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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문을 열어라" 정문을 가로막은 구 재단측 학생들 앞에서 풍물을 벌이고 있는 에바다연대회의 학생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글: 김시연 류종수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10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에바다학교 정문.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에바다 공대위측 이사진과 교장, 농아원장, 그리고 이들 앞을 가로막아선 구 재단측 학생, 직원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돌발적인 몸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 하지만 한 발 물러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양측 농아원생들간엔 따뜻한 눈길과 함께 '그들만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입니다. (구 재단 측이) 뒤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나와 있긴 하지만 학생들끼린 개인적으로는 모두 친해요."

5년전 에바다 재단의 비리를 처음 폭로한 권오일 교사는 이날 구 재단측 학생들에 의해 '성추행 교사'로 매도돼야 했다. 하지만 그를 정작 안타깝게 하는 건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보다 농아원과 해아래집으로 갈려 어쩔 수 없이 맞서고 있는 어린 농아원생들의 모습이었다.

7인의 영정과 대표 없는 '비대위'

▲정문 앞에서 공대위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구 재단측 직원들과 농아원생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해 11월로 5주년을 맞은 에바다 사태는 표면적으론 일단 해결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평택에바다공동대책위원회(대표 김용한, 이하 공대위) 등 민주화 세력들은 오랜 투쟁 끝에 에바다복지회 이사진 다수를 차지하는데 성공했고 지난해 에바다학교 교장과 에바다복지원 원장을 민주적 인사로 새롭게 선임했다. 하지만 구 에바다 재단측은 일부 학생들과 직원들을 앞세워 교사와 학생들을 몰아내고 학교 정문을 폐쇄한 상황이다.

10일 오전 에바다농아원(에바다학교) 정문 앞은 공대위측 이사들과 권오일 교사를 비난하는 현수막과 선전물들로 가득했다. 현수막 밑에는 공대위 측 관선이사 7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힌 영정들이 내걸려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공대위측의 '에바다비리세력 척결과 정상화를 위한 시민결의대회'에 맞서 '에바다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한 구 재단측 학생과 직원들이 설치한 것이었다.

이들은 유인물을 통해 "지금 에바다는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데도 공대위측 이사들은 정의를 앞세워 법인 재산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며 공대위에 대한 불신을 표현했다. 기자가 농성중인 농아인을 통해 비대위측 대표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아직 대표자가 없다"며 교내 출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김용한 공대위 대표는 이날 시민결의대회에서 "에바다농아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이지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는 재단이 아니다"며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보장받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동원해서 교장의 업무를 방해하고 외부사람까지 동원해 정문을 가로막는 비리 이사진은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갈등을 뛰어넘은 농아원생들의 우정

▲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마스크를 한 채 정문 앞을 굳게 막아선 청년들의 비장한 분위기와 달리 정문 옆 울타리 너머로 얼굴을 내민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정문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10여 명의 어린 농아원생들은 때때로 공대위측 농아원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정문을 지키던 농아원생들 역시 때때로 공대위 집회 대열에 뒤섞여 그곳의 농아인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 사태 중재를 위해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파견된 오걸택(65) 이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특수학교 교사 출신인 탓에 양쪽 모두에 많은 제자들을 둔 그는 "협회 안에 수습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오늘은 자료 수집차 왔다"면서 "중립적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팽팽하게 양측이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자신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친숙한 그들이 왜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해야 했을까.

농아원생 출신인 변성일 신임 농아원장은 "열일곱살 때부터 에바다농아원의 온갖 비리를 지켜봤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이용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최승창 목사는 학생만 내세우고 왜 비겁하게 뒤에 숨어 있나"며 수화로는 다할 수 없는 자신을 울분을 큰 몸짓으로 표현했다.

변 원장은 "에바다농아원을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시켜 오해의 골이 깊은 농아들을 다시 불러모아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만들겠다"며 자신의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교장이 학교 들어가는 걸 왜 막나"

▲ 교내 진입을 시도하던 윤성귀 이사장과 신임 교장을 가로막고 있는 구 재단측 직원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집회를 마친 공대위측 이사진과 신임 교장, 농아원장 등 임원들은 교내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문 앞을 막아선 농아원생들의 저항은 완강했고 몸싸움 과정에서 윤귀성 에바다복지회 대표이사(이사장)이 뒤로 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이에 경찰이 동원돼 이들 사이를 가로막자 윤 이사장은 "합법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가는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가로막으면 어떡하냐"며 경찰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7일 오전에도 학교에 들어가려다 구 재단측 학생들의 저지로 2시간여의 대치 끝에 물러나야 했다. 이사회측도 이제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장이다. 윤성귀 이사장은 "지금까지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 재단측과 계속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타협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란 걸 알게 됐다"면서 "이젠 그런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차선, 차악책으로 법적인 절차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바다복지회는 오는 14일 공대위와 함께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구체적인 사태해결방안을 밝힌 뒤 다시 평택으로 이동해 교내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다.

▲ 자신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김지원 농아학교 교장(맨 왼쪽)과 변승일 농아원장(맨 오른쪽)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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