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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출할 때 사람들은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라고 말한다. 라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김치' 다음으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음식이 아닐까. 누구나 한 가지씩 라면 끓이는 '노하우'도 가지고 있고, 어떤 제품이 가장 맛있는지 나름대로 입맛에 맞는 라면에 대한 애정(?)도 있다.

보통 라면의 조리법은 물이 끓으면 라면을 넣는 것이 순서인데, 물이 끓기 전에 라면을 넣고 끓이면 면이 더욱 쫄깃쫄깃해진다든지, 짬뽕라면을 만들려면 고춧가루를 식용유에 넣고 볶아 고추기름을 만들어 라면에 첨가하면 된다든지(고추기름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봉지라면은 XX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쯤은 라면을 정말 좋아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소비되는 라면의 양은 40억 개에 이르고, 국민 일인당으로 따져 본다면 100개 가까운 수치이다. 지난 99년에는 라면시장이 1조 원이 넘었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는데, 이것은 라면이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 음식인지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런 조사결과를 뒤집어보면 우리나라의 식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아침 점심 저녁을 거르지 않고 먹고 다니는 사람은 굉장히 복받은 사람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식사를 거르거나, 제대로 밥을 해먹을 수 없는 경우 라면은 가장 손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고, 헛배만 부른 햄버거보다(개인적인 생각이다) 얼큰한 국물까지 있는 라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딱 맞아 떨어진다. 특히 식은 밥과 김치까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잠시 옆길로 빠졌지만, 라면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를 대신하기 위해서였고, 63년 삼양라면이 도입되었던 당시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꿀꿀이 죽' 한 그릇에 5원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라면 가격은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혼분식을 강조했던 정부시책과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맞아 떨어져 라면은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가난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을 위해 들여온 라면이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먹거나 밥하기가 귀찮아하는 사람들, 혹은 정말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 되었다. '위'에 부담을 줄지언정 가격 저렴하고 뜨거운 물만 있으면 먹을 수 있어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이라는 사실은 라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사실 그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89년 '우지(牛脂)라면' 사건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심한 부담감을 주었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1997년 관련 식품회사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 사실조차 거의 잊혀졌고 '라면'은 더욱 '고급화' '다양화' '대중화'되었다.

개인적으로 라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인기 있던 만화영화였던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철이'가 새로운 여행지에 내릴 때마다 '인공라면'이 아니라 '진짜라면'을 찾던 모습을 보고 난 이후였다. '철이'가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맛있길래 다른 행성에 갈 때마다 찾아다니니 어린 마음에 굉장히 신기했고, 언젠가는 꼭 한번 먹어보리라 결심을 했던 것도 같다.

이렇게 라면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게 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얼마 전 조카가 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고 있어, 한 입 얻어먹으려 하다가 "이모부는 아까 전에 안 묵는다 케놓고 뺏아 묵는다"고 핀잔(?)을 들었을 때 찍어둔 사진을 보니 문득 라면 생각이 났었기 때문이다.

세 끼 찾아먹는 밥보다야 못하지만 '라면'이란 이제 배부르면 찾지 않고, 배고프면 찾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정 메뉴가 되었다. 그것은 씁쓰레하게도 '인스턴트'가 그만큼 우리의 식생활에 끼치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산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사에 늦게까지 있어야하는 오늘 밤에도 '사발면'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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