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산토월(牙山吐月 : 월아산이 보름달을 토해 내다)'은 진주 12경 중의 하나이다. 명승절경이라고 소문난 곳에는 대부분 그에 어울리는 사연을 안고 있듯, 이곳 월아산에도 도선국사가 청학 한 마리가 이곳에 날아와 앉는 곳을 보고 청곡사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그러나 명승절경이란 것이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이 많고, 옛 모습을 잃어버린 까닭에 소문만 믿고 찾았다가는 실망만 하기 십상이다. 월아산도 2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는 나지막한 산이고, 청학이 날아왔다는 상서로운 기운도 느끼기 힘들다. 복잡한 세상살이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범부의 수준으로 옛 고승의 깨달음을 쫓아갈 수는 없는 법.

예전에도 월아산을 몇 번이나 찾은 적이 있어, 이번에는 미처 가보지 않은 곳으로 발길을 잡았다. 쉬엄쉬엄 겨울 아침 공기의 매서움을 느끼며 청곡사의 뒷길을 택해 올라가니 멀지 않은 곳에 성전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가 나타났다. 스님은 출타 중이신지 아무런 기척이 없어, 염치불고하고 수도꼭지를 틀어 목을 축이고 마당 한켠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가라앉혔다.

걸터앉은 바위에서 보는 전경은 가슴이 확 트일 정도로 가뿐한 것이었다. 내 몸집의 두 배쯤 되는 이 평평한 바위는 너럭바위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함을 주었으니 크기를 논할 바가 아니었다.

이 조그만 바위에서 아침 햇볕을 즐기고 있으니, 갑자기 도선국사가 이곳에 앉아서 저 아래 기슭에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러지지 않을 청곡사를 창건할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천년을 내다보고 계셨는데 나는 기껏 언 몸을 녹여주는 아침 햇볕에 즐거워하고 있으니... 아마 스님은 나같은 중생들이 월아산 기슭 이곳에서 편안함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셨나 보다.

월아산은 곳곳에 대나무 숲이 있는데, 이곳 암자는 특이하게도 그 대나무 숲 가운데 해우소를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솨솨솨 쏴...' 바람에 대나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볼일을 보는 재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들 소변이 마려울 때 어른들께서 '쉬쉬...'하며 아랫배를 달래주는 소리처럼, 대나무가 시원하게 배설의 쾌감에 강도를 더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월아산 청곡사 뒤편 조그만 암자 대나무 숲 해우소에서 근심(?)까지 날려버리고 너럭바위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던 그 두어 시간은 한동안 잊을 수 없는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