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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 평탄한 날만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속상하는 일도 더러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났을 때 그 속상함을 어떻게 혼자서 슬기롭게 삭이느냐가 삶의 지혜인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지금의 저에게는 그런 슬기로운 지혜가 없어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당한 이 어처구니없는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묻어두기 어려운 속상한 일

마음속에 묻어 두고 혼자 속상해 하다가 시간이 지나 자연 망각해 버리면 간단한 일이지요. 그게 아니면, 주말에 가까운 계룡산에라도 올라가 은선폭포 아래 나뭇잎 한 장 따서 그 위에 흘려 버리면 깨끗이 잊어버릴 일인데, 어리석고 마음 여린 사람이 이런 부질없는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대전의 서쪽 마을 간선도로변 주택가에 살고 있지요. 우리나라 어디든 비슷한 현상이지만, 저도 아침저녁으로 심각한 주차난을 겪다 못해 비좁은 담장과 손바닥만한 화단마저 허물어 버리고 거기에 승용차 한 대 간신히 들어 갈만한 주차공간을 확보하여 차고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편리하게 되었지요.

연락처 없는 차고 앞 주차자

그런데 개인 차고가 있다고 해서 편리한 일만도 아니라는 걸 거의 매일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차고 앞에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버젓이 주차하는 얌체 운전자들 때문에 겪는 정신적인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닙니
다. 오죽하면 <남의 차고 앞에 주차할 때는 연락처라도 남겨야>라는 글을 언론 매체에 발표하여 운전자들의 기본적인 양심에 호소도 해 보았을까요?

그런데 오늘 제가 속상해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간밤에 숙직 근무를 하고 아침에 집 앞에 당도하니,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저의 차고 앞에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물론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이름 모를
운전자의 차량이었지요. 가까운 곳에 잠시 볼 일 보러 갔겠지 싶어 클랙슨을 눌러도 보고, 주택가 골목을 다니면서 몇 군데 수소문해도 운전자는 야속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제 차는 그 옆의 공간-인도와 차도 중간에 속칭 '개구리 주차'식으로-에 잠시 주차해 놓고 집에 들어와 아침 식사를 했지요.

애꿎은 차고주인의 차만 견인해 가버려

그리고 잠시 후에 나와 보니 제 자동차가 없어진 겁니다. 구청의 불법주차 견인사업소에서 순식간에 견인해 가버린 거지요. 정작 견인해 가야 할 '이름 모를 운전자의 차'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버린 뒤구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나서 저는 아찔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원인 행위는 이름 모를 운전자가 제공했지만, 저도 본의 아니게 인도에 불법 주차를 한 셈이니, 그 잘못은 인정할 수밖에요. 도리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차량견인사업소에 가서 견인료 3만원에 보관료 4천 원, 도합 3만 4천 원을 물고 제 차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견인료와는 별도로 불법 주차 과태료 4만원을 추가로 납부토록 차량 유리창에 고지서가 부착되어 있는 겁니다. 너무도 억울하고 답답한 심경에 아무런 권한도 없다고 하는 차량견인사업소 소장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연락처도 무용지물이 돼버린 '야속한 견인'

"저는 엄연히 차고가 있는 사람입니다. 연락처 없는 차고 앞 불법주차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는데, 어쩔 수없이 잠시 주차해 놓은 저의 차는 견인해 가버리고, 정작 견인해 가야 할 얌체 차량은 사라졌으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견인하시는 분들도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차에는 연락처가 있으니, 견인해 가기 전에 전화 한 번 해주시든지, 확성기로 차량번호라도 한번 불러주었다면 금방 뛰어 나올 수 있는 거리인데, 무조건 견인해 가 버리니 야속한 일이에요."

견인사업소장은 나의 이런 하소연을 듣고 나서는 "사정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런데 저희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승용차에 연락처를 남겼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전화를 합니까? 그 전화비용을 누가 뭅니까? 그리고 요즘은 단속 예고제를 실시하지 않고 발견 즉시 견인하고 있습니다."

졸지에 억울한 돈 7만4천원 납부

결국,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차량 때문에 애꿎은 차고 주인만 재산상 피해(총 7만4천 원: 과태료 4만원 + 견인료 3만원 + 보관료 4천원)와 순식간에 차량이 증발(?)해 버린 데 따른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 등 막심한 손해를 입은 셈이지요. 그런데 저를 더욱 속상하게 하는 것은 저의 자동차 앞 유리창에 선명히 부착해 놓은 연락처입니다. 견인해 갈 때는 연락도 해주지 않는 이런 무용지물의 연락처를 아무리 크게 써 붙이면 무슨 소용입니까?

'과연 이런 방법 밖에는 없는 걸까?'
저는 차량 견인방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락처를 남긴 차량에 대하여는 견인하기 전에 전화 연락을 한 번쯤 해 주고, 그 전화비용에 대해서는 불법 주차자가 부담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은 없는 걸까? 그게 아니면 주차자가 잠깐 인근 가게에 볼일을 보기 위해 주차한 경우도 있을테니, 견인 전에 확성기로 차량번호를 한 번쯤 부른다든지, 호루라기 등으로 단속 신호를 보내어 이동시키도록 배려해 주던 방법은 왜 없앴을까? 이런 저런 사항이 궁금하여 구청 교통관리과 주차관리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구청 담당자는 "선생님 같으신 분의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어디 운전자들 마음이 다 그렇습니까? 견인 대상 차량에 연락처가 있다고 해서 단속자가 현장에서 일일이 전화해 주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삭막한 '행정편의주의 제도'

예상했던 대로 견인사업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실망스런 대답을 들으며, 나는 또 이런 공허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차량을 견인해 가는 공직자의 입장에서는 원활한 도로기능을 위해서 무조건 끌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견인을 당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차량에 남긴 연락처로 전화 한 통만 해 준다면 얼마나 미안해하고, 한편으론 고마워하겠습니까? 나라에서 국민에게 그만한 배려도 해 주지 않는다면 너무 삭막한 행정편의 제도가 아닌가요?"

'나라의 배려'라든지 '삭막한 행정편의 제도' 따위의 다소 어울리지 않는 용어를 구사하는 내가 한편으로는 처량(?)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구청 공무원은 나의 그런 하소연에 대해 현장 단속자의 애로와 입장만을 견지하며 현실적으로 달리 배려해 줄만한 방법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스스로 반성도 해보며

이름 모를 운전자 님!
이런 뜻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저도 평소 매사 조심하고,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은 하지만 더러 실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오늘 일만 해도 연락처 없는 운전자가 차고 앞에 주차해 놓았다면, 제 집 앞에 주차하길 고집하지 말고 집에서 조금 멀더라도 단속 대상지역이 아닌 안전한 곳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을, 거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저의 불찰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남기지 않으신 운전자 님!
아마도 선생님은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자신의 주차행위로 인하여 애꿎은 차고 주인이 어떤 마음 고생을 하고 피해를 당했는지 전혀 모르실 겁니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는 데 익숙지 못한 운전자 님의 그 오랜 습관을 새삼 제가 나무란다고 해서 이미 제가 납부한 과태료와 견인료가 다시 돌아오겠습니까? 아니 이런 일로 제가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무슨 방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적'의 유효기간?

그러나 저는 이번 일로 삶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언젠가 시골에 계신 장모님이 제게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좋지 않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걸 넣고 다니게" 하시면서 넣어 주신 부적 - 아마도 효력이 없는 걸 보면 유효기간(?)이 지났나 봐요 - 을 지금까지 속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하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새삼 귀한 깨달음 주신 이름 모를 운전자 님! 야속하지만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 필자 주 : 저의 졸고에 대하여 공무에 바쁜신 중에도 관할 행정관청인 대전 서구청 주무과장 님이 직접 답글을 주셨기에 독자의 이해를 돕는 뜻에서 내용전문을 참고로 옮깁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안녕하십니까?
먼저 주차단속과 관련하여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 서구청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주신 귀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귀하께서 단속되신 본 구간은 지난해 동서로 확장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주요 간선도로입니다. 그러나 상가와 주택가 주변을 비롯한 노선 곳곳에 불법주차로 인하여 교통사고 위험과 함께 차도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단속 민원이 급증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일부 질서의식이 상실된 운전자들의 인도(자전거도로)내 불법 주차로 인하여 존중되어야 할 시민들의 보행권이 침해 되고 있어 우려와 함께 강력한 단속을 요구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자동차 등록대수 1300만 대 시대를(인구 3.3인당 1대) 넘고 있습니다. 주택가나 시내 어디를 가나 거리는 불법주차가 당연시 되어가고 귀하께서도 지적했듯이 주차장이나 차고앞의 무단주차는 상식을 벗어난 주차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생 주차분쟁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 입니다.

따라서 우리 구에서는 내집주차장 갖기 사업을 적극 권장하고 이면도로 주차구획선 설치 그리고 공한지 무료주차장 사업등 교통편의 시책을 발굴 추진하고 시민의식 개선을 위한 불법주차 시민자율 감시원제를 운영 수시로 현장활동과 함께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지적해 주신 단속중에 방송멘트나 호루라기 등을 통한 사전 예고는 선별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단속전 차량운전자에게 개인별 전화등 연락 요청은 단속원 13명이 21개동 86개 노선 116키로미터의 방대한 노선을 관리해야 하는 현실과 특성상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귀하의 좋은 글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교통행정에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교통관리과 과장 ㅇㅇㅇ(전화ㅇ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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