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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백두산에 다녀왔습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단동을 거쳐 고구려의 옛 유적을 더듬으며 환인, 집안, 통화를 거쳐 백두산, 두만강까지 가는 곳마다 고구려의 옛 숨결아 살아 숨쉬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여행길이 아름다웠던 것은 함께 간 사람들이 아름다워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제자 몇과 친구들과 친구의 아이들과 함께 한 이 여행은 예상치 못한 문제점에 맞닥뜨렸을 때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그런 마음 씀씀이 덕분인가. 우리는 그 보기 힘들다는 백두산 천지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날까지도 비바람이 몰아쳤다는 백두산 천지, 그러나 우리가 간 날은 너무도 맑았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천지의 모습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1996년에 백두산에 한 번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비바람과 안개에 쌓여 그저 '천지는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곳'이라는 두려움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침내 천지의 그 눈부신 푸르름과 맞닥뜨릴 수 있었습니다.

천문봉에서 천지 물가로 내려가는 곳의 그 숱한 들꽃들, 돌부리 하나 바위덩이 하나도 소중하게 보이던 그 길과, 아, 마침내 손을 담궈본 천지 물의 시린 감촉. 우리는 그 하나 하나를 가슴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하늘 못, 우리 정신의 시작이고, 우리 땅의 출발인 그 못 가에서의 하루를 아마 우리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의 사진 하나와 처음 갔을 때 느낌을 쓴 시 한 편을 올립니다. 사진은 천문봉에서 천지 물가로 내려가는 중간쯤에서 찍은 것입니다.

하늘못 가는 길

나,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하리
하늘을 가린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거센 바람, 잠시도 몸 돌리지 못하는
온갖 풀꽃들
오랑캐 장구채, 바위 구절초 따위
낮게 구부리고 모진 칼바람 피해 살아가는
여린 지혜의 땅, 다시는 발딛지 못하리
잠깐 개이고, 무섭게 밀려드는 먹장구름
빗줄기 거세게 몰아치다 언제 그랬느냐
세상 환히 밝히는 햇살 한 줌
나,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하리
가서 그 풀꽃들 다시 보지 못하리
장백 폭포 물안개에 몸 적시지 못하리
달문을 지나
흐르는 물줄기 거슬러 천지에 이르지 못하리
하늘못, 그 아득한 깊이에
내 몸 다시 드리우지 못하리

이렇게 옅은 바람에도 내 마음
풀꽃같이 흔들리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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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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