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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과 퇴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우리나라 처럼 상반된 나라가 없을 것이다.

재임 중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담 기사로 도배하다가 퇴임한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난 일색의 기사로 돌변하는 카멜레온적인 언론의 잣대가 지난 날(?) 우리나라 언론의 자화상이었다.

정치인 스스로 이를 방관하고 이용했던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퇴임 대통령에 대한 흠집 내기는 언론의 객관성 마저 상실한 채, 비리만 부각시켜 왔던 것이다. 보도내용만 본다면, 마치 한국의 대통령들은 모두가 '중 죄인'이 되는 것이다.

비리를 무조건 덮어 두자는 것이 아니다. 비리가 있다면 재임 중에 견제를 해야 했고, 또 재임 후에라도 두고 두고 따질 수 있다. 그러나 미담은 당연지사로 묻어 버리고, 비리만을 부각 함으로써,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부분조차도 주관적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후임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대한
역학구도가 정치 보복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에 의해 법정에 서는 사건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는 40년 친구인 후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들의 관계는 친구에서 반대 급부로, 반대 급부에서 친구지간으로 오가는 기구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7년전에 있었던 1994년의
'6.25 전두환-노태우 긴급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기에는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 만큼이나 석연치 않았던 사건이었던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개별적인 추억을 다루기에 앞서 두 사람이 극적으로 만났던 1994년 6월 25일의 긴급회동을 재조명 해 보았다.

문민정부시절인 지난 1994년 6월 25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긴급회동'은 회동 사흘전부터 감지 되다가 2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측근인 정해창 전비서실장이 최규하 전 대통령을 방문하면서 표면화 되었다.

"세 전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함께 동참해서 북한의 핵문제와 시국에 대해 의견을 나누자“고 제안했다가 최 전 대통령의 거부로 결렬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1994년 6월 25일 오전 11시,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탑에서 만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긴급회동은 정가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극적인 회동을 취재하기 위해 국립묘지 현충문에는 회동 20분전부터 내·외신기자 20여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40년 친구로 생사를 같이 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그러나 이들은 5공청문회를 시작으로 적대관계(?)로 돌아서며 6년 4개월 동안 서로를 거부해 오다가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통령취임 이후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오전 11시경 삼엄한 경호 속에 먼저 나타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현충문 앞 계단에서 5분 후에 나타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악수를 나누면서 가벼운 포옹을 하기도 했고,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기도 하였다.

현충탑에 헌화한 두 전직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을 한 후, 박정희 대통령 내외묘소 등을 참배 한 뒤, 역삼동의 한 음식점 2층방에 자리를 옮겨, 낮 12시 10분부터 1시 30분까지 오찬을 함께 했다.

5공화국의 장세동 전 안기부장, 박영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6공화국의 이현우 전안기부장, 정해창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배석한 오찬은 상의를 벗은 채 편한 자세로 식사를 했다. 오찬장에는 국산양주와 와인 맥주 등이 계속 들어가고 간간이 박수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또 배석자들이 고무된 표정으로 서로 술잔을 권하는 모습이 문틈으로 보이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반주로 보기에는 예상보다 많은 술과 음료수가 계속 들어가는 것을 본 한 기자가 “대낮의 폭탄주”라고 언급하자 안현태 전경호실장이 “폭탄주는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의 긴급회동이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시위성(?) 회동 이다”는 일반적인 여론이었으나, 정작 여당 이었던 민자당은 계파간의 이견은 있었지만, 비교적 신중론을 펴면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인 민주당의 이기택 대표는 “전-노 회동에 대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서 뭐하느냐“며 평가절하 했고, 박지원 대변인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측근세력들에 대한 ‘12.12’관련 검찰조사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이루어진 회동임을 강조하며, 12.12와 5.18 등 과거를 정당화하거나 향후 수구세력의 새로운 결집으로 진전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들의 긴급회동이 있었던 날, 이날 국회에서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제도개선위원회가 7개월만의 산고 끝에 상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 되었다. 제169회 임시국회부터 새국회법이 적용 됨으로써, 입법부의 진일보한 혁신을 기대 했으나 입법부의 현주소는 그 때나 7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입법부와 검찰간의 신경전은 여전하고, 보수세력들의 대선 판도짜기도 구태의연하다.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 할 수 없다”던 지난 날 사법부의 암울한 과거를 되새기며 찾아 본 7년전의 취재파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6.25 긴급회동'은 정치와 사법부의 아이러니한 공생관계를 엿볼 수 있는 암울한 역사 그 자체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억(?)을 본격적으로 조명 하기에 앞서 7년전의 회동을 사진과 함께 올려 본 것 입니다. 제1편에서는 언론통폐합에 대한 비리와 사이비 언론척결에 대한 업적을 동시에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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