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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河南)성을 여행하다보면 어디서나 중국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파룬궁으로 인해 매스컴에 다시 오르내린 옛도시 카이펑(開封), 수당시대 이후 부도(附都)의 역할을 했던 뤄양(洛陽) 등.

나에게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은 중국 최초의 사찰인 바이마스(白馬寺)나 롱먼스쿠(龍門石窟) 같은 문화유산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바로 황허가 가장 큰 줄기가 바로 허난성의 허리를 질러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른 물줄기의 거대한 강. 결국 우리의 서해까지도 그 빛으로 영향을 주는 그 강은 중국 문명의 젖줄이었다. 황허가 허난성으로 들어오는 쌴먼샤(三門峽)는 물론이고 뤄양을 지난 황허는 성도(省都)인 정저우(鄭州)에서 드넓은 자태를 보이고 동쪽으로 간다. 그리고 정저우는 남쪽으로 숭산(嵩山)을 끼고 있다. 그 숭산의 중앙에 중국 무술의 본산이자, 달마선사의 유산이 많은 샤오린스(少林寺)가 있다.

중원에서 황허와 나란히 열을 맞춰 흐르는 창지앙(長江)은 허난성과 맞닿은 후베이(湖北)성의 허리를 돌아간다. 후베이성은 허베이(河北)과 허난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평지와 달리 거대한 산들이 군림한 곳이다. 그 산은 사실 황허와 창지앙이 맞닿을 수 없게 한 원초이기도 하다. 후베이의 창지앙 북쪽 산지는 선농지아(神農架) 등 해발 2000미터를 넘는 산들의 연속인데 그 가장 북쪽에 있는 곳이 바로 우당산(武當山)이다.

두 산은 황허와 우당산을 끼고 있지만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샤오린스가 있는 숭산(嵩山)이 숭산이 중국 불교의 성소 가운데 하나라면 우당산은 도가(道家) 문화가 태동한 성지중에 하나다. 물론 도가의 경우 칭다오의 라오산이나 쓰촨의 칭싱산, 포박자의 탄생지인 광둥도 그 본산이다. 허난성은 또 명가(名家)의 태두중 하나인 혜시(惠施)가 태어난 곳도 허난이다. 물론 유가는 황허의 하류인 산둥성 지난(齊南)과 취푸(曲阜)에 기원이 있고, 이 지역은 중국 철학의 거대한 원산이다. 묵자(墨子) 등도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번에 '논어'를 통해 이곳을 살폈고, 이번에는 숭산과 우당산을 통해 불가와 도가의 흔적을 본다. 이 두 유산을 지나치며 좀 어렵기는 하지만 '중국 철학사'(펑요우란 저)를 동행한다. 어느 나라를 알려면 작게는 지형(地形)이나 기후를 살피고, 다름이 역사나 철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서 중국 철학을 아는 것은 당연하다.

숭산에서 달마선사를 만나다

정저우역의 출구를 빠져나오면 가장 손을 많이 끄는 이는 샤오린스(少林寺)로 가는 여행객을 잡은 이들이다. 호객이 싫어 그들을 뿌리치고, 역전 왼쪽으로 조금 걸어 여행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버스들이 '샤오린스'라는 간판을 붙이고,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현재 샤오린스를 규정하는 것은 달마선사로 대변되는 불교유산이 아니다. 바로 리롄지에(李連杰)로 대변되는 무술의 유행이다.

정저우시는 매년 가을 '국제무술축제'를 만들어 국내외의 여행객을 끌어들이다. 거기에 정저우시는 물론이고 샤오린스 아래 마을인 등펑과 샤오린스 주변에 있는 무술학교만 해도 수백개에 이르고 수련생은 수백만에 달한다.

여행버스는 순전히 입장료를 받기 위해 넣은 몇 곳의 코스를 지나서 2시간 여만에 샤오린스 입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익숙한 대문을 지나니 오른편으로 사적비가 눈에 띈다. 그 끄트머리에 달마선사의 사적비가 있다.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그는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했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뤄양(洛陽)에 이르러 동쪽의 숭산 샤오린스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했다. 이것이 중국선종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먼 길 찾아서 선사를 만나는 여행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무술비결이라고 써진 비디오테잎과 책을 파는 승려들을 비롯해 샤오린스는 더 이상 사찰이 아닌 관광상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들춰본다. 미국에서 활동한 펑요우란(馮友蘭) 박사의 '중국 철학사'는 비교적 유가에 충실한 책이다. 문혁이후에 만들어진 런지에유(任繼愈)의 '중국철학사'가 도가를 중심으로 쓴 것에 비하면 중국 철학에 대한 인식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철학계의 가장 큰 거목인 펑 박사의 고향도 허난성이어서 남다른 느낌이 든다. 펑 박사는 이 책에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별스런 철학의 한 갈래로 보기보다는 전체 사상의 한 흐름에서 파악한다. 또 달마선사가 창시한 선종을 '침묵의 철학'으로 보고, '불립문자'(不立文字), '돈오'(頓悟), '무득지득'(無得之得) 등을 통해 깨달음의 철학으로 갈파시킨다.

중국의 불교는 아프간이나 신장, 둔황을 거치면서 독특하게 변형된 라마교계열의 대승불교와 태국, 베트남 등을 거쳐서 남방쪽으로 들어온 소승불교로 크게 나뉜다. 선종은 이 남방계열의 영향을 받으며 이 지역에서 번창했고, 한국에도 짙은 영향을 끼친 종파다. 샤오린스는 그 선종의 본산이다.

우당산, 도교의 흔적이 살아 있는

샤오린스의 주변에 배치된 타린(塔林) 등을 살핀다. 탑의 수풀. 난 유독히도 부도를 좋아했다. 절의 대부분은 파괴와 복구를 거듭하지만 탑은 그 화에서 덜하다. 그 부도를 만지는 것이 그들과 가장 손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수백개나 분포된 부도탑의 무리가 절의 역사를 말해준다.

샤오린스라고 해서 속세의 정치에 무감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샤오린스는 중국 무술의 거대한 본산 가운데 하나다. 그 때문에 정치의 격류를 탔다. 당태종 이세민은 샤오린스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왕위 복위에 성립했다. 만주족이 집권한 후 샤오린스의 승려들에게 도움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샤오린스가 청왕조의 부탁을 거절한 반면 우당산의 무술인들은 억지로라도 그들과 더불어 샤오린스 토벌군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실제적인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결국 현대 중국에 들어서 우당산은 작은 협력의 대가를 치러야했다. 중국 무술의 양대산맥이지만 현저하게 추락한 반면 소림무술은 급성장한다. 숭산이 중국 불교의 가장 중요한 전래지 가운데 하나라면 우당산은 중국 도가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샤오린스의 아랫마을인 등펑에서 뉘저우(汝州)행 미니버스를 탄다. 뤄양방향에서 출발한 후베이성 방향 열차는 뉘저우를 거쳐 시엔판(樊襄)으로 간다. 시엔판에서 스옌(十堰)으로 가는 버스나 기차는 대부분 우당산을 지난다. 산 입구에 내리니 진딩(金頂)과 즈쇼궁(紫宵宮)방향으로 가는 차가 호객을 한다. 진딩은 우당산의 정상이다. 산의 능선으로 타 있는 길은 천길 낭떠러지로 위험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과 달리 먼산이 비교적 부드러워서 안심이 된다.

진딩을 보고, 즈쇼궁에 들른다. 즈쇼궁은 도교의 산실이다. '위아주의'(爲我主義)와 '경물중생'(輕物重生)을 표방한 양주(楊州)로 시작된 도가는 노자와 장자(莊子)를 지나면서 그 체계가 잡힌다. 고대사회의 귀신숭배사상과 무술문화, 전국시대의 신선사상등이 내포되기 시작했다. 진딩을 뒤로 하고 단아하게 자리한 거대한 사묘들이 늘어서 있지만 여행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기 그지없다. 끝없이 사람이 북적대는 샤오린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그 모순속에서 찾아지는 진리

펑요우란 박사가 보는 중국인의 형이상학적 움직임은 우리와는 상당히 달라서 흥미롭다. 다름 아니라 중국인은 종교에 그다지 심취하지 않는데 이는 펑 박사의 생각처럼 "종교는 거의 대부분이 어느 정도의 미신·교조·의식 및 제도를 상부구조로 갖춘 철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생각 아래서 종교는 물론이고 모든 철학이나 사상이 교묘하게 융합된다고 본다. "중국인은 너무나 철학적이기 때문에 비종교적이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전통 종교과 서구의 종교가 맹렬히 불탄 우리와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펑 박사의 가치관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모든 사상은 철저히 융합되어 나타났다. 어느 산을 가도, 불교, 도교는 물론이고 샤먼과 유가의 흔적이 공존하고 이런 경향은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그런 중국인들의 가치관은 즈쇼궁에서 만난 한 도교 무술인의 말에서도 나온다. 도교무술의 전승자 중 하나인 삼풍파 종윈롱(鍾雲龍) 정종은 "소림무술과 무당무술은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두 무술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왔고, 각자의 장점을 키워왔습니다. 무당무술은 동작으로 보면 느림 속에 강함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극에 달하면 새로운 강함이 생깁니다. 소림은 그 반대지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가는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불가가 들어오자 서로 융화해서 새로운 정신적 체계를 세웠다. 당나라는 불가를 중시했지만 유가나 도가 등 모든 사상을 잘 융화시켜 문화적 성숙도를 높인 왕조였다. 그런 융화의 힘이 어떤 사상과 힘이 다가왔을 때도 중국화를 시킬 수 있는 동력이었다. 숭산과 우당산 여행은 그런 중국 철학의 풍모를 잘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시대에 따라 관점 달라지는 철학사 기술

철학사도 역사책과 마찬가지로 시대나 지배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에 번역된 중국철학사는 다양하다. 88년에는 일월서각에서 후와이루(候外盧)교수의 중국철학사를 펴내기도 했다. 중국철학계의 거목 가운데 하나인 펑요우란 박사의 저술은 정인재 교수가 89년 번역 출간(형설출판사 간)한후 99년에는 '까치'출판사에서 박성규씨가 완역 출간했다. 

펑 박사의 저술은 1947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펴낸 것이다. 펑교수는 유가를 중심으로 철학사를 분석했다. 90년에는 린지에류 교수의 '중국철학사'가 '까치'에서 번역출간됐다.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후반인 74년에 지어진 관점이어서 이전의 철학사와는 확연히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막시즘에 기초한 독특한 중국철학사다. 

94년 고려대 김충렬 교수가 예문서원에서 출간한 '중국철학사'도 그 깊이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94년에는 '자작아카데미'에서 베이징대학 철학과의 중국철학사를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적 관점의 철학기술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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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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