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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는 지난해 12월 초에 부제품(副祭品)을 받은 부제님이 한 분 있지요. 2004년이면 본당 설립 40주년이 되는 우리 태안교회에서 세 번째로 배출한 부제님이랍니다. 부제 시기를 잘 지내고 마침내 사제 서품을 받게 되면 우리 본당 출신 두 번째 사제가 되시면서 출신 본당 설립 40주년을 한결 빛내주는 폭이 되겠지요.

우리 본당 출신 세 번째 부제님이 사제 서품을 받게 되면 두 번째 사제라니,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두 번째 부제님은 서제 수품 직전에 옷을 벗고 말았지요. 온 신자들이 얼마나 애석해하고 안타까워했던지…. 사제 한 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세월도 근 10년이나 걸리고) 얼마나 어렵고도 장엄한 일인지를 우리 본당 신자들은 그때 절감을 했지 싶습니다.

온 신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세 번째 새 부제님은 아주 일찍부터, 그러니까 애기 학사 시절부터 부제라는 호칭을 들었지요. 왜냐 하면 성씨가 방 씨이기 때문이었지요. '방'자와 '부제'를 합하면 아주 멋진 이름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신자들은 방 학사를 '방부제'로 더 많이 불렀던 거지요.

방 부제님의 아버지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어머니도 나와 동갑 친구였지요. 그런데 방부제의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답니다. 병을 얻어 세상을 뜬 지가 벌써 4년쯤 되었나….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방 부제를 더욱 안쓰럽게 여겼지요. 방학 때나 명절 때 본당에 오면 남몰래 용돈 몇 푼이라도 쥐어 주려고 노인네가 쌈짓돈을 다 아끼고….

요즘 방학 동안에는 이 방 부제님이 제대 앞에서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같이 지내면서 주일 미사 강론을 하기도 하는데, 지지난 주일이었던가, 처음 강론 중에 참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했지요.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 있는 <대전가톨릭대학>에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상황이라서 공부가 너무 어렵더랍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영 오르지를 않더랍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취침 시간에도 몰래 옷장 속에 들어가 플래시를 켜고 책을 읽고, 심지어는 화장실 안에서도 몰래 공부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간절히 한 가지 소원 기도를 했답니다.

"하느님, 일등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중간만 가게 해 주십시오. 제 나름껏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이지 중간만 가게 해 주십시오."

방 부제님이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는 동기생이 18명이었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해가 가면서 동기 신학생들이 점점 줄더랍니다. 자퇴를 하거나 퇴학을 당하거나 해서…. 그러더니 부제품을 받는 올해 들어서서 또 두 명이 무기정학을 당하더랍니다. 그래서 남은 동기생은 9명. 그러니까 동기생 수가 정확히 절반으로 줄어든 거지요.

이 상황에서 우리 방 부제님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공부 성적이 애초 하느님께 소원 기도를 드릴 때의 동기생 숫자로 따져서 정확히 중간에 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오, 하느님께서 내 소원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신자들은 모두 까르르 웃었지요. 신자들은 우리 본당 출신 방 부제님의 신학교 공부 성적이 그래도 중간에 오게 된 것을 모두 기꺼워하며 장하게도 여기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벌써부터 강론대에서 신자들을 웃길 줄 아는 방 부제가 정색을 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신학교에서 비록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훗날 사제가 되어서도 죽는 날까지 좋은 방부제, 향기 나는 방부제, 결코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방부제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잘 도와주실 것으로 압니다."

신자들은 더러 웃기도 하면서 이번에는 모두 힘껏 박수를 쳤지요. 나도 성가대 석에서 힘껏 박수를 치는데, 그때 언뜻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친구 아들 방 부제가 마음에 여유를 지닌, 아주 여유 있는 신부가 될 것 같은디….'

미사 후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워띠어, 내 친구 아들 방 부제가 진짜루 질 좋은 방부제(防腐劑)가 될 것 같지?"

마누라 왈,
"그럼요. 방 부제님이 증말루 소금 같은 방부제가 되도록 우리가 더 열심히 기도를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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