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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추진 중인 자립형사립고와 관련 설립 희망학교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심사 및 추천 기한이 오는 20일로 다가옴에 따라 지역 교사들이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히고 나섰다.

오늘(5일) 오후 4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구지부와 대구지역 37개 사립학교 교사 대표 77명은 대구시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자립형 사립고 실시를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전교조 대구지부와 사립학교 교사대표들은 '신자유주의 망령이 활개를 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통해 "지금까지 교원단체들은 입시 명문화되고 귀족화될 수밖에 없는 자립형 사립학교의 도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해왔다"면서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국민들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자립형 사립고 도입으로 인해 빚어질 위험성에 대해 ▲학부모, 교원에 대한 협의가 없이 이루어진 졸속 정책이라는 점 ▲교육의 평등을 무시하고 부유한 계층에 특혜를 준다는 점 ▲과거 입시 명문고를 부활시킨다는 점 등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전교조와 교사 대표들은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한 공청회에서 발표된 대로 자립형 사립고 등록금이 현재 예상금액이 연간 400만원 수준이 아닌 1000만원대에 이를 것이라면서 이는 귀족학교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대구지부 김형섭 지부장은 "최근 교육부에서 전국 부교육감 회의를 통해 재정지원을 약속하며 지역별로 두 학교씩 자립형 사립고 신청을 독촉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는 백년지대계인 교육문제를 놓고 지역 여건과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시정을 촉구했다.

전교조와 교사대표들은 이날 선언문 발표와 함께 서울시 교육청이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반대의견을 분명히 한 것과는 달리 대구시 교육청이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이들은 시교육청에 보내는 공개질의서에서 "대구지역 48개 사립고 중 자립형 사립고 설립 기준에 맞는 재단 전입금을 내는 학교가 한 군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신청하라는 공문을 학교로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라면서 그 저의를 물었다.

한편 전교조와 교사 대표들은 오늘 선언문 발표를 시작으로 학부모에 대해 자립형 사립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신을 보내고 오는 10일부터는 교육청 앞 1인 시위를 가지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또 전교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7개 학교가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고 대구지역에서도 2∼3개 학교에서 설립 신청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이날 공개한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전문이다.

교육계의 현안으로 등장한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은 교육현장을 혼란과 파행으로 몰고 가고,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함께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을 철폐시키기 위하여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저희들의 생각과 입장을 학부모님께 밝히고자 합니다. 

아다시피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 교육대통령임을 자부하여 교육이 21세기의 국운을 좌우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교실에는 마음놓고 마실 생수조차 없고, 지난 여름은 찜통 더위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육환경이 이렇게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반성은 커녕 교육위기의 원인을 엉뚱하게도 평준화 제도에 돌리며, 평준화 정책을 깨트리고 학교와 아이들을 부익부빈익빈에 따라 분리시키는 '자립형 사립고' 및 '7차교육과정'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시범 실시되는 자립형 사립고는 한 해 등록금만 400만-1,000만원 대에 이르는 귀족학교입니다. 아이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하루해를 보내는 평범한 우리 학부모님의 아이들은 교육과정의 자율성 보장에 따라 오전에는 영어 수학 위주의 입시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학원으로 달려가는 기이한 현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자립형 사립학교는 천박한 시장주의 교육전략을 반영한 정책으로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교육의 '복지'이념을 근본적으로 후퇴시키는 시도로 교육을 '시장화'하겠다는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고른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근대 공교육의 이념을 무너뜨리고 교육의 책임을 각 개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제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정부의 교육에 관한 투자 축소 의지입니다. 지금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의 감축이 선행되어야 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예산 절감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공교육을 아사 상태로 몰아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결국 자립형 사립고는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부자 학부모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범죄'에 가까운 나쁜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육정책이 문제가 있다면 올바르게 고쳐서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지 왜 선택된 부자들만 그 혜택을 누려야 합니까? 학교교육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한 교육기회의 평등성을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국의 모든 아이들은 법에 따라 정해진 학교생활을 하는데 소수의 사람들만 혜택을 누리는 그런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저희들은 우열반 편성으로 기초학력 문제를 아이들에게 떠미는 7차교육과정, 소수의 특정한 부자들에게만 특혜를 보장하는 자립형 사립고 정책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희 교사들은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을 반대하며, 그 대신 학급당 학생수를 25명으로 감축하기 위한 교육 재정 확보,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공교육 정상화를 주장합니다. 

더 이상 교육현장이 신자유주의에 물든 시장화와 일부 교육부 관료들의 탁상행정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되며, 앞으로의 모든 교육정책은 공교육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국민적인 논의와 합의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너무나 충분합니다. 

교육평등을 심화하고 시장논리에 공교육을 맡길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은 반드시 철회시키기 위해 학부모 여러분과 함께 저희 사립학교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힘찬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01년 9월 5일 

대구지역 사립학교 교사 대표자 박영균 외 7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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