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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지환 / 사진 노순택 기자


▲ 드넓은 초원과 아름다운 산.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흉칙한 포탄과 표적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

동양 최대의 사격장으로 알려져 있는 다락터 사격장은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 사격장 바로 옆으로는 한탄강이 흐른다. 건설부와 수자원공사는 지금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류지역에 한탄강댐을 세우려 하고 있다.

취재진은 지난 일요일(9월 23일) 언론사 최초로 이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요일은 사격장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다.

영로교를 건너서 좌회전한 뒤 포천군 관인면 중리 쪽에서 울창한 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3㎞ 정도 들어가자 다락터 사격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격장의 넓이가 자그마치 7백만 평에 이른다고 한다.

사격장 외곽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포탄이 떨어진 자국과 흉칙한 불발탄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언덕을 몇 개 넘자 사격장 중심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 산 곳곳에 포사격 훈련의 잔해들이 널려 있다. 개중에는 뇌관이 그대로 박혀 있는 불발탄도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다락터 사격장은 부곡리(釜谷里)라는 마을이 있던 자리에 있다. 50여 년 동안 포탄에 맞아 붉은 산으로 변한 언덕에서 내려다 본 마을 터에서 아름다운 옛 마을의 흔적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었다. 기암이 솟은 높다란 산과 병풍 같은 야산이 어우러진 사이로 사행천이 흘러 한탄강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 아늑한 마을. 그러나 이 마을은 지금 각종 포탄 파편과 불발탄이 점령하고 있다.

사격 훈련을 위해 가져다 놓은 듯한 표적용 장갑차와 군용 트럭은 얼마나 폭격을 받았는지 엿가락처럼 녹아 있었다. 그 처참한 몰골 사이로 쳐다본 산은 헐벗다 못해 반질반질해진 상태였다. 금수강산 한국이 아니라 척박한 땅 아프가니스탄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 포사격 훈련 차량 표적물. 이런 표적물 20여 개가 산 들머리에 널려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곳 주민들은 사격장에 대한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포천군 중3리에 거주하는 박노성 씨(43)의 증언이다.

"60∼70년대에는 이 주변 주민 중 많은 사람들이 사격장의 포탄 껍질을 주어다가 고철로 팔아서 먹고살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개죽음을 당했다. 오발탄에 예닐곱 명의 주민들이 몰살당하기도 하고 불발탄을 분해하다 터져서 형제가 죽기도 했다."

한편 취재진은 이날 탄피를 줍던 한 주민(연천읍 고문리 거주)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 탄피를 수거하던 주민이 불발 포탄에서 분리해낸 뇌관. 이 작은 뇌관의 폭발력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곳에 댐을 짓는다고? 아니 이 사격장 바닥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납과 구리는 다 어쩌고? 50년 동안 쌓인 포탄 파편이 한 두서너 길은 쌓여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천문학적 규모이다. 비만 오면 이 주변은 붉은 쇠가 드러난다. 한 마디로 흙반 쇠반이다. 그뿐인 줄 아는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30년 가까이 된 납광이 있다. 이곳에 댐이 들어서면, 그 순간에 물은 죽어 버릴 것이다."

한편 주민들은 국방부가 건교부의 댐 건설 추진에 '조건부 합의'를 해준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주장한다. 다음은 이 지역에서 댐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한탄강네트워크 사무처장 이철우 씨(42)의 주장이다.

▲ 포탄이 폭발하면서 산 중턱의 암석들이 깨져 산 아래로 쓸려 내려와 있다.(위) / 직경 1.5m 깊이 1m 가량의 포탄 흔적.
ⓒ 오마이뉴스 노순택
"한국군 야포 사격장인 다락터 사격장은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라 사격장은 물론이고 그 인근지역까지 매우 중요한 군사작전지역이다. 따라서 평소 민간인들은 주택을 신축하거나 개축할 경우에도 매우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애를 먹어 왔다. 예컨대 축사 하나 짓는데도 5∼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더욱이 댐이 들어서면 사격장의 적지 않은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되고, 만수기에는 아예 사격훈련을 할 수 없게 되는데도 허가를 내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도 "현대건설이 세우려고 하다가 붕괴된 연천댐의 경우에도 원래 위치는 이곳이었지만 국방부가 합의를 해주지 않아 바꾸게 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곳이 그만큼 군사적으로 요충지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 지역이 수장되면 중부전선의 군사작전 개념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민들은 그런데도 국방부가 합의를 해준 배경에는 어떤 의혹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수거한 포탄을 경운기에 싣고가는 주민. 이렇게 수거한 포탄은 고물상을 통해 팔려나간다. 특히 포 아래부분의 '포띠'는 구리합금으로 만들어져 가격이 높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사격장에서 발생하는 납, 구리 등 각종 유해 중금속과 분진이 댐 용수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환경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다락터 사격장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가동돼 왔다. 더욱이 예전에는 다수의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탄피를 채취해서 팔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포탄 껍질이나 불발탄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충격적인 것은 수자원공사가 댐 건설을 위해 의뢰한 환경영향평가에 이 동양 최대의 사격장 문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굽이굽이 기암괴석과 맑은 물을 뽐내던 한탄강이 주먹구구식 댐건설과 포사격훈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러한 사실은 주민들도 잘 모르고 있었으나 수자원공사가 연천에서 실시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중도에서 무산된 주민설명회에서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한 주민은 "엄청난 양의 탄피, 불발탄, 분진이 빗물에 쓸려내려 갈 경우 중금속 오염 등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한탄강댐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국회 회기에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예산까지 책정해 놓은 상태다.

전국 12개 댐 예정지역 주민들이 어제(9월 25일) 대전으로 달려가 수자원공사 국정감사에 참여하는 의원들에게 절대 동의하지 말 것을 촉구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한편 오늘(9월 26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에서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한탄강댐 환경영향평가 조사단이 출범하면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탄강댐의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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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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