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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조선일보에 유난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간지 신문 중 하필이면 조선일보인가? 이유는 첫째, 일간신문지 중 최고의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두 번째로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이라고 비유될 만큼 막강한 언론장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세 번째로 요즘 각계 단체에서 언론개혁의 도마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월요일(29일) 조선일보의 사설은 역시나 내 기대에 부응(?) 하는 북한에 관한 사설내용으로 결코 한발 늦지 않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나는 사설을 읽고 내용을 비판해 보고자 한다. 다소 격한 내용이 들어가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조선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목표로 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출범은 미국사회가 ‘북한문제 ’의 본질로 접근하는 분기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아주 강하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의 출범이 과연 "북한문제"의 본질로 접근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수차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현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북한 문제의 본질은 "인권"이 아니다. 그것도 미국과 북한이라는 두 나라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미국과 북한은 "경수로 지원" "대북 경제봉쇄"가 더 그럴듯한 본질이 아닐까 되묻고 싶다.

북한의 인권을 한 때 주장했던 한국사회 안에서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파장과 동요를 불러올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북은 더 이상 수구냉전의 논리로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북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북의 인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왜, 이북의 인권상황을 이야기하면 테러(?)를 당하니깐 그럴까?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는 구성멤버가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 특히 대(對)북한정책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면면을 망라했을 뿐 아니라, 행동과제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강제노동 실태 규명, 식량과 생필품 분배 확인, 중국 내 탈북자 문제 제기 등을 핵심이슈로 삼고 있다.

그렇다. 미국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은 인권이라는 "허구"를 설정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 미국과 북한은 94년도 북미제네바 합의서를 작성하고 2003년까지 최종적으로 경수로 건설을 완료한다고 합의했었다. 하지만 2003년은 불과 2년후로 다가왔다. 현실적으로 2003년까지 미국은 그 합의서를 이행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핑계를 만들어서 자기들의 불이행을 합리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북한의 인권"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건만 조선일보는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의 대북 정책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자신의 생명줄은 "반북반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위원회의 활동이 진척됨에 따라 북한주민의 굶주림과, 그런 현실을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종합적 안목을 미국과 세계에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미국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인다는 ‘선(先)대화 ’에 초점을 둠으로써 북한 인권참상에 관한 조명이 그만큼 뒷전으로 밀려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미국정부의 기조는 미국 민간부문의 대북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유럽과 일본의 민간단체들이 엄혹한 북한 인권상황을 활발하게 거론해온 것과는 대조를 보여왔다.

왜 조선일보가 미국과 북한의 국제적 외교관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는지 여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당연히 미국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려고 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대외관계가 협소하지 않다. 우리도 보지 않았는가? 중국과 소련과의 유대강화를 그리고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와 수교를 맺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발길에 불이 떨어진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무조건적 ‘선대화 ’노선은 미국은 물론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북한의 대응수법에 부딪쳐 이미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결국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는 “우리는 왜 북한과 대화하려 하는가?”라는 명제의 근본으로 돌아가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성찰(省察)해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 "우리는 왜 북한과 대화하려 하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왜 북한과 대결하고자 하는가"로 말이다. 성찰해야 할 단계에 도달한 이는 다름 아닌 이같은 사설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조선일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실제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밤의 대통령 역할을 톡톡해 해 왔다. 그러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지면으로 승부하고자 노력했던 것 역시 대단할 만 하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과 열려 있는 소통의 공간 안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조선일보 역시 네티즌들의 일침은 따가웠던 모양이다. 다시금 지면으로 맞받아 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구독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일보의 대북관은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라는 것은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계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보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이 비판받아야 하지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조건 퍼주기식(?)이라고 맹공을 펼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이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 지원 예산은 전 김영삼 대통령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는 예산이다. 또 하나 어찌 분단된 나라에서 "내가 하나 주면 하나 주라"라는 식의 이야기로 통일을 하고자 한단 말인가?

작년 우리는 남과 북 두 정상의 만남 속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남과 북 모두가 하나의 통일원칙으로 삼고 꾸준히 실현하고자 하는 방도를 내놔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가 분단된 나라라면 그 나라 언론도 분단의 모순을 깨고자 노력하는 언론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신문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대북대화의 목적은 세계 최악의 수준에 있는 북한주민의 정신적 ·육체적 삶의 질(質)을 개선하려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계의 대북지원은 북한의 만성적 식량기근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데 이르지 못했고, 북한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인권개선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그것은 북한의 구조적 개혁 ·개방 없이는 북한주민의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역순(逆順)을 밟아나갔기 때문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과연 북한은 세계 최악의 수준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북한을 냉전 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보아서는 안될 때이다. 조선일보는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 한국국민들의 삶부터 하나하나 조명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왜 노동자들이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반대를 외치고 있는지 이제는 반성하고 자숙해야 함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북한의 구조적 개혁, 개방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미국은 대북경제봉쇄를 풀어주지 않는가" "왜 경수로 지원을 해 주지 않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대의를 위해 미국에 촉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기아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결코 미국과 한국이 떨어져 나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시민사회는 이번 인권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북한에 최소한도의 인권의 빛과 생활개선의 가능성을 비쳐줄 대북정책의 순로(順路)가 과연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요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무차별 적으로 폭격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죄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미국은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들에게 과연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군사강대국, 경제강대국으로써 3세계 국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테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미국의 자국내 인권위원회를 더욱더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하는 옛 속담이 더욱 생각나는 사설이 아닐 수 없으며 미국의 오만함에 분노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는 더 이상 분열을 조장하는 기사가 아니라 민족의 염원으로 하루빨리 통일이 될 수 있는 기사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역시 지금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버리고 자중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 세계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더 미국을 조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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