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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가 내린다. 가을비가 내린다. 축축하고 차가운 물기와 희미한 비안개가 강마을을 휘감고 있다. 가을비는 연인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목의 바람처럼 그렇게 춥다. 살속까지 외로움이 파고들 것 같다.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신다. 내 마음에 온기를 심어보고 싶다.

플라타너스 커다란 잎사귀가 빗속에 떨어져 누운 운동장이 지저분하다. 그 뒤쪽으로 노오란 가을 들판에도 비가 내린다. 말라가는 여름꽃송이 위에도 비가 내린다. 어디서 몇 마리 남지 않은 개구리 소리도 들리다. 얼마나 추울까? 동면에 들어가기엔 좀 이른 때여서 '춥다 --- 춥다---' 이렇게 우는 것 같다.

이런 날은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부침개를 부쳐먹으며 재미난 만화책을 읽고 싶다. 세수도 안하고 그냥 누워서 뜨뜻한 아랫목에 지글지글 허리를 지지고 싶어지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3학년 교실로 수업을 하러 갔다. 그런데 비가 쏟아지니 교실이 약간 컴컴하다. 형광등을 켜도 별로 밝은 것 같지 않은데 천둥소리까지 우루루 들린다.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내가 진도 나가야 된다고 우기자, 문석이는 분위기 잡아야 한다고 쪼르르 달려가서 커튼을 치고 불까지 끈다. 괜히 으시시 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눈빛이 초롱해진다. 수업시간 내내 조는 것이 특기인 경렬이마저 솔깃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런 때 진도나갔다가는 수업도 제대로 안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마음 약한 선생인 나는 아이들에게 지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귀신이야기가 뭐 색다른 것이 없음에도 열심히 분위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야기 하나 - 오사카 귀신 이야기

옛날에 일본의 오사카에 자매 둘이 살고 있었는데, 한 남자를 같이 좋아했단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언니를 사랑해서 둘은 연인이 되었다. 이것을 질투하던 여동생은 언니를 바닷가로 유인해서 죽이고는 머리를 바닷가에 버리고 몸은 땅속에 파묻었다. 그리고는 언니가 떠났다고 남자에게 말하고는 자기가 대신 언니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웃 도시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뉴스가 나왔단다. 목만 있는 얼굴이 어떤 어부의 그물에 걸렸는데, 이 목이 말을 한다고...

"오사카, 오사카..."

이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뭔가 미심쩍은 데가 있어서 이웃도시로 목만 있는 얼굴을 보러갔단다. 그 목을 보니 자기 언니가 분명했다. 그래도 설마 자기를 알아보랴 하고는 시치미를 떼고는 물었단다.

"당신은 어디서 왔어요?"
"오사카, 오사카..."

'그러면 그렇지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해!'하고는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을 죽인 사람은 누군지 아나요?"

여기까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자 모두 천둥소리와 비오는 분위기 속에 잠시 침묵하고 있었다. 이때 제일 겁 많은 수진이에게 다가서며,

"바로 당신."

이렇게 소리치자 수진이는 비명을 질렀고, 수진이의 비명소리에 더 놀란 아이들은 연달아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수진에게 온갖 눈치를 다 준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놀랐다면서...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의 성화에 또 하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참내.

이야기 둘 - '따시나' 귀신 이야기

옛날 어느 여관에 밤마다 7호실에 투숙한 사람은 다음날 아침 죽어나가는 것이었어. 그래서 강력계 형사 두 사람이 마침내 그 방에서 잠을 자면서 알아보기로 했어. 그런데 12시 시계가 "땡땡..." 치기 시작하자,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따시나."
"따시나."

두 사람은 너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강력계 형사인데...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찾기 시작했단다. 그 소리는 벽장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어. 그래서 벽장문을 열자 무엇인가 하얀 물체가 보였단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해졌다.

그 하얀 것은 바로 이불이었단다. 이불 속에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단다. 그래서 이불을 찢자 그 속에 피묻은 솜이 나왔단다. 그 이불의 출처를 알아보니 어떤 사람이 돈을 목적으로 결혼해서는 첫날밤에 아내를 죽이고 시체를 다른 곳에 묻었다는 거야. 그래서 한 맺힌 귀신은 저승에도 못 가고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서는 자기 피가 묻은 이불을 덮고 자니 '따뜻하냐( 따시나는 경상도 사투리임)'고 묻고 있는 것이란다.

"에이~."

뭔가 전설의 고향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학생들의 눈에 실망이 어린다.

'치! 내가 뭐 소설가냐?'
'그냥 보통의 선생님인데...'

이렇게 비 오는 날의 강마을 아이들은 커튼 치고 분위기 잡아가며 귀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꼭 옛날의 내 중학교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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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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