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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하면 뇌의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오감을 통해 얻어지는 쾌감으로서 대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섹스를 생각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 보고 싶다는 마음은 결코 천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뇌(성을 즐기려는 뇌)를 가진 우리들 인간의 본능이며 숙명이기도 하다.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은 대뇌 변연계의 활동에 의해 일어나고 이 감정은 오감을 작용시킴으로써 , 즉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살아 있는 소리를 들으며 작용시킴으로써 한층 더 육성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낌으로써 뇌에 일어나게 되는 '쾌'와 '불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쾌감 원칙이 충만되면 즐거워진다. 생생해지고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인간의 성욕이 기억이나 상상 등 대뇌 신피질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실은 폐경기가 지난 여성도 성욕을 느끼게 되며, 정낭을 제거한 남성도 보편적인 성생활을 할 수 있으며 지적인 직업에 종사해 평소에 대뇌 신피질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인 중에 오히려 성욕이 강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잃고, 성을 즐기려는 뇌가 활약하지 않게 되면 모처럼 크게 자란 뇌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세포는 죽어버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뇌에는 성욕을 일으키는 작용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제하는 작용도 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성욕은 난자의 배출과는 관계가 없다. 배란에 수반되는 호르몬의 변동으로 성욕 중추가 다소 자극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약간이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파트너와의 정신적 일체감이다. 그 일체감을 가진 파트너에 의해서 피부나 점막 등에 자극을 받으면 그때야 비로소 여성의 성을 즐기려는 뇌가 활동한다.

여성에게는 성기 결합이 없어도 인간적 교류를 근원으로 하는 플라토닉한 섹스가 있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육체적으로 관계를 가졌다 하여도 남성이 여성을,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잘 알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육체적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성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행위의 목적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확실히 오르가슴, 즉 쾌감의 절정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르가슴만을 위해 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때 서로의 마음이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있다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쾌감으로 이어져 간다.

성교만이 정상적이며 만족할 수 있는 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근거없는 이야기이다. 예컨데 오르가슴 체험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다. 성교 이외에 마스터베이션, 때로는 공상까지 포함한 여러 종류의 자극에 의해 오르가슴에 이른다.

바람직한 성관계는, 관계를 갖는 사람끼리 기브 앤드 테이크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일방적인 성관계에는 죄의식과 원망이 따른다. 그러한 섹스는 결국 두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며, 그 밖의 관계까지 침식당하게 된다.


위의 내용은 오오시마 기요시라는 일본인 의사가 쓰고 서덕빈 씨가 번역했으며 평단문화사에서 출판된 '뇌가 좋아지는 80가지 힌트'라는 책의 제 5장 '성을 즐기는 뇌야말로 궁극적으로 젊어지는 뇌'라는 부분에 나오는데 여성에게만 플라토닉한 섹스가 있는 것처럼 (남성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말해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내게 성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했으며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책에 나오는 성에 관한 구절들이 떠오르게 했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성의 기쁨을 잘 느끼는 인간은 자신을 억압하는 사슬을 잘 끊을 수 있다고 함으로써 성이 인간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면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현대인이 물질의 소비를 많이 하듯이 너무 많이 소비해 에너지를 남용하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부영 정신의학 박사는 인간은 아직까지 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함으로써 성과 연관된 여러 사회문제를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운명으로 보았다.

이동식 정신의학 박사는 노이로제나 정신병에 걸리면 공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는데 오오시마 기요시 박사는 공상에 의한 오르가슴도 뇌를 활성화시키고 우리를 생생하게 하는 성으로 보아 서로 상충한다.

하지만 공상엔 창조적인 상상력이라는 것도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의 사람이 너무 매력이 있어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정도로만 그 사람과 섹스하는 상상을 하면 우리 두뇌가 활성화되어 아름다워지리라 생각한다.

칸트는 성교란 서로가 상대방의 몸을 이용해 하는 자유행위란 말을 했고 위 책의 저자는 '특히 성에 관한 한 사람은 체면불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급급해한다. 배우자까지 만족시키려는 훌륭한 태도를 오랜 동안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위 말에 비추어 알리스 슈바르처라는 독일 여성운동가가 쓰고 이프에서 김재희 번역으로 출판된 '아주 작은 차이'라는 책의 '오로지 내 클리토리스가 나의 진실'이라는 장에 나오는 아래 여성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가 주체적으로 피임을 안전하게 하면서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두뇌를 좋게 하는 성교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감증이니 미성숙이니 등등, 이건 절대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거죠. [질 오르가즘의 비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속으로 끙끙 앓던 문제들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건지 알게 된 거죠. 나는 절대 성적으로 미숙한 여자가 아니고, 오로지 내 클리토리스가 나의 진실이다. 이 생각이 확실해지자 내 몸에 거시기를 쑤셔 박는 일을 가능한 한 못하게 했지요. 그렇게 한 지 이 년쯤 된 것 같아요.

지금 남자 친구인 요헨은 육 개월 전쯤 만났는데, 우리 관계는 말하자면 첫 단추가 잘 끼워진 셈이에요. 나는 경험이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리한 편이었고, 요헨은 아직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걸 내 편에서 주도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나 자신의 욕구를 편안하게 충족시킬 수 있었어요.

요헨은 오히려 성경험이 없었던 덕에 무조건 거시기를 쑤셔 박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몇 번은 자기 거시기를 박아 보았지만 별로 재미를 못 보고는 바로 빼곤 했어요. 그래서 그냥 함께 누워 서로에게 좋은게 어떤 건지 이것저것 해 보다가 함께 자위행위를 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만족을 얻곤 했어요.

나는 그게 가장 편안하고 좋아요.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의 성적 접촉을 하는 셈이고, 특히 우리 두 사람이 아주 동등한 관계로 누워 있을 수 있거든요. 더 좋은 것은, 특별한 피임이 필요 없다는 것이고요.

"함께 자위행위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사비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음, 그러니까 함께 누워서 서로의 몸을 열심히 쓰다듬고 또 키스하다가, 거의 절정에 가까워지면 함께 자신의 몸이 요구하는 만큼의 자위행위를 하는 거예요. 둘이 나란히 누운 채 각자의 욕구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을 하는 거지요. 자신의 리듬을 자기가 유도해야 몸이 풀리지 파트너에게 맡겨버리면 안달만 나고 원가 자꾸 굴욕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어떻게 보면 상당한 갈등의 지점이잖아요. 함께 사랑을 나누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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