하도록 고소 고발해야 하지 않느냐, 대통령에게 매달리지 말고 법으로 해결하라는 등의 제가 보기에는 답답한 주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왜 제가 답답하다고 하냐면 이미 그런 주문이 있기 전에 우리는 고소 고발을 했고, 시청과 경찰에 불법점거 세력의 퇴거를 위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결정까지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평택 시청은 이사회가 구 재단측을 인정하고 이사의 수를 동수로 하여 재구성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 현 이사회를 부정하려는 태도를 지닌 농아원의 그 배후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게다가 평택경찰서장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마저 무시하면서 확정판결문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저를 비롯한 이사들은 처음 이사가 되고 나서 막중한 희망과 함께 크나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 동안의 상처를 치유할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농아원생들을 비롯한 학생, 학부모, 직원들과 대화를 갖고 우리의 원칙과 계획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저들의 폭력 앞에, 감독관청의 현 이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모두 무산되었습니다.

아무리 폭력을 휘두른다 해도 농아원생들만은 법적인 처벌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은 이런 현실 앞에서 일단 그들을 격리하여 다수의 학생과 농아원생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서글픈 논리로 바뀌었습니다. 5년 동안 폭력에 길들여진 그들을 격리시키지 않고는 이 폭력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절박감, 그리고 그래야 배후도 드러난다는 절박감이 우리를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들에게조차 교육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아도 선처를 호소할 것이고, 그들이 빨리 변화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해고 조치된 직원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비웃으며, 세상을 조롱하며, 땅에 떨어진 이 나라의 법치를 비웃으며, 농아원생들에게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 발로 나서 그간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농아원에서 물러나는 일, 그리고 법적인 처벌을 달게 받는 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시간이 모자랍니다. 곧 평택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오늘 오전에 박경석 이사와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를 유급시켜주십시오."
한 학부모가 교장 선생님과 이사들에게 했던 부탁이었습니다. 5년 동안 에바다에서 공부는 못한 채 학년만 올라갔다는 것이고, 이대로 중학교에 올라가서 무엇하겠냐는 절절한 호소였습니다. 그때 저를 비롯한 이사들은 조금만 참으시면 잘 될 것이고, 이사들과 교사들이 개인지도를 해서라도 공부를 가르치겠다고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저는 기억합니다. 농아원생들도 학생이고, 그런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지 폭력행위에 내몰려서는 안됩니다.

이제 저는 평택으로 떠납니다. 오늘 저를 이어 이사들이 계속 이어나갈 것이며, 오늘 저녁 이 상황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에바다가 폭력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에바다에서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이사회 이사들은 오늘 오전 10시부터 에바다 농아원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호소에 나섭니다. 오늘은 저와 박경석 이사가 나서고, 매일 이 호소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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