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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M초등학교 특수반 아이들은 지난 해 겨울 매서운 추위에 몸을 떨며 견뎌야만 했죠. 중앙난방이 꺼진 오후, 이 교실에 설치할 난로 살 돈 40만 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전국 많은 수의 초등학교는 점심시간만 되면 때 아닌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학교에 한 대밖에 없는 정수기 물을 받기 위해 아이들이 밀고 싸우는 것이죠. 한 해에 30만 원이면 빌릴 수 있는 정수기를 같은 이유로 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M초등학교가 지난 해 교장협의회 회비(1백만 원)와 교장의 경조사비(180만 원)로 쓴 돈은 모두 280만 원. 큰 돈은 아니지만 아이들 교육활동과 관련 없이 빠져나가는 이런 돈 때문에 정작 아이들한테 쓸 돈이 없게 된 것이죠.

이런 일이 관례로 된 건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을 겁니다. 전국 10여 개 학교를 뽑아 조사한 결과 모든 학교가 같은 형편. 따라서 이는 전국적인 상황으로 보입니다.

현재 전국엔 5322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학교마다 내는 교장단회비 100만 원을 전국 학교수로 환산하면(물론 산술적인 계산이지만) 학교에서 빠져 나가는 돈은 한 해에 53억 원이나 되는 셈입니다. 더구나 교장 이름으로 나가는 경조사비(180만 원)까지 합하면 그 액수는 150억이나 되는 천문학적 수치가 되죠.

지난 해 4월 서울 S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자리. 한 교원위원이 교장단 회비와 경조사비의 부당함을 말하자, 평소 인자하기로 소문난 교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학교예산으로 교장단 회비와 경조사비를 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는 교장협의회에서 지시한 사항인데 나만 내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나 혼자 외톨이가 되면 학교운영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인회계사 출신인 김홍렬 서울시교육위원은 "임의단체에 지나지 않는 교장협의회가 자체 회비를 학교예산에서 쓰도록 종용하고 교육청이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지난 해 전화 인터뷰에서 강조하더군요.

실제로 감사원은 90년대 말 몇 해에 걸쳐 학교 안 '경조사비와 교장회비 지출 시정'을 교육부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

올해도 형편은 마찬가지. 서울 한 초등학교 예산안을 보면 경조사비가 280만 원, '각종 회비'란 말로 표현된 교장단 회비가 100만 원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교사들의 업무추진비라 할 수 있는 '학급운영비'는 한 학급마다 한 해 5만 원뿐. 전체 학급운영비가 220만 원(44학급×5만 원)이란 얘긴데, 이는 교장이 동료 교장들에게 주로 쓰는 축조의금(경조사비)보다도 적은 액수입니다.

위에서 다룬 업무추진비 항목 외에 전국 초등학교 교장들은 직책급으로 올해 300여만 원을 따로 받았지만 대부분 봉급처럼 개인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직책급에서라도 자체 회비나 경조사비를 썼다면 다행이었을 텐데요.

사실 초·중등 교장협의회는 한국교총의 산하기구입니다. 교원단체 가입은 자유지만 학교 예산으로 보란 듯이 단체회비를 내는 모습은 참 놀라운 일이지요. 물론 교총회비를 따로 공제한다고 변명하겠지만, 산하 조직이 따로 걷는 회비는 '주머니 돈이 쌈지 돈' 아닌가요?

교사들이 봉급에서 교원단체 회비를 내듯 교장들도 자기 주머니에서 내는 자세가 교육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교장들은 30년째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온 이 아무개(서울 S초) 교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학교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 갈 돈을 몇몇 사람이 써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전국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예산을 심의하는 중. 혹시 학부모위원이나 교원위원이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으로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교육도 쓰러집니다.

* 이 기사는 월간 우리교육과 주간 교육희망에 실은 내용을 상당 부분 깁고 고쳐서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학교 교육의 뿌리는 바로 초등학교. 이 초등학교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를 흔드는 주범은 누구일까요? 7사 7생으로 나눠 다루어봅니다. 

앞으로 3월초까지 2~3일에 한번씩 생각해 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사3생 '공포의 폐휴지 수합'은 28일에 올라갑니다.

<초등교육 7사 7생 시리즈 차례>
1사=교사·학생은 배달부, 1생=소년신문 가정 구독
2사=아이들 돈으로 내는 교장단 회비, 2생=교원단체 회비는 스스로 힘으로
3사=공포의 폐휴지 수합, 3생=가정 분리수거에 맡기자
4사=3월 1일자 담임발령, 4생=담임발령은 방학 전에
5사=학교 안 청소년 단체, 5생=지역 청소년 단체
6사=있으나 마나 어린이회, 6생=어린이회를 학생자치기구로
7사=관리자의 분리불안증 7생=교육소신에 바탕한 관리자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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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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