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정 분리수거 한 날 저녁에 폐휴지 수합 알림장 보면 황당하던데요."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폐휴지를 학교에 보내는지 몰라요. 저는 항상 분리수거 전에 학교에 낼 신문을 분리하는 일을 먼저 해요."

서울 S초등학교에 3학년 딸을 둔 학부모와 또 다른 S초등학교에 3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두 명이 만나 '학교의 폐휴지 수합'에 대해 맞장구를 칩니다.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이들은 학교에서 '폐휴지 수합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1월 14일 서울 양천구의 어느 식당에서 입을 모으더군요.

쩔쩔 매는 아이들

"불룩한 가방을 맨 채 왼손엔 실내화를, 오른손엔 신문 뭉텅이를 들고 쩔쩔 매는 딸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는 손아무개 교사. 안타깝게도 그는 학교장 방침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반 아이들한테 폐휴지 수합을 알리는 알림장을 적어야 하지요.

환경부에서 낸 2001 환경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군요.
"재활용품은 지역실정에 따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지역에서는 종이, 고철 등 5종으로, 단독주택 지역에서는 2∼4종으로 분류하여 분리수거하고 있다. 단독주택지역에서는 지역실정에 따라 문전수거, 대면수거(주민들이 수거차량에 직접 배출), 거점수거(주유소 등 일정지점에 설치된 분리수거용기에 배출) 등의 방법으로 수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산간지방을 뺀 대부분의 지역이 폐휴지를 분리수거하고 있는 형편.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는 곳은 거의 집 앞에서 분리수거를 한다는 얘기죠. 이런데도 학교에서 새삼스럽게 폐휴지를 모으는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폐휴지 수합일은 아침자습을 공치는 날. 아침 8시부터 길게 늘어서서 수십 분을 기다리다 폐지를 내고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손 교사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날만큼은 폐휴지 버리는 통에 학교 교육과정도 함께 버리는 셈이지요.

이와 같이 폐휴지를 모으는 학교는 서울의 경우 모두 539개 초등학교 가운데 509개. 지난 해 서울교육청 행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난 이 수치를 전국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90% 이상의 초등학교가 폐휴지를 모은다는 얘긴데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으는 게 보통이지만 자원절약교육을 강조(?)하는 학교장이 있는 학교는 두세 번 이상도 거뜬히 해냅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학생 개인에게 폐휴지상을 주거나 폐휴지 우수학급을 뽑아 표창하기도 하는데요. 상에 상상 이상으로 약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오마이뉴스 최동욱 기자는 이에 대해 지난 23일 다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네요.

"이번 학기말에도 폐품 잘 냈다고 상을 주었다. 내 마음 속에 갈등이 일었으나 그냥 학교 방침에 따랐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반도 폐품 수합에는 참여하지만 개인 실적에 따라 상을 주지는 않겠다'고 학년 초에 미리 알리지 못했다. 그러니 상 받을 것을 예상하고 많이 낸 아이들(실제로는 어머니들)에게 상을 안 줄 수 없었다."

25년 전 초등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서 퇴비와 병을 모았는데요. 잘 사는 집에서 경운기 가득 퇴비를 싣고 올 때 퇴비를 든 손이 부끄럽던 기억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수합 활동의 명분은 환경교육. 쓰레기 분리수거가 실시되는 현실에서 과연 어떤 교육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가난한 한국학교의 환경교육?

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지난 27일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면 그저 의무감으로 폐휴지를 학교에 갖고 가는 것이지 환경의식과는 상관없는 게 분명하다"면서 "휴지와 같은 쓰레기를 갖고 경쟁을 시키는 자체가 오히려 비교육적인 일"이라고 꼬집더군요.

교사들은 87년 학교안전공제회 설립 직후 위와 같은 일이 유행처럼 퍼졌다고 말합니다. 이 증언을 종합하면 폐휴지 수합엔 분명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움직이는 돈이죠.

서울교육청 행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강동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1학기 학급당 평균 폐휴지 매각대금은 3만9402원. 이를 한 학교 평균 40학급으로 환산하면 학교마다 한 해에 314만 원인 셈이죠. 대부분의 학교는 이 돈을 학교안전공제회비를 내는 데 씁니다.

가난한 한국 초등학교의 환경교육은 꼭 이래야만 하는 걸까요? 2000년 9월 폐휴지를 모으지 않는 학교로 전근 간 하명숙 서울 신기초 교사는 앞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환경교육은 학급운영과 꾸준한 지도 속에서 되는 것이지 폐휴지 수합을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죠. 학교 폐휴지 수합하지 않아도 환경교육에 전혀 문제없어요. 현실에 맞지 않는 이 일로 초등교사들만 욕먹고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것이지요."

(* 이 기사는 월간 우리교육과 주간 교육희망에 실은 내용을 상당 부분 깁고 고쳐서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학교 교육의 뿌리는 바로 초등학교. 이 초등학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흔드는 주범은 누구일까요? '7死 7生'으로 나눠 다루어봅니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학교의 문제를 없애는 게 모범을 창출하는 길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새학기를 맞아 학부모와 교사들이 학교의 발전방향에 대해 머리 맞대기를 바라는 마음도 큽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선 눈에 보이는 것부터 찾아보자고요. 우린 혹시 생각만 바꾸면 될 일을 50년 동안 거리낌없이 해오거나 그저 지켜만 본 건 아닐까요? 

앞으로 3월초까지 2~3일에 한번씩 생각해 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4사 4생 '3월2일자 담임발령'은 3월 2일에 올라갑니다.

<초등교육 7사 7생 시리즈 차례>
1사=교사·학생은 배달부, 1생=소년신문 가정 구독
2사=아이들 돈으로 내는 교장단 회비, 2생=교원단체 회비는 스스로 힘으로
3사=공포의 폐휴지 수합, 3생=가정 분리수거에 맡기자
4사=3월 2일자 담임발령, 4생=담임발령은 방학 전에
5사=학교 안 청소년 단체, 5생=지역 청소년 단체
6사=있으나 마나 어린이회, 6생=어린이회를 학생자치기구로
7사=관리자의 분리불안증 7생=교육소신에 바탕한 관리자를 만들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