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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각 정당들에 지금된 국고보조금은 모두 516억 원이었다. 여기에 양대 선거가 있는 올해엔 선거보조금까지 추가돼 1천억 원대를 쉽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제도권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5일, 민주당 김근태 고문과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대안정치연구회>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합리적 운용을 위한 개선방향'이라는 주제로 의미있는 논의의 장을 가졌다. 이 자리에선 공천권과 함께 당내 민주화의 핵심 화두로 불리는 정치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고보조금'의 합리적 운영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가보조금은 멋대로 쓰이고 있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은 지금까지의 정당 관행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지난 2000년에만 한나라당 211억 원, 민주당 184억 원, 자민련 96억 원, 민국당 24억 원, 한국신당 1억 원을 포함 총 516억 원이 지급됐지만, 그 가운데 제대로 쓰인 돈의 비율은 매우 낮다는 것(반면 주 수입원이 돼야 할 당비는 민주당 132억 원, 한나라당 166억 원, 자민련 55억 원으로 이를 밑돌았다).

참여연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고보조금 중 일부는 당 원로의 휘호·달력을 만드는 등 정당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용도에 쓰였으며, 정당 사무원들의 봉급을 정책개발비로 분식한 곳도 있었다.

한 정당은 조직활동비 3억7천여만 원 중 식대로만 사용한 돈이 2억여 원(57.8%)에 달했으며, 총재 주최의 각종 만찬과 오찬에 사용된 돈이 조직활동비의 45.3%에 달하기도 했다. 원내 활동에 사용돼야 할 돈이 중앙당과 당 지도부의 활동에 유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제도가 '정치자금의 음성적 불법조달을 차단하고 정당간 부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동시에 정당의 공적 활동과 정책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는 당초 취지를 무색케 해주는 대목이다.

박 사무처장도 "81년 도입된 국고보조금제도는 불법적인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정치인들을 달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며 "이런 불순한 의도도 출발했다고 해도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국고보조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도 "국가보조금이 정말 의정활동에 도움이 돼 한보사태와 같은 상황을 막을 수만 있다면 늘려도 된다"면서 "비주류가 아닌, 여야의 당권파들이 제도보완의 목소리를 높여야 실질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는 "총재 중심의 홍보활동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국민경선에 드는 돈은 아까와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며 "정책개발비로 하부조직을 관리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80년 12월에 신설된 국고보조금은 89년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81년 8억 원으로 시작된 국고보조금이 양대 선거가 있는 올해엔 1139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삼김이 정치 일선에 본격적으로 복귀한 이후인 89년 25억 원에서 90년엔 105억 원으로 부쩍 증가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부총재는 "87년 대선 이후 지역사당 정당의 등장과 함께 급증한 것은 이들이 국고보조금을 통해 1인 정당을 육성해왔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 집행이 전적으로 당 총재와 측근에게 위임된 만큼 그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한림대 김용호 교수 역시 "국고보조금의 사용처가 사실상의 용도 제한 없이 방만한 사용을 묵인하는 데다, 지출에 대한 철저한 감사도 결여돼 있어 당총재의 사금고로 사용돼 왔다"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제도의 폐단에 대해선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 국가보조금 제도는 정치권의 담합에 의한 보조금의 과도한 증액과 나눠먹기식 배분, 방만한 지출 등에 의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실질적인 감시와 제한 장치가 미진하다는 비판이 상당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나온 개정안은 두 가지. 지난 해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안과 최근 제출된 정몽준 의원의 안이 바로 그 것이다. 크게 국고보조금의 책정방식, 배분방식, 사용처의 문제, 관리 방식의 개선방향을 담고 있는 두 안은 세부적으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정 의원의 안을 소개하면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고보조금의 100분의 50은 지급 당시 국회의석을 가진 정당의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하고 국회의석이 없는 정당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일정한 득표를 한 정당에 대해 국고보조금의 100분의 2씩을 배분·지급한다. 나머지 국고보조금은 최근에 실시된 총선에서 득표한 정당의 득표수비율에 따라 지급한다.
▲ 국고보조금 중 정책개발비 비율을 20%에서 70%로 상향 조정한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고보조금 조사·확인을 '감독상 필요한 경우에 실시'에서 회계보고기간 만료일로부터 2월 이내에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한다.

▲ 국고보조금의 수입, 지출은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된 계좌를 통해서만 할 수 있게 한다.
▲ 대통령령에 위임된 국고보조금의 감액규정 및 지금중단 규정을 법률로 규정한다.
▲ 정당이 회계보고를 하지 않거나, 이를 허위로 하는 경우 지급한 보조금의 25%를 감하던 것을 회계보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종전대로 하고, 허위로 한 경우에는 허위 보고 금액의 2배를 감액한다.

이에 대해 박 사무처장은 "두 안이 서로 중복된 것도 있고, 차이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 가운데 좋은 것들을 채택하고 보완함으로써 좀 더 나은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존속해 왔던 국가보조금 제도가 이제서야 본격적인 도마위에 오르는 이유가 뭘까. 일차적으론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정당민주화' 바람이 더 이상 국고보조금을 사금고화 하는 것을 방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둘째로는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언론의 활동 등을 통해 문제가 노출됐고, 이것이 지난해 선관위의 실사작업을 통해 증명이 됐기 때문이다.

다음은 토론회에 참석한 김현태 중앙선관위 정당국장의 말.
"지난 93년 영수증 사본의 열람과 이의신청을 제도화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지난 해부터 시민단체가 관심을 가져 본격적으로 거론됐고, 선관위 역시 처음으로 실사와 서면심사를 했다. 2001년은 정치사와 정치자금에 있어 획기적인 해였다."

이와 함께 김 국장은 "앞으로 매년 실사를 실시하고 3개월 제한없는 사본교부 운영기준을 세웠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조금을 지급받은 정당과 의원, 관계자의 운영이다"고 덧붙였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대통령제라는 점에서 정당보다는 의원 각자가 주체가 돼야 한다. 10만 원 이하의 후원을 많이 받는 후보에게 더 많은 보조금이 지급되도록 하자"면서 "보조금은 상향식 공천 경선비용 등 당내 민주화에 사용돼 선거 중심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대철 고문은 "무엇보다도 돈 많이 드는 한국 정치문화가 본질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합리성보다는 '맨입으로 됩니까?'라는 인정과 의리에 치우치는 유권자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을 준비했던 정몽준 의원은 "당내 민주화뿐만 아니라 입법기관의 행정부 견제라는 기능 향상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 뒤 "정책생산력의 향상과 운영의 투명성이 선행된다면 국고보조금이 늘어나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고 무조건적인 배타론을 경계했다.

결국, 국가보조금과 관련된 정치권 안팎의 개선 촉구는 그동안 국민의 세금을 무소불위로 사용해왔던 정당들에 대해 그 혜택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려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용호 교수는 정치인 스스로 국고보조금 제도에 대해 개혁 의지가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갖는다는 말로 이를 대신했다.

덧붙이는 글 | 민주신문 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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