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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출범한 <화해와 전진> 포럼이 조금씩 목소리를 높혀가며 꾸준한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18일 7차 포럼을 가진 포럼이 주제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패거리 정치와 측근 정치의 폐해'였다.

전날 대규모로 치러진 후원회 자리에서 동교동계를 비판했던 김근태 최고위원을 비롯,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 이호웅 이창복 김태홍 의원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서상섭 김원웅 의원 등 현역의원들과 김상현 민국당 최고위원, 함세웅 신부, 정성헌 전국자치연대공동대표, 도천수 푸른정치연대 공동준비위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번 7차 포럼의 토론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입수, 그동안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면서도 공개석상에선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패거리 정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전한다.

출범한 지 반년만에 벌써 7번째 포럼이다.
재벌정책, 통일작업과 개혁작업, 언론개혁, 한국정당의 정체성, 미국 테러의 원인과 대응 등 포럼에서 다뤘던 그 내용들도 실로 다양하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여왔던 <화해와 전진> 포럼이 이번엔 정치권의 '패거리 정치'에 대해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18일 오전 7시 30분부터 이창복 의원의 사회로 두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포럼의 주제 발표는 임재경 전한겨레신문 부사장과 박호성 서강대 교수가 맡았다. 한국정치의 부정적 특성인 '패거리 정치와 측근정치'를 강도높게 비판한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한국정치의 친밀권문제 (임재경 전한겨레신문 부사장)

꼭 주제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친밀권'이란 키워드로 이야기 해볼까 한다. 40여년 동안 언론에 종사하면서 정치를 다뤘지만, '친밀권'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밀'은 일반적으로 좋은 뜻이다. 친밀한 사이가 영역이 확대되는 것, 이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문민정부가 인권이나 남북분단해소 차원에서 기여한 점도 많지만, '가신정치'는 더욱 극심해졌다.

친밀권의 범주에 대해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상식을 기초로 하여 중요친밀권과 부차친밀권으로 나눠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중요 친밀권엔 친인척 친밀권, 동향친밀권, 카스트적 친밀권(넓은 의미의 직업, 우리나라의 경우엔 군인이 가장 대표적), 학연 친밀권이 포함된다.
또, 부차적인 친밀권으로는 뇌물수수, 편의제공 및 취직알선, 공천 약속관계, 스포츠 및 취미관계 친밀권, 신앙 친밀권 등을 들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친인척 친밀권은 박정희 씨로부터 시작됐다. 친인척·동향·카스트(군인) 친밀권의 폐해가 바로 이 때부터 싹퉜다. 가신그룹이라는 표현은 봉건 시대의 표현이다. 절대 군주에 봉사하는 사람들, 조선조 정치를 생각하면 된다.

현대 한국정치에서의 가신은 말 안해도 다 아실 테니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 사람들의 특기라면 보스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심을 우선 들 수 있다. 그리고 각종 친밀권과 보스를 연결시켜 주는 좋지 않은 뜻의 '친화력'도 이들의 직업적 장기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일반화한다면 얼굴 가죽도 좀 두껍고, 경우에 따라선 위법도 저지르고, 그 결과 죄벌도 대신 받고 이것이 가신들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신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보스와 친밀권의 연결이다.

물론 좋은 부분이 아니고 기회적인 부분이 많다. 가신 그룹을 통해 국회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 문제가 많은 사람이 더 많다. 이런 사람이 천거 받을 때에는 친소관계도 중요하지만 반대급부가 따르게 된다. 뇌물, 정치자금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사람 관계에서 모든 것이 형성된다. 친밀권이 정당 조직의 핵심을 이룬다면 공공적인 관심사가 되는 건데 지금 어물어물 넘어가려 하고 있다.

정당의 실제적 조직과 운영이 사당적 성격이 팽배하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체로 김영삼 정부와 현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지금 야당의 경우에도 이건 해당이 된다. 그 정당의 정체성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 보스가 입문한 지 6, 7년밖에 안됐지만 이미 측신이라는 그룹이 형성됐다고 한다.

어느 지역구 보선에 공천한 경우를 보자. 그 사람은 선거법 위반으로 자리를 내놓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바로 그 자리에 공천해 주는 거 이건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거다. 그 선거구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들리는 소문대로 학연 때문에 그랬다면 이건 정말로 큰일날 얘기이다. 이것에 대해 과연 한나라당 내부에서 얼마만한 반성이 나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가신 정치 폐해가 세대간 이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운동권 출신 젊은 정치인들 사이에도 이것이 번지고 있다. 민주운동을 할 때는 도저히 그런 행태를 보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보스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 정말 역겨울 때가 많다.

어느 정치인이 보스한테 큰절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나온적이 있다. 이런 것이 대표적 인 예다. 이런 가신들의 행태가 세대간에 전이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지금 이대로 가신 정치가 팽배하고 세대간 이전이 이뤄진다면 국민들의 절망감, 무력감이 커질 것이다.
야당이 군사독재에 탄압받을 때 오랫동안 무료봉사한 사람에게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부 일리가 있긴 하지만, 항구적인 정당성일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좋은 정책을 많이 내야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고, 또 정당하시는 분들은 다수파를 형성하는 등 많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당 내부의 전근대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여야를 포함해 이 가신정치 혹은 패거리 정치의 폐해를 없애는 것, 이것이 우리 정치 미래를 위해 제일 중요하다.

한국정치의 풍토병 : '패거리 정치'의 폐해 (박호성 서강대 교수)
우리 나라에서 어떤 조직이 만들어지면 그 조직이 무엇을 하나 질문을 던지기 전에 누가 하나하는 것부터 묻게 된다. 모든 게 인맥관계에 의해 겹치기 식으로 엮어져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국민은 정치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을 지니고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얕아야 하고 반대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많다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높은 정치적 관심과 깊은 정치적 불신이 공존하고 있다. 흥미로운 모순이다.
정치적 대안이 부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결의 같은 것이 이런 모순적 현상의 배후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세계를 지배하는 세가지 문제점이 무엇보다 권위주의, 온정주의, 지역주의라 생각한다. 1인 중심주의, 상명하달, 당내 비 민주주의가 활개치고, 합리적 정책이나 이념 대신에 연줄이나 인간관계에 따른 파벌의 이합집산이 난무하며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전근대적 정치 행태가 억척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런 마당이기 때문에 국민의 복리나 당 전체의 일체감·정체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내 계파 패권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보다는 보스의 눈치를 우선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것, 그리고 이런 보스들이 봉건영주처럼 서로 '적대적인' 개별지역의 맹주로 군림한다는 사실, 이것이 한국 정당정치의 비극이다.
물론 정치세계에는 계파와 파벌이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좌파와 우파, 진보파와 보수파, 또는 매파와 비둘기파 등과 같은 이념이나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그룹 형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우리에겐, 다만 상도동파니, 동교동계니 하는 '우물안 개구리 식', '동사무소식' 정치 파벌만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골목대장들의 왈가왈부와 좌충우돌이 곧 정치가 된다. 이런 '패거리 정치' 또는 '측근정치'는 곧 왕조시대의 '환관정치', '내시정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계파정치의 가장 결정적인 폐해는 바로 1인 집중주의에 있다. 계파수장의 말씀이 곧 법이요, 진리다. 모든 길은 그에게로 통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정당의 수명은 강아지의 그것보다 짧다. 선거철만 돌아오면 야망에 눈먼 정치적 이합집산이 거족적으로 밥먹듯 되풀이된다.

그런데 과연 이 모임을 주관하고 있는 <화해와 전진> 포럼은 '패거리 정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요건이 구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합리적 정책이나 이념적 노선 대신에 연줄이나 인간관계, 학벌 등의 객관적 연고주의 등에 의해 결속된 집단이 아니라야 한다. 둘째, 지역차별·지역감정에 호소하고 뿌리내리는 전근대적 정치세력이 아니어야 한다. 셋째, 1인 중심주의, 상명하달, 집단 내 비 민주주의 등이 활개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권위주의, 온정주의, 지역주의를 본질적으로 거부하면서, 민주적으로 구축된 스스로의 개혁 지향적 정치철학을 자신있게 대내외에 떳떳이 표방하고 또한 그것을 민주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합리적으로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런 정치세력을 '패거리 정치'라 부르지 않을 수 있다.

정대철 최고위원

엘리트층이 갖고 있는 '패거리정치' 폐해를 일반 서민들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고치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의식들도 고쳐가야 한다.

이부영 부총재

패거리 정치를 극복하는 방법은 역시 또 패거리를 만들어 극복할 수밖에 없다. 패거리의 내용이 뭐냐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자기들 패거리의 사사로운 이익을 전리품처럼 분배하는 패거리다. 이를 위해선 이데올로기라고 할까. 이런 것을 충실히 채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화해와 상생'으로 완충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김상현 최고위원

패거리들이 모이는 곳이 정당이다. 뭘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3김 시대에 와서 비주류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기서 패거리 정치가 시작됐다. 이런 병폐를 청산하기 위해선 대항 패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현직정치인을 중심으로 '비주류'를 형성해야 하고, 주류가 돼서 정말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탁상공론을 너무 많이 해선 안 된다.

사회를 맡은 이창복 의원은 "현실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 패거리정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며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주체로서 화해와 전진이 무르익길 기대한다"는 말로 7차 포럼을 정리했다.

한편, 포럼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재보궐 선거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결국 둘 다 싫다는 말 아니겠느냐"며 "포럼 소속 정치인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 선거 결과를 본 뒤 포럼의 향후 발전에 대한 논의가 11월 중으로 있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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