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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학교에 임용되었을 때, 첫달 월급봉투에 '교육회비'라는 것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교육회라는 곳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모든 교사들의 월급봉투에서 회비가 징수되었기 때문에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한국교총은 학교장을 중심으로 초중고교사, 그리고 대학교수들이 가입되어 있고, 회장은 대학교수들이 번갈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전교조 합법화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교원단체로 50년을 지내왔다.

당연히 가입해야 했던 한국교총

사단법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947년 미군정을 보좌하였던 오천석이 주도가 되어 창설된 '조선교육연합회'를 그 기원으로 하는 단체로서 교장들과 지방의 교육행정가들이 주로 참여하여 만들어졌다. 이 연합회는 당시 해방 직후 진보적이고 민족적인 교사들이 스스로 조직했던 조선교육협회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군정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미군정에 의하여 조선교육협회는 강제 해산되고, 관제 조선교육연합회만이 유일한 교원단체로 남게 되었다. 4. 19직후에 이 단체는 교사들의 외면으로 해체의 위기를 맞았으나 5.16 군사쿠테타에 의해서 '교원노조'의 탄압과 더불어 특혜를 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 말기에는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전두환의 4.13호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게다가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뇌물(돗자리, 병풍)을 돌렸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총을 탈퇴하지 못했다. 학교장이 탈퇴하려는 교사를 교장실로 불러들이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교육관료들의 한국교총 지키기

역대 정권들은 한국교총이 교사들의 반발에 흔들릴 때마다 이를 굳건하게 지켜왔다. 5.16 직후에도 그랬고, 전교조 창립 초기에도 그랬다. 전교조가 창립되면서 교사들의 교총 탈퇴운동이 일어났다. 사립학교를 시작으로 집단적인 탈퇴가 이루어졌다. 이때 정권은 한편으로는 전교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교총살리기에 나섰다.

1500여 명의 교사들이 해직되는 상황에서 군사정권은 한교총에게 '교섭협의권'이라는 것을 주었다. 교사의 복지나 처우 문제에 대해서 한교총이 건의하고 합의하는 방식으로 교총의 입지를 강화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전교조는 합법화되었고, 또 다시 교총탈퇴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교조의 경우에는 1만여 명에서 9만을 육박하는 조직증가세인 것에 반비례하여 한교총은 30만을 육박하던 회원수가 이제 15만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이미 전교조의 조직율이 한교총의 조직률을 앞서는 곳이 적지 않다.

한국교총 조직의 위기감은 학교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한국교총은 성과급(학교장이 교사들의 순위를 매겨서 수당을 차등지급함)과 관련해 처음에는 전교조와 보조를 맞추다가 방침을 급선회하여 성과급 지급을 수용했다.

'교총의 주장에 따라' 교사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올 경우에 상대적으로 교총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교조는 조합원을 뛰어넘어 교총가입 교사 상당수를 성과급 반납자로 확보해버렸다. 한국교총은 전교조의 조직력에 밀리고 말았다.

교육관료와 학교장들의 명분 '학습권 보호'는 어디로?

한국교총은 11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교육자대회'를 개최한다. 학교로 쏟아져 들어오는 홍보물이나 공문을 보면 한국교총이 이날 집회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한국교총의 공문뿐 아니라 산하단체인 학교장협의회 공문까지 날아들고 있다. 교장들이 앞장서서 참여하고 해당학교 교사들을 참여하도록 독려하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있었던 전교조 집회에 대한 교육부와 학교장들의 태도는 명확하다. '근무시간 중 연가나 조퇴를 내고 집회에 참석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지난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연가신청을 학교장들은 결재를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미 결재를 한 학교에서도 결재란을 지웠다. 그 후에 근무상황부에 '무단결근'이라고 써놓았다. 경찰을 동원한 뒷조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사소한 노조활동에 대해서도 제동을 거는 학교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장들이 한교총 집회에 교사들을 동원하기 위해서 교사들의 참석을 설득하고 있다. 한교총 산하 한국초중등교장협의회에서는 지난 11월 2일 공문을 각 학교장에게 보내면서 '전국의 교육자들과 가족들이 대거 참석하여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군구별로 버스를 대절해서 해당 학교 교사들을 참석하도록 독려할 것을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학습권 옹호'를 외쳤던 그 때의 소신은 간 곳이 없다.

전교조가 하면 불법, 한국교총이 하면 합법

한편 한국교총 조직관리부는 각 학교에 업무연락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 한국교총은 '교총의 활동과 교원노조의 활동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교육부가 보낸 99년 11월 회신을 제시하고 있다. 이 회신에서 교육부는 '교원노조의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은 금지되나, 한국교총의 경우 교원의 전문성 신장과 관련된 내용으로서 학교장의 허가를 득한 경우라면 가능하다'(교육부 복지81811-211공문)는 해석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토요일 수업을 하지 않은 채 서울행 전세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노동조합 집회에 가면 불법이고, 그 버스가 교총집회로 향하면 합법이라는 것이 한교총의 주장이다. 그리고 교육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총 집회는 명백한 정치집회

한국교총이 개최하는 11월 10일 집회는 '교원자존심 회복. 교육파탄정책 철폐'를 위한 대회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회가 아니다. 한국교총이 각 학교로 내려보낸 선전문안을 보면 이번 대회가 그들 스스로 주장하고 교육부가 뒷받침하는 '전문성 향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두고보자 다음선거 교육자들 분노했다'
'걸핏하면 거짓말 누가 믿나 김대중 정부'
'못살겠다 갈아보자 다음 선거 두고 보자'
'교육현장 파탄났다 정부.여당 책임져라'
'교원정치활동 쟁취하여 교육파탄 재발막자'

이날 대회의 기조를 살펴보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교사 집단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나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높이려는 정치집회이다. 이러한 선전 구호를 살펴보고 한국교총이 한나라당 쪽으로 줄을 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한나라당 선거운동'의 출발이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총도 직무에 지장을 주면 처벌 - 징역1년. 300만 원 이하 벌금

우리 지역(예천)에서 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4시간. 토요일 차량 정체를 감안한다면 최소한 오전 9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토요일 수업은 불가능하다.

교육관료들과 학교장의 주장처럼 전교조 교사들이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직무에 지장을 초래'하였다면, 교총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 역시 토요일 수업을 하지 못하므로 '직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다.

학교장들의 주장처럼 전교조 교사들이 집회 참석이 학습권을 침해하고 교원노조법의 쟁위행위금지를 위반하였다면, 같은 수준으로 교총집회 참석자들은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다. 교총이나 전교조 모두가 '직무에 영향을 주는' 집단적인 활동에 대해서 노조법이나 공무원법의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교총 집회 참여자들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집단행위금지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 66조는 '공무이외의 집단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판례에 의하면 공무원이 공무이외에 집단적 행위 중에서 '그 직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처벌을 받는다(대법 90도 2310. 1992년 2월 14일 판결).

때문에 교육관료들의 '학습권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교총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들은 모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야 한다.

교사들이 벼르고 있다

이번 교총대회에 교사들을 동원하고 있는 각 학교의 학교장은 자신들의 평소 주장대로라면 '근무시간 중 학습권을 침해하고 집회에 참석'한 자신들과 교총 교사들의 근무상황도 전교조 교사처럼 '무단결근'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 역시 전교조 집회와 같은 수준으로 교육부장관 담화를 발표해야 하지 않을까? 징계를 경고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교사들의 동태를 내사해야 하지 않는가? 언론은 교총과 교육부의 충돌을 걱정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교총 교사들은 평소에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토요일에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지장이 없단 말인가? 왜 2주일 전과 지금은 그렇게 다른가?

이번 교총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토요일에 연가를 내거나 조퇴를 하는 교장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교사들은 이들 명단을 파악해 놓으려 한다. 그리고 만일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나 형사처벌이 이루어진다면, 이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수준의 연가와 조퇴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는 교육관료와 검찰에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검찰이 '단체행동권의 행사로 인하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였다는 이유로 전교조 지도부를 처벌한다면, 교사들이 같은 잣대로 '공무이외의 집단행동으로 인하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 한국교총 지도부 역시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처벌을 요구한다면 검찰의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교육관료와 학교장들이 토요일 근무시간 중에 서울행 버스를 타고 있는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변명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보수연대는 이제 그만

수능이 쉽다고 난리를 치던 언론이 이번에는 너무 어렵다고 난리를 친다. 이제 제발 이런 호들갑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학습권을 가지고 난리를 치던 언론이 한국교총 집회와 관련한 '학습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연세대학 재단과 관련이 있는 조선일보나 고려대학 재단과 관련이 있는 동아일보에서는 아마 크게 보도해줄 것이다. '한국교총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해설기사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교조 죽이기, 한국교총 살리기 10년의 보수 연대가 오늘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아직도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저는 한국교총집회가 합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준은 전교조 집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언론과 교육부의 이중성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입니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일교조를 핍박하듯이 우리 보수세력 역시 전교조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게다가 학교장들의 뻔뻔함에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말이 옳든 그르든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이중성이 우리 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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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교육청에서 '어공'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지금은 농사지으면서 유보통합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함을 물어보면 '참교육학부모회 자문위원'이라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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