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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각국에서 생명윤리 논쟁이 한창이다. 그 논의의 핵심에 배아(embryo) 문제가 있는데, 그 내용은 배아의 생물학적 지위는 무엇인가, 연구목적으로 배아를 사용해도 되는가 이며, 이에 대한 사회각층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주요 정치쟁점화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각료회의는 지난 6월20일 시험관아기 시술 후에 남은 여분의 잉여배아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새 법안을 승인했으나, 복제양 돌리를 만든 방법인 핵을 뺀 난자에 다른 체세포의 핵을 결합시키는 체세포복제는 금지했다. 프랑스 내각은 당초 영국처럼 체세포 복제를 허용하는 쪽으로 법 제정방향을 잡았으나,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와 종교계 등 프랑스내 일부 여론 주도층이 체세포복제기술이 결국 복제인간을 탄생시키는 과정이 될 것으로 우려하여서, 금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인간배아 보호법’을 제정하여서, 배아 연구를 가장 엄격하게 규제했던 독일에서도 배아연구 허용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당인 사민당(SPD)은 입장이 갈려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황이고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모든 배아연구 금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야당인 기민당(CDU), 기사당(CSU) 역시 배아보호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다만 자민당(FDP)은 잉여배아연구 허용 입장을 채택했다.

총리와 대통령의 입장도 맞서고 있는데, 슈뢰더 총리는“난치병 환자의 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 데 반해 라우 대통령은 “생명의 존엄성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지난 8월 9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그 동안 논란이 되왔던 잉여배아연구에 대한 연방연구기금 지원여부에 대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연구비 지원대상은 이미 확립된 줄기세포주(stem cell line) 60 개에 국한되어 있고,잉여배아에서 새롭게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행위는 금지하였다. 체세포 복제술의 경우는 하원에서 금지하기로 예전에 결정이 난 상태이다. 이에 대해 민주,공화 양당의 몇몇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기존 60여 개 줄기세포주만으로 연구 개발에 충분할 수 있을지 회의하고 있으며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대상을 전체 잉여배아까지 포함하는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에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이 완성되었고 현재 정부에서 검토단계에 있어, 올해 안에 입법한다는 계획 중에 있다. 생명윤리기본법의 입법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소위 '생명정치'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법 시안은 배아를 '잠재적 인간'으로서 규정했고, 복제양 돌리를 만든 방법인 체세포 복제(국내에서 서울대 황우석교수는 이 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이다.)를 비롯한 연구목적의 배아 창출은 금지하는 대신 불임시술 이후 냉동보관중인 잉여 배아에 대해서만 엄정한 국가관리 하에서 연구를 허가하기로 잠재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기본법시안에 대해 국내 생명과학자들과 대부분의 정치인 그리고 생명공학육성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에서도 회의적이어서, 앞으로의 입법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필자는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이후 제기되어온 배아연구의 생물학적 안정성 및 윤리적인 논란들이 실제보다 과장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불임시술시에 무분별하게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잉여배아를 관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배아연구의 허용범위는 잉여배아연구는 물론이고, 현재 영국에서처럼 체세포 복제연구를 허용하되 단지 자궁내이식을 철저히 금지해서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배아연구를 성인간세포연구(adult stem cell)와 병행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윤리문제가 없는 성인간세포연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연구 허용 여부와 범위보다도 이러한 배아논쟁을 우리사회에 올바른 과학기술 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계기로 삼는데 더 의의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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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과학의 문제는 환경문제나 원자력과 관계된 문제를 제외하고는 사회전체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채,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는 과학자들의 영역 안에서만 존재해왔다.

과학사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과학은 인간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의 개발과 자본가의 이윤추구를 위해서 발전되어져 왔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자들은 적절한 보수와 비교적 안정된 직업에 만족하는 안이한 존재로 남기가 쉽고 사회대중과의 의사소통 가능성이 차단될 뿐만아니라, 그 연구내용까지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이윤동기에 의해 좌우되고, 그 연구의 혜택도 기득권세력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하에서 생명윤리 논쟁을 바라본다면 ,생명과학의 윤리문제는 흔히 생각하는 방식대로 과학 대 윤리의 논쟁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인간을 위한 과학과 자본과 이윤을 위한 과학의 대립으로 새롭게 논의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배아논쟁의 경우도, 인간배아를 이용한 실험의 윤리성 여부보다도(설령 윤리적이고, 인체나 자연생태계에 안전한 생명과학 연구일지라도 이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이러한 근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결국 과학의 문제도 사회전체의 권력구조와 연관지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 이윤의 논리나 기득권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정부가 아니라 사회일반의 공익적 관점을 중요시하는 정부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현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보다 좀 더 사회평등을 지향하는 권력집단이 형성되어서, 보건의료의 문제와 유사하게, 과학자들을 자본에 의한 이윤동기로부터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고, 과학의 문제를 광범위한 국민적 관심사로 바꿔 놓아야한다. 특히 윤리문제가 야기되는 배아연구나 유전자 특허에 관한 연구는 국가의 통제하에서, 이윤 동기에 의해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명공학의 소위 '꿈의 기술'은 결코 인간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기술이 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제도보다도 더 인간을 억압하는 수단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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