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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찾으러 갔다가 추억을 만든다

바다는 그리운 노래이다.
파도 소리는 청춘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함성으로.
소리를 찾아 겨울 바다로 가기로 했다.
전혀 계획이 없던 일에 발동을 걸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 휴가 때는 동해안에서 천막 치거나 산에 가서 살던 세월이 이제는 꿈인양 하였다.

먼저 직장 동료 중에서 다섯 가족이 이십 여년 가까이 지금도 가끔 만난다. 형제라면 형제이니 이웃 사촌이 따로 있나. 남정네들은 무심히 오고 가도 아낙들이 주선하면 함께 따라 가니, 이제는 그런 생활이 편해서 남정네의 노추(老醜)라기보다 생존의 방편이다. 불편하면 아니 가도 되련만 함께 있으면 서로 편하니 만나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가끔 도시의 음식점에서 만나 고기 굽고 소주 한 잔씩은 했다.

차를 타고 나서서 집을 떠나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달랐다. 윤상네는 삼겹살집을, 윤진네 실내 리모델링을, 상욱네는 찻집을 , 인영네는 보험회사를. 나는 이 일 저 일 바쁘니 모두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월급 타며 살아 갈 때 꿈도 꾸지 못한 모습으로 서로 변했다. 한 번 함께 떠나서 서울을 벗어나자 하면서 벼르기를 5년이 넘었다.

바다라면 동해가 떠오른다. 가자 해도 길이 머니 힘들다. 서해대교를 볼 겸 대천으로 가자 해서 다섯 가족이 뜻을 모아 서해대교 지나 첫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제 아이들은 부모하고 함께 걸음을 하지 않는다. 아들들은 군대 가서 제대까지 해서 복학했고 철부지 딸아이들도 다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 부모들이 해변에서 추억 쌓을 나이가 되어 있으니 어느 집 아들 딸들이 부모와 한걸음 하랴.

모이는 가족은 자기 차로 달리고 달렸다.
서해대교는 달리면서 멋지다 하며 달렸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보니 다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리의 갓길에 세워서 바다를 한 눈에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다를 보려는 마음이 간절하여 그들이 보고 나면 마치 바다가 없어질 듯 했다. 동서울 톨게이트에서 서해대교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리고, 서해대교에서 대천까지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일요일이라지만 바다로 가는 길은 그냥 달리는대로 길은 열려 있었다.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햇살의 체감은 부드럽고 따사로웠다. 길은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의 감각처럼 미끈했다. 여름은 이제 아득한 세월 속에 지워져 있었다. 바닷가는 겨울에는 다가가기 서먹한 곳이었으나 이제는 따뜻한 유혹의 눈웃음을 치는 듯 했다.

대학 1학년 때, 기차를 타고 대천역까지 와서 다시 버스에 흔들려 해변가의 군대 막사를 개조한 학교의 하기 휴양소에 도착을 했었다.
별이 총총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서야 우리 눈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해서 어디를 왔는지 서로 아득한 심정이었으나 서울을 벗어나고 해변 가득 파도 소리에 캠프화이어와 키타 소리를 꿈꾸었다.

그랬던 바다를 향해서 우리는 다가가고 있었다.
숙소는 예약이 되어 있었다. 젊은 날이라면 바다부터 가자 했을 터이나 바다를 추억으로 묻어둔 채 숙소로 먼저 들어섰다. 배나 채우고가지. 저마다 마음은 같았다. 숙소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 콘도의 8층이었다. 창문으로 바다가 꽉 차 있었다. 한 눈에 들어 오지 않는 바다였다. 몸을 돌려 가며 바다를 보아야 했다.

추억 속의 바다가 가슴에서 빠져나와 눈앞에서 펼쳐졌다. 햇살이 눈부셨다. 서해의 해는 질 때까지 빛난다. 발코니에는 바다 바람이 싸늘하게 나를 감싸며 낯가림을 했다. 금세 실내로 밀어 붙였다. 그럴 만큼 바다 바람은 소름 돋을 만큼 차갑게 다가왔다. 문을 닿으니 바람은 문밖에서 휘날리는 깃발로 이제 알았다 하며 다정한 체 하지만 창 문안의 햇살 속에다 우리는 겨울의 오후를 앉혔다.

통삼겹살집을 하는 윤상네가 우리 일행이 들먹하게 먹고 넘칠 만큼 가져온 고기를 굽고, 소주잔을 돌리는 동안 햇살은 여름에 대한 향수를 눈부시게 뿌려대고 있었다. 좋다, 좋아 하며 잔을 돌리며 말하고 바다를 보며 서로 누구랄 것 없이 말했다.

인영 엄마가 입을 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여름방학에 여기를 왔었어요. 폭풍이 불어서 배가 뜰 수 없을 때였답니다. 다방에서 함께 갔던 다른 가족들과 죽 치고 있었는데 애들 아빠들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더니 배를 타자는 거예요. 섬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까짓 비바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제법 큰 배라기에 탔더니 10명이나 태울까 하는 뱃속에 30여 명이 버글 대는 거예요. 아이들은 아버지 배에 얹고 사람들이 짐짝 같았어요.무슨 살 길이 있다고. 지금 생각하면 놀러 가는 길을 목숨 걸고 갔으니 얼마나 무모해요, 남자들이란.

배는 뒤집힐 듯 흔들리는데 이제 죽었다 싶대요. 배가 흔들릴 때마다 비명 소리가 지옥이었어요. 겨우 겨우 죽다 살다 하면서 섬에 도착했어요. 한 밤중이었지요. 아침이 되니까 비바람이 어디갔냐 싶게 말짱한 거예요. 남자들은 그것 봐라 했지만 섬에 오면서 무슨 일이 났으면 어쩔뻔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해요."

해 좋은 여러 날은 기억에서 흐릿하고 비바람 몰아쳤던 작은 통통선에 대한 기억이 인영엄마에게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말을 들으며 인영아빠는 싱긋 할 뿐 젊은 날의 무모에 대하여는 묵묵부답이다.

나 또한, 싫다 싫어 하며 바다를 노려 보고 있던 여름날 , 바다는 미쳐 날뛰고 있었고 목조 수양관은 나도 죽고 말테야 하며 함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짝은 막사에서 벗어나려고 힘껏 달렸다가 다시 막사가 잡아 당기면 끌려 들어서 무서운 소리를 내지르며 부딪쳤다.
낮밤없이 비는 하늘과 땅을 채우고 모기들은 담요를 뚫고 우리의 피부를 뚫으며 저들의 공포를 사람들의 핏줄 속에 쏟아 놓고는 달아났다. 모기 망 창문에다 바람은 지칠 줄 모르는 발길질을 해댔다. 비에 지치고 바람에 지쳤다.

바닷가 모래밭에 그리운 얼굴을 그릴 수는 전혀 없었다.
바다는 단 한 사람의 접근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바다에 왔던 다음 날 부터 떠나는 날까지 사흘 동안 내리 그랬다. 한 번 쯤 다정하게 지내고 싶었던 약대 여학생이 있었으나 바다를 떠나는 날까지 마음으로만 그랬지. 바다는 추억 만들어 주기에 모질었다.

세월이 지나니 성난 바다와 거친 바람과 굶주린 모기까지 그립고, 소녀 태를 겨우 벗어났던 1학년 여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그 때의 모습으로 아련하다. 그 모습과 정경은 추억의 이름으로 문득 떠오르더니 이제 다시 그 바다를 보니 새삼스럽다.

술이 오른다.
남정네들은 술기운으로 베개를 베고 오수에 빠지고 아낙들은 밀어두었던 입담에 시간을 죽여댔다.

잠과 입담을 거두고 바다를 가까이 보자며 나섰다. 바람이 체온을 걷어가기 시작했다. 금세 추워졌다. 윗도리에 달려있는 모자를 꺼내 쓰고 장갑까지 끼고서야 차가운 바다 바람을 참을 만했다. 저마다 군밤 장수요, 붕어빵 장수로 모습이 바뀌었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스쿠터 모양의 세발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달아나고 뒤따르고 있었다. 바다 냄새 보다도 그것들이 꽁무니 배기관에서 내뿜는 매연냄새로 가슴이 답답했다.

젊은 이들이 거의 다 탑승자였다.
달리는 속도는 20킬로미터 이상은 되는 듯했다. 모래 위를 달린다고 하지만 서로 충돌위험이 있고 달리다가 넘어질 위험도 있어 보였다.
구동체가 달릴 정도로 다져진 모래 운동장이니 넘어졌다 하면 상처가 나고 충격을 입을 테지만 쉴 사이 없이 모터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바닷가를 찾아도 조용하게 생각할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도 바닷가에서 오토바이 폭주족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장사꾼이야 머리를 써서 하고 있겠으나 먼 길 나그네에게는 봉변이었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해는 안녕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사라지자 금세 어둠이 바람을 업고 몰려왔다. 해변가의 가게마다 불이 켜지고 오지 않는 길손을 저마다 부르고 있었으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등대마냥 외롭고 덧없이 보였다.

외로워 보이는 곳에는 길손들은 가지 않는다. 텅 빈 해변의 가게에 가서 함께 고독할 이유가 없다. 해수욕장에서 1킬로미터를 가니 대천 항이었다. 일요일 오후 항구의 야시장은 불빛만 요란했지 부르는 장사치 소리가 덧없이 찾아 든 길손이라고는 우리 말고 두엇이나 될지.
길손이 값을 물으니 장사치는 물어보는 생선 마다 비닐 봉지에 담는다.

기가 약한 길손들은 부르는 값에 따라 싸주는대로 가지고 가야할까 순간적이나마 절망한다. 장화를 신은 어느 아주머니가 도와 줘서 고맙고 반갑다 하면 그냥 아줌마에게 당겨져서 아줌마가 일하는 음식점으로 줄줄이 달려간다. 움직였다 하면 금세인 음식점에서 항구의 어시장까지 나와서 손님을 잡는다. 항구의 식당이 어디 서울만 할까. 푸짐하게 보여도 도시의 세련미나 깔끔하지 못해도 넉넉한 인심이 금세 와 닿는다. 생선이 상위에 올라온다.

너는 누구냐?
나는 궁금하고 윤상 아빠가 설명을 달았다.
우럭입니다. 놀래미고 점성어에다가 해삼은 아시지요?

소주잔이 또 돈다.
바다에서 마시는 소주잔은 약수 같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오지 못한 남은 일행이며 롯데 백화점에서 커피점 쉘브르의 우산을 하는 상욱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을 아직 못 떠나겠지 하는 아쉬움까지 술에 녹인다.

추억은 이제 잊는다.
모래성 쌓는 사랑을 만드는 일은 옛일이고 와서 먹고 마시는 일이 지금의 추억 만들기이다. 항구의 겨울 밤은 깊어 가고 바람도 이제 주춤 마실 갔다.

“ 와, 눈 온다.”
소리에 창문으로 달려 가니 펑펑 눈발이 날린다.
겨울 바다가에 눈이 추억 처럼 왔다가 솜사탕 처럼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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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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