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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17일 / 읍내 장날로 고추 2포대 40근을 가지고 갔더니 시세가 폭락되어 근당 4천원 이상 했는데 40근에 9만원으로 매매하고 말았으니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이 서운하기 한이 없다. 할일도 다 못하고 친구를 만나서 술을 몇잔 하고 돌아왔다.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 금곡에 살다 지난달 21일 돌아가신 최병호(73) 옹은 가족들에게 20여 년간 써온 일기장과 손수 족제비꼬리로 붓을 만들어 전주최씨 직계조상을 기록한 세계족보, 명산록(풍수비결서) 등을 유품으로 남겼다.

한 사람의 일기는 훗날에 보면 개인사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살았던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제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소중하다.

최옹의 일기에도 백금리의 농토이름, 농·축산물 가격, 동네사람 제사, 집안대소사, 날씨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청태산(성태산) 아래 금곡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최옹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글을 깨우쳐 농사일을 짓는 틈틈히 책을 읽고 풍수지리, 사주, 작명 등의 철학을 깨우쳐 실생활에 활용했다.

특히 "먼저 해온 일을 살펴 잘못된 일을 뉘우친다"는 다짐으로 바쁜 농사일 틈틈히 일기를 기록해왔다. 최옹의 일기쓰기는 이보다 훨씬 오래 됐지만 그전의 것들은 살림을 옮기면서 분실했다고 한다.

부인 윤경모(68) 여사는 "고되게 일하고 와서도 꼭 그날 일한 내용을 적었고 정 바쁠 때는 초저녁잠 잠깐 자고 일어나 글을 썼다"며 "농사일 한 것과 집안일을 적어 놔 후에 확인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보잘것 없다고 버리지 말고 두고 보라고 늘 말했다"고 전한다.

최옹의 일기를 보면 징개터굴, 집넘어, 붉은어덕, 말똥재, 불무갈, 다리재 등 순우리말 농토이름이 수시로 나온다.

'1991년 7월 26일 금요일 맑음 / 오래간만에 개인 날씨였다. 오늘은 넘어, 붉은어덕, 말꽁재(말똥재) 등에서 지고 다니는 통으로 농약을 하였다. 그리고 고추밭도 하였다. 오후 늦게 징개터굴 두렁을 깎기 시작하였다'

'1993년 11월 7일 / 오늘은 벼 공판하는 날로 25포대 배당 받아서 매상하였다. 같은벼 였는데 1등으로 20포, 2등으로 5포였다. 귀로에 회관에서 술울 많이 들고 취했던가볼러라. 수매한 대금은 다음과 같다. 1등 20포 956,400원, 2등 5포 228,450원 1,184,850원'

또 1984년 3월에는 숫송아지 값이 139만원, 지난해 2월 14일에는 530㎏짜리 소를 293만원에 판 것을 알 수 있고 1995년 1월 3일 백금2리 마을동계를 한날 기록을 보면 동네돈이 500만원이 조금 넘으며 동산을 판돈 200만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냉해가 심해 농사가 흉년이었던 1993년 12월 21일은 눈도 제법 많이 내린 날로 소장사가 암송아지를 60만원에 매매하라고 한 것을 그렇게 팔수는 없어 20만원을 더 달라고 하다 소장사가 그냥 가버려 소값도 뚝 떨어지고 농사도 어렵다는 심정을 표현했고 1984년 9월에는 늦가리 논에 올벼를 심었다 농사를 실패하고 얻은 경험을 기록하기도 했다.

2남5녀중 막내딸 윤자(30) 씨는 "평소 자식들에게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살라고 하신 아버님은 남을 이용해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셨고 땅에 콩 두 알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오고 글씨 쓸 수 있는 빈 종이는 와이셔츠 상자라도 절대 그냥 버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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