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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이라 하면 흔히 정월 초하룻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즐기는 윷놀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윷의 기원이 한 해의 흉풍(凶豊)을 점치는 윷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찍이 최남선은 윷이 본래 고산지대 사람들과 저지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해 흉풍을 예측하기 위한 데서 출발했으나 후세에 이르러 그 본뜻을 잃고 놀이로 변질되고 말았다고 전한 바 있으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윷으로 어떻게 점을 쳤으며 그 구체적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좀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18세기 조선의 학자 유득공이 <경도잡지>에 윷점의 64괘 풀이에 관해 쓴 기록을 어렵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간단하고 8괘의 논리도 잘 통하지 않아 윷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더구나 윷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윷이 중국의 저포(樗蒲)로부터 왔다는 관점이다. 중화(中華)사상에 기인한 이 관점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윷은 원래 우리 고유의 놀이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 중국 요녕대 한국학과 객원교수이며 현재 성심외국어대에 재직 중인 신원봉 교수는 <윷경>(정신세계사 간)이란 책을 통해 이런 오해를 바로잡는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부는 해제 부분으로, 윷의 기원과 철학 그리고 그 구체적 활용법에 대해 철저한 자료고증을 바탕으로 살펴보면서, 이 과정에서 2부에 번역 첨부된『영기경(靈棋經)』이란 책이 사실은 우리의 윷에 관한 경전임을 밝힌다. 그리고 2부에서는 바로 중국인들도 영험하다고 믿고 있는 이 『영기경』에 상세한 역주를 달아 번역했다.

신교수가 『영기경』이란 책을 우리의 윷점에 관한 책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중국인들 자신도 이 책의 유래에 대해 정확히 모르며 또 이 책에서 말하는 ‘영기(靈棋)’라는 것이 그 숫자나 형태에서 바로 윷의 변형이라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영기경』은 중국의 각종 문헌을 집대성한 『사고전서(四庫全書)』와『도장(道藏)』에도 실려 있는 고전이다. 이 책에서는 ‘영기(靈棋)’, 즉 윷 12개를 사용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괘를 만드는 것은 우리 풍속에 4개의 윷을 세 번 던져 점을 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4개 또는 12개를 던지는 놀이나 점의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1부의 해제 부분에서 두 번째로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흔히 알고 있듯 윷이 중국의 저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중국측 자료를 통해 저포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고, 그 결과 저포는 윷가락과는 달리 가락이 다섯 개이며, 또 윷과는 달리 이미 당대(唐代)에 이르러 거의 소멸된 풍속임을 살펴본다. 윷이 중국의 저포를 받아들여 개조한 것이 아님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인 셈이다.

신 교수는 이어 좀더 확실한 단서를 얻기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의 풍속을 살펴본다. 그 결과 북아메리카의 풍속뿐 아니라 남미의 파톨리(Patolli) 게임과 그것의 원류인 마야의 불(Bul) 게임에 이르도록 윷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 결과 윷은 이미 중국문화의 차원을 넘어 그 유래가 까마득한 선사시대로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소 논의의 소지가 남아 있는 고대사의 최고(最古) 기록인 <태백일사>에서도 확인한다.<태백일사>에 의하면 윷은 단군시대 우리 고유의 역(易)인 환역(桓易)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만든 이른바 민중의 역(易)이다.

이 책을 통해 세 번째로 접근하는 관점은 윷에 녹아 있는 우리의 옛 사상에 관한 것이다. 조선의 학자였던 김문표의 관점을 빌려 윷판에 녹아 있는 천문학적 지식과 음양의 철학을 살펴보고, 이것을 바탕으로 윷이 하늘의 역(易)임을 주장한다. 아울러 하늘의 역인 <윷경>과 땅의 역인 <주역>외에 3의 역의 흔적인 <태현경(太玄經)>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흥미를 돋운다.

윷경의 괘풀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윷을 세 번 던져 나온 125개 괘에 대한 괘명(卦名)이며, 둘째는 이들 괘를 풀이란 상사(象辭) 및 각 시대 주석가들의 주해(註解)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와 관련된 한 수의 고시(古詩)이다. 경전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볼 때 언어가 직설적이고 간명해 알기 쉽게 쓰여 있어 매 구절마다 강조되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조화와 하늘의 양(陽)이 부각된다. 우리의 광명 숭배사상과 잘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신 교수는 설명한다.

윷은 매우 친근한 것이지만 그만큼 우리 고대문화를 연구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수많은 논의를 야기시켰던 <한단고기>열풍을 지나 이제 우리 고대문화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점으로 꼽을 만하다.

윷경

신원봉 엮고 옮김, 정신세계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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